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건설단체총연합회 회장이라는 분이 쓴 글의 제목이「지록위마(指鹿爲馬) 4대강 사업」이었습니다1). 제목만 봤을 때는, ‘아, 정부에서 대운하사업을 하려는 속셈을 감추고 4대강 물길 살리기라는 명분을 내걸고 있다는 비판을 했구나.’ 싶었습니다.
글의 내용은 이 짐작과 정반대였습니다. 정부는 “4대강 물길 살리기 사업 범위에 인공 주운수로, 대형 보, 갑문, 터미널 건설 등이 포함돼 있지 않으므로 대운하 사업과는 무관하다”는 주장을 거듭하고 있으나, 야당과 일부 시민단체는 “정부와 여당이 4대강 물길 살리기라는 명분을 앞세워 예산을 확보한 후 한반도 대운하를 다시 추진하려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는 내용에 이어 4대강 물길 살리기 사업의 필요성과 중요성, 주요 사업내용, 기대 효과 등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었습니다2). 그러므로 야당과 일부 시민단체가 ‘4대강 물길 살리기 사업’을 ‘대운하 사업’이라고 반발하는 것을, 사슴을 가리키며 말이라고 우긴 것에 비유한 글이었습니다.
‘지록위마(指鹿爲馬)’라는 고사(故事)는 유방과 항우가 패권을 다투는『초한지(楚漢志)』에 나옵니다. 진나라 환관 조고는 이세황제3)를 대신하여 제 마음대로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그는 황제에게 심지어 항우와의 전쟁 상황까지도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만일 황제가 나라의 위기를 깨닫게 되면 반드시 여러 신하들과 작전회의를 하게 되고, 그러면 그 신하들 중에서 지혜가 뛰어난 자가 나타나게 되어 자신의 위치가 위태로워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입니다. 얘기책에나 나오는 옛날이지만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까 싶지만, 오늘날에도 그런 일이 없지는 않으니 진실이라는 것은 참으로 오묘한 곳에 숨어 있는 것 같습니다.
조고는 다른 신하들의 입단속을 얼마나 엄하게 했던지. 궁중의 모든 대신들이 그를 무서워하고 비위를 맞추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누가 이세황제에게 밀고를 하는 짓은 목숨을 내놓는 일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어느 날 조고는 사슴 한 마리를 끌어다놓고 황제에게 말했습니다. “폐하께 이 훌륭한 말을 바칩니다.”
황제가 웃으며 물었습니다. “경이 지금 농담을 하는 게요?”
조고는 정색을 했습니다. “폐하, 이것은 사슴이 아니라 말이옵니다.”
황제는 웃음을 거두지 않고 한 사람 한 사람 여러 신하들을 둘러보며 그것이 사슴인지 말인지 물어보기 시작했는데, 조고를 두려워하는 여러 신하들은 말이라고 했으나 단 세 사람만 사실대로 사슴이라고 했습니다. 회의를 끝낸 조고는 그 세 사람을 당장 처형해버렸으니 사람들이 조고를 얼마나 두려워했을지 짐작하고도 남는 일입니다.
고사「지록위마(指鹿爲馬)」는 이렇습니다. 그러니까 예의 글에서 고사 인용이 제대로 된 것인지 아닌지 판단해야 하겠는데, 저로서는 아무래도 그 인용이 석연치가 않습니다. 물론, ‘대운하 사업’을 하려는 정부가 ‘4대강 물길 살리기’라고 속이고 있다는 뜻도 아니고, ‘4대강 물길 살리기’가 분명한데도 야당과 일부 시민단체가 ‘대운하 사업’을 하려는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는 뜻도 아닙니다. 그건 특별한 전문성을 가지고 다루어야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비판하는 측이 아니라 일의 주도권을 가진 측이 속이려 할 때 ‘지록위마(指鹿爲馬)’라고 할 것이라는 전제(前提)로 글을 읽었더니 아무래도 이해가 더디더라는 뜻이었습니다.
도대체 어느 경우가 ‘지록위마’입니까? 궁금한 것은 그것입니다. 제 생각대로 어느 한쪽에만 해당시킬 수 있는 고사입니까? 아니면 이쪽저쪽 어느 쪽에나 써도 좋은 고사입니까?
1) 매일경제, 2008. 12. 24., 38면「열린마당」
2) 글의 일부 내용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4대강 주변지역은 이미 오래전부터 만성적인 홍수 피해와 물 부족, 수질오염에 시달리고 있다. … 최근에는 연평균 홍수 피해액이 2조7000억원에 달하고 있으나 홍수예방 투자는 1조1000억원에 불과하며, 수해복구에는 4조2000억원이라는 과다한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앞으로 지구 온난화와 기후변화 등으로 극심한 홍수와 가뭄이 빈발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주요 하천의 종합적인 정비사업은 더 이상 미룰 수가 없는 시대적 과제가 되고 있다. … 4대강 물길 살리기 사업의 주요 내용은 제방 단면 확대 및 노후 제방 보강, 퇴적 구간 정비와 댐 및 조절지 건설, 자전거길 설치, 생태하천 조성 등이다. 이를 통해 홍수피해와 복구비 저감, 충분한 물을 공급할 수 있는 그릇 확보, 수질 개선과 함께 생태네트워크 구축, 수상 레저 및 관광문화 등 지역개발 효과라는 편익을 누릴 수 있다. 총공사비는 약 14조원으로 추정되며 19만 명의 신규고용 창출과 23조원의 생산유발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한다.”
3) 진나라는 소양왕-효문왕-장양왕-진시황제-이세황제-삼세황제로 이어져 한나라를 세운 유방에게 나라를 바쳤습니다. 진시황제는 장양왕의 아들은 아니고 여불위라는 걸물과 주희 사이에 태어난 사람이었고, 이세황제는 그 진시황의 둘째 아들로, 나라를 다스리는 데는 소질이 별로 없었습니다. 유방에게 나라를 바친 삼세황제도 이세황제의 아들이 아니고 진시황의 장남 부소의 아들이었으며, 그도 또한 나라를 다스리는 데는 별로 소질이 없었기 때문에 유방에게 나라를 넘겨주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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