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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우리 학교 미스터 X

by 답설재 2008. 12. 2.

모처럼 직원회식을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부산 남포동에서 왔을까요? 미스터 X를 만났습니다. 몇 명이 남아서 2차, 3차를 갔을지도 모릅니다. 미스터 X는 볼일이 있어 일찍 갔다고 하니 2차는 가지 않은 게 거의 확실합니다.

직원회식 이야기를 하면 흔히 교장이 2차, 3차에 가는 게 좋은지 어떤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저는 절대로 2차 이상은 따라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2차 한번 가시지요?” 하는 사람이 아예 없지만, 처음에는 그렇게 권유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에이, 그러면 결국 욕먹어요.” 하면 “교장선생님처럼 그렇게 하시는 분은 욕먹지 않아요.” 하지만 그걸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얘기는 다 그렇게 하는 거니까요. 이렇게 얘기하는 분도 있습니다. “더러 직원들하고 어울리는 것도 좋아요. 그래야 이런저런 얘기도 듣고 평소에 꽉 막혀 있는 의사소통도 되니까요.” 그래도 저는 그 문제에는 단호한 입장을 세워두었으므로 그걸 끝까지 지킬 작정입니다. 끝까지 지킬 일이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면, 퇴직하고 나면 -시켜줄 사람도 없겠지만- ‘원로 장학관’인가 뭔가 그런 건 절대로 하지 않겠다는 것도 있고, “교장선생님은 어눌한 듯 강의를 잘 하니까 퇴직하고 나서도 더러 강의를 다니시면 좋겠어요.” 하는 사람이 더러 있지만 교원이니까 퇴직 하루 전까지는 하고 그 이튿날부터는 절대로, 단 한 번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오늘 회식시간에는 그럼 의사소통을 좀 해볼까?’ 싶어서 젊은 남교사에게 건배사를 시켜봤습니다. 일부러 그런 걸까요? 뭐라고 하더니 혼자서 “건강을 위하여!” 해버렸습니다. 모두들 알아서 “위하여!” 해주었으므로 그냥 넘어가기는 했습니다. 그래서 불러서 새로 시켰습니다. “선생님은 ‘건강을!’ 하세요. 그러면 우리가 ‘위하여!’ 할 테니까.”

그렇게 하고나자 저쪽의 동학년에서 리듬에 맞추어 소리쳤습니다. “노래해! 노래해!…….” 내친 김에 노래도 시켰습니다. 그 장면이 볼만했다고 할까요?『카멜레온』이라는 노래를 했는데, 제법이었습니다. 코트 깃을 세우고 때로는 이쪽을 보고, 때로는 뒤로 돌아서고, 때로는 모니터를 바라보며 노래하는 그의 멋스러움을 보면서 저 멋이 교실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도 저만큼 우러나면 얼마나 좋을까 했습니다.

그는 올해 발령을 받아 온 막내입니다. 소문에 의하면 수석졸업을 했다고 합니다. 초임 중에서 우리 학교를 지원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는데, 인사담당 장학사로부터 우리 학교에 배당되었다는 전화를 받은 그는 유일하게 이렇게 대답하더랍니다. “열심히 가르치겠습니다.”

열심히 가르치는 게 뭔지는 알까요? 저는 만 40년 저쪽의 그가 어떻게 지내는지 살펴보고 있습니다. 가령 어제 체육시간에는 아이들을 둥글게 세워놓고 배구공을 수직으로 던진 다음 내려치는 공부를 시키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그 반대편의 아이가 공을 받아서 다시 그렇게 던져 올린 공을 내려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그렇게 쉽지는 않을 것 같은데도 아이들은 제법 잘 했습니다. 그는 그 주위를 돌아다니며 간혹 이렇게 하라며 시범을 보이기도 했는데, 뭐라고 할까요, 흡사 교육대학교 체육교수 같은 그 모습을 보면서 저 사람이 부산 남포동이나 광안리 같은 곳을 저런 모습으로 돌아다니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습니다. 혹은, 젊음은 저처럼 좋은 것일까요?

저는 그가 성공적인 교사가 되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그가 교직생활 40년을 지내고나면 저 같은 사람을 기억이나 할까요? 40년 후에 저는 어디에 있을까요? 그래도 저는 그가 훌륭한 교육자가 되기를 기원하는 것입니다. 선배들은 그에게 “이론과 현장은 다른 거야.” 하고 어쭙잖은 충고를 하지 말고, 배운 대로 해보라며, 배운 대로 하면서 느끼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길을 가르쳐주면 그 또한 훌륭한 선배일 것입니다.

교육자로서 살아가는 길이 어디 만만합니까. 저는 담배도 외상으로 사 피웠습니다. 지연, 혈연, 학연 찾는 게 꼴사나워 고향을 떠났습니다. ……. 제대로 된 교육자로 살아가려면 그에게도 산전수전(山戰水戰)이 기다리고 있겠지요. 그 산전수전은 사람에 따라 의지(意志)와 신념(信念)의 초석이 되기도 하고, 형편없는 인간으로 떨어뜨리기도 합니다. 그는 부디 그 산전수전을 겪으며 의지와 신념을 가진, 그래서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초라한 교육자가 되지 않기를 기원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카멜레온』같은 인간은 되지 않아야 하겠지요. “『카멜레온』같은 인간이 되지 않으려고 했더니 사는 게 이와 같았습니다.” 할 가능성이 있다면 미리 얘기해두겠습니다. “어이, 남포동 X, 미안해.”


추신 : 어제 노래한 분들은 다 가수로 나서도 될 분들입니다. 막내 얘기를 해보았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