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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이런 기사 Ⅲ : 오바마 새 정부는 농구 드림팀

by 답설재 2008. 12. 10.

이런 기사 Ⅲ : 오바마 새 정부는 농구 드림팀1)

 

지난 12월 4일, 신문에는 미국의 대통령 당선자 버락 오바마(Obama)가 활짝 웃으며 농구공을 던져 올리는 시원한 모습의 컬러사진이 실렸습니다. 기사 제목은「오바마 새 정부는 농구 드림팀」이었습니다. 농구광(狂)으로 알려진 오바마가 지명한 행정부와 백악관의 요직에 고교․대학 시절 농구선수로 활약했던 인물들을 다수 배치해 관심을 끌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그들이 누군가 하면, 에릭 홀더(Holder) 법무장관 지명자(뉴욕 스타이베슨트 고교 농구팀 ‘페글레그스’의 주장으로 공격수, 컬럼비아대학 학부와 로스쿨의 농구선수, 190㎝), 수전 라이스(Rice) 주유엔 미국대사 지명자(워싱턴DC 여자사립학교 ‘내셔널 커시드럴 스쿨’의 농구팀 수비수, 별명 ‘스포(spo)', 186㎝), 제임스 존스(Jones)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지명자(조지타운대학 농구팀 ‘호야스’의 공격수, 193㎝) 등이고, 비록 두드러진 활약은 못했지만 고교 농구선수이기는 했던 오바마와 폴 볼커(Volcker) 백악관 경제회복자문위원장 지명자(고교 농구팀 센터 출신, 203㎝)를 더하면 공격수, 수비수, 센터, 주장이 다 있으니 이 팀에서 오바마가 적재적소에 공을 배급하고 경기 전반을 주도하는 ‘포인트 가드’를 맡으면 ‘드림팀’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에릭 홀더 법무장관 지명자가 뉴욕타임스(NYT) 인터뷰에서 “오바마가 나와 경기를 할 만한 실력인지는 모르겠다”고 했다니 오바마의 진짜 농구실력은 의문스럽다는 어깃장을 놓기도 했습니다.

오바마 당선자에 대한 이런저런 기사가 연일 신문을 장식합니다. 그런 기사 아니면 무엇으로 지면을 다 메울까 싶을 정도입니다.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은 것일까요? 우려먹을 수 있을 만큼 뼈가 다 녹을 정도로 우려먹는다는 말이 적절할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입니다. 그것도 이제는 끝물인지 워싱턴포스트는 오바마 당선자가 임명한 정부와 백악관 고위직 35개 중 22개가 아이비리그1)나 MIT, 스텐퍼드, 시카고대, 영국의 옥스퍼드, 케임브리지대 출신으로 채워졌으므로 결국 ‘명문대 내각’ ‘엘리트 정치’란 비판을 했답니다. 오바마 부부도 각각 컬럼비아대와 프린스턴대를 거쳐 하버드 법대를 나왔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각 정권이 출범할 때에는 걸핏하면 그런 기사가 났으니 별로 특이한 기사도 아닐 것입니다.

「‘문제아’들이 미국 이끈다」는 기사도 났습니다. 말하자면, 1954~1965년 출생은 마약에 빠지고 성적은 최하위인 ‘멍청한 세대’인데2) 오바마 정권의 핵(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각 세대가 정권이든 뭐든 주축을 이루는 것 또한 당연한 일 아닐까요? 나 아니면 그 일을 잘 할 사람이 없고 드디어 세상이 망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로 채워진 우리나라에서는 ‘3김 시대(3金 時代)’가 아주 길긴 했습니다.

오바마를 인용하는 우리 정치권의 모습도 그리 달갑게 다가오지는 않습니다. 민주당은 민주당대로 감세법안 여야 대치 과정에서 “오바마 정부도 부자감세정책을 전면 재검토하고 있다”며 ‘오바마의 이름으로’ 정부․여당을 비판한 적이 있는데, 한나라당 원내대표도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이 좋아하는 미국의 오바마 당선자도 SOC(사회간접자본) 예산을 집중 투여해 경기부양을 하겠다고 한다”며 “민주당은 이 부분에 이의를 달지 말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 기사의 제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오바마 정책 우리랑 비슷” 與野 민망한 ‘아전인수’ : 민주 서민감세, 한나라 뉴딜 부각시켜」(2008.12.9).

「오바마 새 정부는 농구 드림팀」기사를 인용한 이유는 참 희한한 기사가 많다는 걸 얘기하고자 한 것은 아닙니다. 이런저런 기사들이 ‘흥미롭구나’ 싶었으며, 더불어 얘기하고 싶은 것은 두 가지입니다.

우선, 우리나라도 앞으로는 학력평가에서 일정한 수준 이상의 실력을 거두어야 운동선수로 활약할 수 있는 시대가 가까워졌다는 것입니다. 지난여름 베이징올림픽 양궁경기에서 우리 선수들은 경기가 끝나기 전에는 미소는커녕 차가운 긴장감이 감도는 표정으로 일관했으나(당연한 일입니까?), 미국의 어느 아저씨는 즐거운 표정으로 활을 쏘더라는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2008.8.22, 나의 이야기「웃으며 활을 쏘던 리처드 존슨」). ‘운동을 하려면 기본학력도 갖추어라’, 잘 된 일이지요. 그러면 프로선수가 되지 못하면 이승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더라는 얘기도 사라질 테니까요.

또 생각나는 얘기가 있습니다. 1996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해롤드 크로토(Harold W. Kroto) 미국 플로리다주립대 교수와 수학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을 받은 에핌 젤마노프(Efim I. Zelmanov) 한국고등과학원 석학 교수, 이장무 서울대 총장이 지난 2007년 6월 15일 서울대 총장 집무실에서 ‘최고의 인재, 어떻게 키울 것인가’란 주제로 좌담회를 가졌다는 기사입니다.

그 좌담회에서 크로토 교수가 한 말을 한 부분만 인용합니다. 얼마나 신선한지 보십시오.

“높은 수준에 있는 학생들의 능력에 맞추는 유연한 교육방식을 찾는다는 것은 사실 어려운 일이다. 또 과학을 어렵게 느끼는 학생들이 흥미를 갖는 분야를 찾도록 도와주는 것도 힘들다. 마치 농구 경기와 같다. 키 작은 학생들에게 맞는 농구대가 있다면 그들은 농구를 좋아할 것이다. 나에게 과학이란 것은 무엇을 배우는 과정이 아니라 무엇을 발견하는 방법을 획득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학생들에게도 연구하고 주제를 스스로 찾아가도록 도와줘야 한다. 학생들은 자신이 원하는 교육을, 원하는 교사에게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또한 학생들에게 선생님 의견에도 반대할 수 있는 자유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 더 창의적인 학생을 길러 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2007.6.16).

“키 작은 학생들에게 맞는 농구대가 있다면 그들은 농구를 좋아할 것이다.” 우리 교육을, 교육방법을, 개성에 대한 관념을, 우리 교육의 모든 면을, 이러한 생각에 맞추어 그야말로 ‘확’ 바꾸면 좋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오직 하나의 농구대만 마련해 놓고 그 농구대를 바꿀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 채 아이들만 '잡아족치는' 우리 교육의 꼴이라니…….


1) 아이비리그란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컬럼비아, 펜실베니아, 코넬, 브라운, 다트머스 등 미국 동부 8개 대학을 가리키는 말인데, 담쟁이 덩굴(Ivy)로 덮인 교사(校舍)가 많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합니다.


2) ‘멍청한 세대’를 ‘존스 세대’라고도 한답니다. 존스 세대란 다음과 같은 뜻이랍니다. “베이비붐 세대(1943~1960년 출생)와 X세대(1961~1981년 출생) 사이에 낀 세대. 베이비붐 세대의 관심사였던 ‘베트남전 반대’ 같은 사회적 이슈와 X세대의 관심사였던 대중문화를 모두 접한 세대다. 기존의 학력평가시험에서 평균점수가 낮아 ‘멍청한 세대’ 혹은 ‘잃어버린 세대’로도 불렸다. 이들의 성향은 실용적이고 활동적이며, 문제해결력이 뛰어나다.”(조선일보, 2008.12.9, 16면)



1) 이 글의 기사 내용은 모두 조선일보에서 인용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