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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언제 국회 현장학습을 가게 되나?

by 답설재 2009. 2. 2.


지난해 12월 어느 날, 국회 현장학습에 관한 공문을 봤다. 우리는 현장학습계획을 연초에 확정하기 때문에 ‘가보면 좋기는 하겠지만…….’ 하고 말았다.

현장학습은, 얘기하는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일반화되었다. 1990년대 초에 비하면 그렇다. 그때까지만 해도 소풍이나 수학여행 말고는 학생들이 학교 밖으로 나갈 일이 별로 없었다. 자주 나가는 학교가 있다면 “공부는 안 하고 왜 자꾸 나가느냐?”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었다. 해마다 분단별로 아이들이 시청을 방문하게 한 필자는 시청 직원들로부터 ‘문제 교사’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김만곤? 아, 그 문제 교사가 올해도 보냈나?”

교육부에서 일하면서 각 학년 사회과 교사용지도서에, 가령 시청이나 구청, 동사무소, 소방서, 보건소, 경찰서는 물론, 문화유적, 박물관, 향교, 시냇가, 심지어 법원, 검찰청 같은 곳에 학생들을 자주 데려가는 것이 좋다는 내용을 넣었고, 이후 현장학습은 더 활성화되었다. 그러던 어느 해, 어느 도지사로부터 교육감 앞으로 “시정(市政)에 지장을 초래하므로 학생들의 시청 방문을 자제해 달라.”는 공문이 왔더라는 어처구니없는 얘기를 듣고, 각 시․도 교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 일화를 소개했다. 그 도지사가 웃음거리가 된 것은 물론이다.

일본․중국 학생들이 우리나라로 수학여행을 많이 오면 좋아하면서 우리 학생들이 해외로 나가는 것은 못마땅해 하는 것도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외화를 절약하면 당장은 좋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눈앞의 이익만 따지는, 수학여행을 외화벌이로 간주하는 단견(短見)이다. 어려우면 이렇게 부탁해야 할 것이다. “그래, 경제가 어려우니까 가서 더 많이 보고 자세히 듣고 깊이 생각해보고 오너라. 정신을 바짝 차려라. 그래야 우리나라가 더 발전하고 경제도 더 좋아지겠지.” 수학여행은 돈이나 쓰려고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얘들아, 너희들도 자치회를 국회의원들처럼 해봐라.” 그렇게 가르칠 수 있으면 좋겠다. 지난해 12월 23일 아침 신문 1면에, 두 남자가 뒹굴며 싸우는, 그야말로 유치한 모습을 찍은 사진이 실렸기에 그 설명을 봤다.「‘육박전’ 국회 : 22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의사진행을 막기 위해 민주당 의원들이 회의실을 점거하고 있는 가운데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보좌관들이 막말 끝에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아침식사를 하다가 그 사진을 보고 이렇게 꼬집어 봤다. “보좌관을 하려면 일단 주먹도 좀 있어야 하겠네?”

하기야 12월 18일에는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 해머와 전기톱까지 동원되었다. 국회의원이 해머(쇠망치)나 전기톱으로 하는 일도 해야 할까? 그렇게 묻는다면 “우리는 국회의원인데 뭘 못하나?” 하겠지. 그렇지만 세계 어느 나라 의회 역사에 해머나 전기톱으로 의사진행을 잘했다는 기록이 있겠나.

그 사진, 그 기사에 충격을 받아서 이후로 신문기사 제목을 눈여겨봤다.「與․野 정치 쇼 그만하라」「연말이면 난투극…與野 묵시적 동의」「해머폭력, 그 후…‘국회의원 수난시대’」「국회 성탄 대치 “다수결 돌파 생각” & “확실하게 싸울 것”」「20여일 ‘점거사태’ 끝내고 열린 국회 본회의 르포 : 끝까지 자리 지킨 의원 38명(재적의원의 12.9%)뿐, 반성커녕 14명 결석에 54명은 본회의 안 들어가, 원내대표․常委, 美․중남미․유럽 등 외유성 출장」…….

이런 제목도 보였다.「국회사무처, ○○○․○○○ 의원 고발」(두 명 중 한 명은 ○○○ 대신 다른 모양으로 표시해도 ‘마찬가지’다). 해머와 전기톱을 동원한 국회의원을 고발한다는 기사일 텐데, 다른 국회의원들은 가만히 있거나 말렸는데 그들이 말을 듣지 않았다는 뜻일까? 아니면, 다 나쁘지만 특히 더 나쁘기 때문에 고발한다는 뜻일까? 그러면 고발당하는 그들은 “다른 의원들은 뭘 잘했나? 억울하다! 우리를 희생양으로 삼느냐?”고 하지 않을까.



지난해 7월, 동전을 모아 불우한 사람들을 돕자는 공문이 왔다. 자치회에서 결정하게 하라고 했더니, 긴 여름방학 동안 잊어버리기가 쉬우니까 차라리 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결론이 났다고 했다. 이렇게 말했다. “할 수 없는 일이지요, 아이들이 그렇게 결정했다면.”

그러다가 겨울방학을 앞둔 자치회에서는 아이들이 벽보를 그려 붙이고, 방송으로도 알리고, 보름 동안 각 교실을 돌며 성금 1,836,200원을 모았다. 유니세프 등 세 곳에 30~40만원씩 보내고, 혼자 사는 노인 세 분을 찾아가 쌀 한 가마니씩을 선물했다고 했다. 또 40만 원은 조부모와 함께 사는 두 명의 아이들에게 주도록 결정했는데, 아무도 모르도록 선생님 두 분이 교장실에 와서 할아버지, 할머니께 전했다.

우리 학교 어린이회장단 선거방법을 전국의 이곳저곳에서 배워가고 있다. 예를 들면 1학기 대표단은 그 전 해 12월에, 2학기 대표단은 1학기말인 7월에 선거하고, 교장은 당선된 아이보다 낙선한 아이들부터 면담한다. 벽보는 후보자들이 직접 만들어 붙이고, 입후보자는 연설만 하는 것이 아니라 토론회도 개최하고 있다.



대화와 타협, 다수결, 그런 것은 해머나 전기톱, 몸싸움으로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이 아이들로부터 배우면 된다고 하고 싶지만, 국민을 대표하는 분들께 그렇게 말할 수는 없다. 우리 국회가 회의진행을 멋지게 하는 날, 우리도 국회 사무처에 공문을 보내 현장학습을 하러 가겠다고 부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을 써놓고 해를 넘겼다. 1월 3일 신문 1면에는「새해에도 여전한 국회」, 1월 5일 4면에는「격투기 국회」기사가 실렸지만 읽지 않았다. 국민 된 도리로라도 읽어야겠지만 읽고 싶지 않았다. 이어 1월 6일 1면에는「폭력에 굴복한 民意의 전당」이란 기사가 실렸고,「격투기 선수 ○○○ : 격투장의 모습이 아니다. 국회의사당 안에서 5일 벌어진 ○○당 대표의 폭력행사 장면이다. ……」란 해설을 단 사진 세 장도 실렸다.

그러더니 1월 7일 신문에는 화기애애한 모습의 사진이 실렸다. 세 당의 원내대표가 6일 저녁 국회 정상화 협상을 마무리짓고 10개항으로 구성된 합의문을 발표한 뒤 국회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에서 손을 맞잡았다는 설명이 달린 사진이었다. 이 사진을 본 사람들은 어떤 생각들을 했을까.

① ‘아, 이젠 잘 하려나보다. 할일이 많으니까, 국회의원들이 지금부터라도 잘 하면 우리나라가 잘 되겠구나.’ 그렇게 생각하면 참 순진하다고 할까? 그런 사진 한두 번 봤냐고.

② 그러면 ‘저러다가 또 싸우겠지. 별 수 있겠나.’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가 뽑은 우리 대표들을 너무 얕잡아보는 일 아닐까.

③ 이러면 어떨까. ‘봐라, 저 표정들 속에는 우리 같은 사람은 알 수 없는 심오한 뭔가가 있다. 기다려보자.’

④ 그것도 아니라면? 모르겠다. 그냥 여기에 답이 있다고 생각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           )



‘자유당’ ‘민주당’이 뭔지도 몰랐던 어린 시절 이야기면 좋겠다. 내가 국회의원, 대통령 선거에 몇 번이나 더 참여할 수 있을까. 젊은 국회의원들은 내 나이쯤 대수롭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서양 사람인양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는 겨우 60년일 뿐”임을 내세울지도 모른다. 그들은 이렇게 강조할 것이다. “나는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거기에 있다.” 그것이 슬프다. 내일 신문에는 또 어떤 기사가 실리는지 봐야 한다. 조급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