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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이런 기사 Ⅱ : 몸만들기

by 답설재 2008. 11. 23.

 

 

 

 

 

그게 로봇 이야기였는지 세포 조작 이야기였는지 잘 모른다. 21세기의 언제쯤, 여성들이 하나같이 예쁜 세상이 되어버리면, 드물게 본래의 얼굴 그대로 '개성(個性)'을 지닌 여성이 있으면 오히려 열광적인 선택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얘기였다.

그 얘기는, 텔레비전에 새로 등장하는 예쁜 여성들을 보면 저절로 떠오른다. 순전히 개인적인 반응이겠지만, 참 예쁘구나 싶은 여성들은 점점 많아지는데 비해 그 얼굴이 그 얼굴 같아서 잘 기억되지는 않는다. 이렇게 해서 결국 로봇처럼 모두들 비슷비슷한 얼굴이 되는가 싶기도 하다.

지난 11월 19일, 어느 신문에서 이런 특집기사를 보았다. 「수능 끝, 몸만들기 최적의 기회 : 내 안의 아름다움을 깨워라」

'수능 끝, 몸만들기 최적의 기회'? 세상에! 이럴 수가 있나! 이건 아니다! 싶었다. '내 안의 아름다움을 깨워라'라고 했으니, 그건 맞는 말이다. 그러나 '내 안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한 기사는 전혀 아니었다. 특히 강조된 정보는 이렇다.


☞ 외모 가꾸기 전 이것만은 꼭 확인하자

★ 충분한 시간적․경제적 여유를 가지고 정보를 수집한다.

★ 개원의협의회 홈페이지를 방문해 병원 등록 여부를 확인한다.

★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기 위해 숙련된 전문의와 충분히 상담한다.

★ 철저한 사전 검사를 통해 자신에게 적합한 치료인지 수술 후 부작용 우려는 무엇인지 따져본다.

★ 복용하는 약이 있으면 담당의와 상의해야 한다.

★ 생리기간에 수술을 하면 출혈이 많이 되므로 이 기간은 피해 수술 날짜를 잡도록 한다.


'성급한 결정보다 충분히 정보수집' '무턱대고 급격히 체중 줄이는 건 위험' '비용․시간 많이 드는 치과치료 해봐?' '간단한 쌍꺼풀 수술도 무허가는 안 돼' '스트레스․수면장애가 키운 여드름' 등이 기사의 작은 제목들이다. 여기에서도 '내 안의 아름다움'은 발견되지 않았다. 성형수술에 대해서는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사회현상으로서 우리 사회 성형 열풍에 대해서는 한번쯤 진지한 고민을 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아무런 비판적 성찰 없이 외모지상주의에 합류해도 좋을 것인지, 과연 그만한 비용과 시간, 자연스러움의 희생을 감수하면서 추구해야 할 만큼 성형의 미(美기)가 가치 있는 것인지 스스로 물어보고 답해야 한다."

 

그러나 그 내용 바로 다음은 이렇게 이어진다.

"그러나 이런 ‘고차원적’ 물음에 앞서 명심해야 할 것은 성형은 전문가와 상담하라는 것이다."

'고차원적' 물음? 전문가인 성형외과의는 '자연스런 미가 좋아요.' 하고 고3 학생들을 돌려보내는 사람들일까? 그런 권유를 받은 고3 학생은 '그렇구나!' 하고 깨닫게 되는 것일까?

기사의 전문(前文)은 이렇다.


"아, 끝났다…." 모든 통과의례는 고통스럽고 힘이 든다. 한국 사회에서 '고3'은 그중에서도 가장 빠져나오기 힘든 과정이며 '수능'은 그 절정의 고비쯤에 해당하는 의례다. 수능을 마쳤다면 그 자체로 축하받을 일이다. 이 땅의 모든 고3들이여! 한 달쯤은 맘놓고 행복해도 좋겠다.

수능을 마쳤다는 것은 대학생 혹은 어른이 될 날이 코앞으로 다가왔음을 의미한다. 어른은 별게 아니다. 자기 스스로에 대한 통제권을 스스로 행사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지는 것이 어른스러움이다. 거기에는 자기 ''에 대한 통제와 책임도 포함된다. 이제 슬슬 자기 몸의 주인으로서 스스로를 디자인하고 관리하는 연습에 들어갈 때가 됐다. 보통은 '외모 가꾸기'라고 말하는 그것,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어른은 별게 아니다'? 별게 아니라는 단정도 그렇지만, '자기 스스로에 대한 통제권을 스스로 행사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지는 것'이, 어떻게 별게 아닌가?

수능의 과정이 그렇게 고통스럽고 힘든 과정이라는 표현도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지만, 수능을 마쳤다는 게 그렇게 축하받을 일인지, 한 달쯤 맘 놓고 행복해도 좋다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인지, 그런 생각, 그런 표현이 무책임한 것은 아닌지, 고3 학생이 자기 몸에 대한 '디자인'(?)을 시작해야 할 시기인지에 대한 논의도 필요할 것이다. 어른이 된다는 게 자기 통제와 책임이라면서 그걸 몸에 대한 통제와 책임으로 귀결시킨, '어른되기'를 그렇게 쉽게 여기는 나라여서 우리 사회의 몸 관리가 이처럼 '수준 높은' 덕목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도 논증해볼 만한 주제일 것이다. 기사의 어디에도 마음을 가꾸라는 얘기 하나 없는 것이 섭섭하고 씁쓸하다.

 

억하심정(抑何心情) 쯤으로 얘기하면, 수능이 끝난 시기라면, 시간은 촉박하지만 갈 길은 아직 멀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구체적으로,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시기이다. 몸만들기 정보나 수집하고, 갑자기 '체중줄이기'에나 나서고, 쌍꺼풀 수술이나 하고, 여드름 고민이나 할 시기는 아니다. 개원의협의회 홈페이지에서 병원등록여부나 조사하고, 전문의와 상담하고, 수술 사전․사후 걱정을 할 때는 아니다. 무슨 수술을 하는데 출혈이 그렇게 심할까? 쌍꺼풀? 여드름?

 

방학 때는 성형외과가 시장처럼 번잡하더라는 얘기는 않겠다. 기업체 면접에서 얼굴, 몸매가 예쁘면 유리하더라는 예년의 신문기사도 얘기하지 않겠다. 그 정도는 누구나 아는 얘기다. 이제는 드러내놓고 이렇게 가르치기까지 해야 하는가, 그게 놀랍다는 것이다.

수능이 끝나면 한 달쯤은 펑펑 놀아도 좋다면 친구들과 실컷 얘기도 하고, 영화도 보고, 전시회장도 섭렵하고, 여행도 다니고, 그동안 읽고 싶었던 책도 실컷 읽고,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 찾아다니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기사는 왜 없을까? 정형외과 같은 건 생각도 할 수 없는, 춥고 배고픈, 외로운, 그러나 언젠가 이 세상을 밝고 아름답게 할 고3생을 배려한 기사는 왜 없을까?

 

외모에 자신이 없으면 자존감에 상처를 받기도 한다. 자존감 형성은 자신의 역량에 대해 어떻게 지각하느냐와 관계가 있으며, 자존감 형성에 영향을 주는 주요 역량은 학업 역량, 사회적 수용도 역량, 품행 역량, 운동 역량, 신체 외모에 대한 역량이라고 한다. 또, 학생들의 자존감에 관한 연구들에 의하면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요소는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의 경우에는 모두 신체 외모(外貌)로 나타났고 이러한 결과는 남학생이나 여학생 모두에게 해당되었으며, 고등학생의 경우에는 공부도 외모도 아닌 또래관계 즉 친구가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김순혜, 「몸짱, 얼짱 열풍에 학교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한국교육개발원, 『교육정책포럼』 2006. 3. 23).

 

언젠가 주한 프랑스 대사가 한국을 떠나면서 후임 대사에게 그랬단다. 한국은 화장품 소비량 세계 1위, 성형 수술률 1위, 보톡스 주사 소비율 1위인 나라라고(『현대문학』, 2003. 1월호, 253). 그러고 보면 이른바 '몸짱'이니 '얼짱'이라는 말의 위력은 정말로 대단하다.

그러면, 당연한 걸 가지고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내가 바로 이상한 사람일까? 아니면, '내 안의 아름다움'이란 결국 외모로부터 시작되는 걸까? '내 안의 아름다움'이란 복잡한 것이 아니고 외모가 바로 그 아름다움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신문의 교육적 기능을 지적하고 싶은 이 관점이 너무 형식적이어서 이미 쓸데없는 관점이 된 걸까?

 

그래도 그렇다. 이 기사를 보고, '큰일이구나. 나도 얼른 내 딸 얼굴을 좀 고쳐줘야 하는데….' 걱정하는 부모가 늘어나지 않을지, "이것 보라!"며 부모를 조르는, 아니면 온갖 수단 방법을 동원하여 성형외과를 찾아가는 고3이 늘어나지 않을지 그게 걱정이다. 그리하여 얼굴 예쁜 여성은 많아도 '가슴은 텅 빈 나라'가 될까봐 그게 걱정이다.

어른도 별게 아니고, 아름다움도 별게 아니고, 가치관 같은 거야 목록에도 들지 않고, 그리하여 알고 보면 여성도 남성도 다 별게 아닌 텅 빈 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