독자 수 확대에 노력하는 블로그 운영자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은 운영자가 없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 욕심이 없다고 한다면 거짓말이거나 무성의하거나 블로그 운영의 목적이 특이한 경우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욕심을 얼마만큼 겉으로 드러내느냐가 문제일 것입니다- 그런 분은 블로그에 실어놓은 글들을 메일로 보내기도 합니다. 이런 의도가 아닐까요? ‘봐라, 이렇게 좋은 내용인데도 내 블로그를 찾지 않을래?’
좋은 내용이 한두 가지입니까? 유익한, 필요한, 흥미로운, 신기한, 놀라운, …… 갖가지 정보가 넘쳐납니다. 게다가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만드는 신문, 방송도 봐야 하고, 읽어야 할 책도 많습니다. 허다한 정보 속에서 꼭 봐야 할 정보만 선택하고 얼른 쓰레기처리를 할 수 있는 판단력이 긴요하며, 그래야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벌써부터 얘기되어왔습니다.1 미안한 일이지만, 저는 메일박스를 열면 당장 청소부터 합니다. 메일이나 보려고 살아가는 건 아니니까요. 상대방이 기분 상할까봐 바로 ‘삭제’를 누르지는 않고 일단 열자마자 바로 ‘삭제’를 해서 상대방이 눈치 채지 못하게 처리합니다. 친구의 좋은 점 100가지, 늙은이가 꼭 알아두어야 할 50가지, 100살까지 살 수 있는 건강유지법, 아내의 눈 밖에 나지 않게 해주는 10가지 생활태도(‘몇 가지’로 되어 있는 정보는 대체로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인 시시한 정보입니다. 가령 빛의 3가지 성질이나 생산의 3요소도 별로 쓰이지 않는 세상인데요), 아름다운 모로코 경관, 중국여행 스케치, 신기한 동물세계, 아름다운 난, 좋은 음식과 건강, 사람마다 다 다른 생활철학, ……, 보내는 분의 요구에 맞추어 그것들을 찬찬히 살펴보거나 배경음악을 들으며 생각에 잠기거나 한다면 허구한 날 아마 한나절씩은 허탕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런 의미라면, 저의 이 블로그 운영은 남들에게 피해나 부담을 덜 끼치는 일일 것 같습니다. -제가 글을 잘못 써서 잘못된 정보, 시시한 정보인 경우에는 피해나 부담을 주겠지만 그런 경우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마 그런 의미라면 저도 대부분 한심한 경우일 것입니다- 다만 제 블로그에 오시거나 오시지 않거나 그 결정은 전적으로 독자의 의사결정에 달렸으며, 만약 블로그가 없다면 저도 주변 사람들에게 이 글들을 보내면서 좀 읽어보라고 성화를 댈 게 번하다는 뜻입니다. 그럴 경우 여러분은 얼마나 귀찮겠습니까.
“여러분은 위대하다!”는 식으로 독자들을 추켜세우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신의 훌륭함을 파악하는 수준이 ‘위대하다’는 뜻이겠지요. “며칠 혹은 몇 달에 한번이라도 댓글을 달지 않는 사람은 현대인의 기초적인 소양이 부족하다(돈도 들지 않는 일이라는 걸 강조하면서)”고 면박을 주고 으르렁거리기도 합니다(돈보다 소중한 것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모르는 수전노일까요, 그런 사람은? 저에게는 혼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는 시간이 돈 버는 시간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저는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한 적이 있었다면 더 정신을 차리겠습니다. 아첨을 해서 괴롭히지도 않겠습니다. 내용이 부실해서 괴로웠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정신을 차려서 덜 부실한 내용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도 어쩔 수 없는 소망은 있습니다. 지난해보다 꼭 열 배로 늘어난 독자들의 면면을 저는 대부분 모르고 있지만, 그분들이 맞이하는 2009년이 신선하기를, 행복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걸 그분들이 차지하기를, 오래 사는 것이 좋은 분은 오래 살게 되고, 건강한 것이 좋은 분은 더 건강해지고, 돈이 무엇보다 좋은 분은 돈이 많이 생기고, 노력이나 ‘줄’도 중요하지만 재수도 좋아야 한다고 여기는 분은 재수가 좋고, 예뻐지는 것이 지상 과제인 분은 더 예뻐지고, 그 중에서 한 가지도 잘 이루어지지 않더라는 분은 올해엔 꼭 이루어지기를 기원합니다.
변함없이 찾아오는, 때로는 힘을 얻는다는 ‘햇살’님, 2008년에는 ‘좀 생각 없음’으로 지내라고 하셨는데, 그 말씀을 잊고 지냈다는 걸 이제 깨닫습니다.
모범생처럼 또 좋은 책을 소개해달라고 한 ‘작은소년’님, 시원한 답을 못해주어 미안합니다.
훌륭한 어머니이신 ‘비둘기’님, 아드님이 공부를 오래 하지는 않았음에도 훌륭한 인물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 인물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오래 한 것이 자랑인 경우도 있지만, 그걸 잠깐 한 것이 자랑일 경우도 있습니다. 블로그가 아늑한 걸 확인했습니다.
열성적인 엄마, ‘태권소녀’님, 궁금할 만하면 찾아오셨고, 눈 내린 아침까지 알려주셨습니다. 그 따님 ‘스키소녀’님, 내가 그 소녀를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요. ‘이범수’도 그렇습니다.
‘느티나무’님, 아드님의 출발이 성공적입니까? 그것 아니면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참으로 다행이겠는데, 저로서는 자신이 없습니다. 언젠가는 그 아이를 찾아보고 싶지만 참아야 할 때까지는 참을 것입니다.
‘hoon5276'님, “밥 좀 먹게 해 달라”고, 인간적인 부탁을 해주신 걸 오히려 고맙게 생각하고 잊지 않습니다. 평범한 공간에서도 보람 있는 삶을 가꾸시기 기원합니다.
‘오리아빠’님의 렌즈는 행운인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주인이 멋있는 분이어서 사진도 잘 나오기 때문입니다. ‘오리아빠의 사진이야기’는 그래서 멋집니다.
숭례문을 안타까워할 줄 알고, 어른처럼 “오랜만에 찾아오니 읽지 않은 글이 많다”고 한, 그리운 6학년 ‘이승은’, 내가 주는 졸업장을 받고 싶다고 한 소녀, 그러므로 내 제자, “그곳에도 눈이 와요?” 하고 묻는 어린 센티멘털리스트, 내가 주는 졸업장이 아니어도 멋진 중학생이 되어라.
‘이수빈’, 네가 그립구나. 갑자기 생각이 나더라며 찾아오는 소녀. “이제 보니 <파란편지>가 마음에 와 닿는다.”는 ‘맹랑한’ 소녀야.
‘답이 없는 교사의 길’을 가고 있다는 ‘최완근’ 선생님. 그 답 가까이 가십시오. 대학원을 헛일로 다닌 것도 아닙니다. ‘교과서 문장을 나보다 멋지게 쓸 사람은 대한민국에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던 제게 고 강우철 선생은 “문장에 아이들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 한마디에 석사과정 대학원 강의 다 들은 것보다 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밭농사는 재미있었습니까?
‘용설란’, 내 어린 시절의 제자, 오십이 넘었지만 ‘영원한 소녀’, 네게는 삶이라는 것 또한 진정 그렇게 전개되기를 바란다.
이른 봄에 거실을 서재로 바꾸신 ‘후니’님. 중2 아드님, 7세 따님이 그 정성에 답하고 있겠지요.
왜 뭘 하려고 그러는지, 열심히 살 줄 밖에 모르는 ‘예술추구’님. 그대에게 부디 좋은 일이 꼭 있기를…….
‘고급스런 독자’라고 표현해야 적당할 ‘ELLA'님. 이 세상은, 아이들이 제게 맘껏 매달리고, 저는 아이들을 맘껏 포옹할 수 있는 곳인지, 아직도 저는 모릅니다. 'ELLA'님의 정성으로 두 아드님 잘 성장하고 있겠지요.
‘이인순’님. 아무리 바빠도 지금도 오고 있다는 생각으로 글을 씁니다.
순박한 ‘최옥규’님. 자율화는 행정, 재정, 인사보다 ‘교육과정’에서 훨씬 많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하셨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시는지요.
아침안개 자욱한 혹은 단풍진 그 도로를 지나는 날에 연락을 주는 ‘원옥진’님. 올해는 모든 일 더 잘 이루어지겠지요.
이 초라한 블로그를 빛나게 해준 동행 ‘강성욱’님. 제가 뭘 하는지 빤히 쳐다보시는 그 눈으로 ‘다른 멋진 일’도 벌이기 바랍니다.
그 시골길을 지나면 만날 수 있는 ‘JES'님. 'JES’님이 있어서 정겨운 그곳…….
‘학교장의 경영관’ ‘질문하는 학교’에서 빛이 보인다고 하신 ‘파랑새’님. 부디 ‘대답하는 학교’의 전통을 부수고 ‘질문하는 학교’에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Skywalker™님. 우리가 그렇게 보듬고 가는, 더없이 소중한 ‘어린것’들은 마침내 빠짐없이 ‘늙은이’가 되어버리고, 그러면 별 수 없이 누추해집니다. 그런 날에는 ‘노인이 타고 있어요’라고 써 붙인 차를 볼 수 없는 세상을 서글퍼하기가 쉬울 것입니다.
모든 기억을 추억으로 바꾸었을, 그래서 ‘선생님’이 되었을 ‘노미리’, 내가 가는 이 길이 너로 인하여 덜 외롭구나. 너 또한 영 외롭지는 않기를…….
‘조성덕’님. ‘교과서적인 경영자’가 되십시오. “이것이 중요하다!”며 엉뚱한 주문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아름다운 ‘nydecorum'님. 입사 1년이 되어가겠네요? 디지털은 이제 상식적인 명제가 되었습니다. 빛나는 편집인이 되어가는 길에서 ‘Read n Do'가 행복한 동반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카프리’님. ‘뛰어나게’보다 ‘다르게’. 그건 얼마나 중요한 가치인지 아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므로 영광이 함께하기를 기원합니다.
비무장지대 대성동 ‘조순희’님. 가슴 떨린 만남이었으므로 그런 ‘후배’가 되겠다며 언제나 안전운전을 하라고 따듯하게 부탁하신. 선생님께서도 가슴 떨리는 가르침을 주시는 교감이 되십시오.
‘어느 독자’를 보시고 귀여운 샘을 내신 ‘h2k926'님. 그 강의장의 탄식 소리를 전해주신 그 마음을 기억할 것입니다.
‘김진덕’님,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금언이 허사가 아님을 확인하십시오.
‘BONA'님, 우리는 꽃 같은 나이에 만나서 이 해거름에 헤어지고 있습니다. 가시는 길이 언제까지라도 외롭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다듬지 않은 댓글. 아니면 더 좋은 그림 보여주시겠지요.
다시 만난 것 같은 느낌을 주신 ‘M'님, 제가 언제까지 그대의 ‘등대’일 수 있을까요? 그대가 다른 누구의 ‘등대’가 되기를 바랍니다.
‘교과서 중심의 획일적인 교육’을 심각하게 느끼고 있는 ‘김태환’님, 그대를 만난 것이 행운입니다. 그 고질병을 직접 고칠 수는 없을까요. 제 강의를 듣지 못하는 것이 복이 없는 일이라면 복이라는 것이 얼마나 얻기 쉬운, 어처구니없는 것이겠습니까.
‘엔디’님. 아무리 봐도 ‘설마하면 큰일날불 조심하면 안전한불’보다는 2학년 아이가 지은 ‘우리가 불을 가지고 장난을 치면 불은 세상을 망쳐요’가 그럴듯하지요? 이렇게 당연한 것에도 공감해주는 사람이 그리 흔하지 않을 만큼 세상은 경직되어 있습니다.
해묵은 ‘파란편지’를 읽어주신 ‘화이트홀’님, ‘미스터리의 진실’은 대단한 지식의 창고라는 걸 확인했습니다.
지난가을, 코스모스 같은 모습으로 다녀가신 ‘허난설헌’님, 이 길에서는 확신과 회의감이 교차하기 마련입니다.
“옳소, 옳소!!!” 고함질러주신 ‘찡찡’님, 더 좋은 ‘요코 이야기’를 쓰겠습니다.
드디어 스스로 ‘잠자리 소년’이란 닉네임을 붙인 ‘정진영’, 진영아, 얼른 자라서 내 확신이 틀림없었다는 걸 보여 다오.
‘EVO'님.「‘11세부턴 꾸중, 뇌 더 똑똑해진다’는 어처구니없는 기사」를 님의 블로그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로 ‘펌’ 해 가신 건 큰 영광입니다.
‘요나단’, 40년 전 내 사진을 갖고 다니는 건 부끄럽고도 자랑스럽다. 그런 제자가 어디 있겠나.
‘떳떳이’님. ‘우리’가 서로 그리워하는 사이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나 혼자 그리워해서는 되지 않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상대평가, 좌편향 교과서에 관한 주장을 전개하신 ‘소시민’님, 저도 얼마든지 쓸 수 있는 그 문제를, 그러나 깊이 있게 이야기할 수 없는 입장이어서 미안합니다. ‘흑백논리’여서는 안 된다, 균형 잡힌, 열린 관점이 필요하다는 말씀에는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드디어 이곳에 와서 시골 초등학교 교장, 병설유치원 원장을 하고 있는 자신이 한없이 초라함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해주신 ‘학부형’님, 자신을 이렇게 되돌아보는 것도 그리 무위한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 유치원의 ‘엉망진창 학부모’이신 ‘유치원사랑’님, ‘엉망진창 학부모’라야 제 글(제 생각)에 공감할 수 있다는 걸 아시는 분.
“극찬도 이런 극찬이 없다”고 하신 ‘영사모현사모’님. 그걸 모르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고 ‘유치원사랑’님, ‘영사모현사모’님, 셋이서 술 한 잔 할까요?
부산의 ‘서경식’님. 제 생각만으로 가슴가득하다고 해주신 영광으로 더 좋은 글 보여드리겠습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서경식 교장선생님’.
보이지 않은 독자 여러분께도
보이지 않으므로
다 걸려들 넓은 그물 같은,
멀리서도 보이는 솟대 같은 인사를 드립니다.
저는 잠들고 있는 새벽에도 찾아와 주시는 분,
방방곡곡,
해외에서도 찾아주시는 분을 위해
읽을 만한 글을 쓰겠습니다.
따듯한 인사를 드리고 싶은 마음 간절하지 않을 리 있겠습니까.
몸이나 마음이나 아프지 마시고
하시는 일 잘 이루어지기를 기원합니다.
'당신은 날마다 엄청난 양의 정보를 접하지만, 그중 아주 일부분의 정보만을 가지고도 업무를 훌륭하게 수행할 수 있다. 믿거나 말거나 '아주 일부분'이란 1%를 의미할 수도 있다. 누군가가 변화의 비전을 이해하고자 마음속으로부터 결심했다 하더라도, 늘상 붐비는 정보의 채널을 고려할 때 엄청난 정보 더미에서 비전에 관한 정보를 발견해내지 못할 가능성은 크다.
'존 코터․댄 코헨(김기웅․김성수 옮김),『기업이 원하는 변화의 기술 The Heart of Change』김영사, 2003, 1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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