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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교육

스승의 날 Ⅳ : 선생님의 약봉지

by 답설재 2010. 5. 14.

교문에 걸린 현수막들을 보고 낯이 뜨거웠습니다.

"스승의 은혜, 감사합니다"(○○학교 운영위원회), "선생님, 사랑해요!"(○○학교 학생 및 학부모 일동

그렇게라도 해야 아이들이 한 번쯤 생각해보게 된다고 하겠지요. 그래도 그렇습니다. 낯이 뜨겁습니다. 퇴임을 한 자신이 다행스럽기도 합니다.

 

나도 당연히 앉아서 지켜보기만 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긴 합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에서는 올해엔 스승의 날 기념식을 하지 않기로 했고, 그날은 교문을 닫아버리겠다는 학교도 있답니다. 1

 

이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아예 학교장 재량 휴업일인가 뭔가를 하거나, 한동안 학부모들의 출입을 막거나, 선물이라면 손수건 한 장, 꽃 한 송이도 절대로 안 된다거나, …… 이러면 이건 '교육'도 아니고, 사람 사는 것도 아닙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왜 비정상인 사회, 비정상인 학교를 만듭니까!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학원 선생님을 위한 파티 준비"라며 온갖 준비물을 갖추어 가지고 나가는 아이를 만났습니다. 학교에선 안 되는 일이 학원에서는 된다? 아무리 어려워도 그렇지, 뭐 이런 세상이 있나 싶고, 그럴수록 차분하게 뭔가 새로 시작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신문 '독자마당'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보았습니다. 뻔한 내용입니까? 한 번씩 '써먹은' 방법입니까? 그래도 좋습니다. 알고도 속아준다는 건 이런 경우가 아닐까요?

이런 자료를 소개하는 마음은 '교육자로서의 우리의 본심을 지키자'는 것입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약' 선생님의 약봉지

 

스승의 날이 다가온다. 며칠 전 아들의 책가방 속에 '참되리 약국'이라는 약봉지가 들어 있었다. 약봉지에는 "친구를 돕고 사랑하게 되는 약",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되는 약", "부모님께 효도하는 약"이 들어 있었다. 게다가 '복용 시 참고사항'으로 "부드러운 알약은 부드럽게 녹여 드시고, 딱딱한 알약은 인내심을 가지고 끝까지 녹여 드시면 됩니다"라고 돼 있었고, '일반적 주의'로는 "드물게 약 효과를 못 거두시는 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제조하는 사람의 사랑과 정성을 믿지 못할 시에는 약효가 없습니다. 복용자의 눈에서 눈물이 나거나 가슴이 찡한 증세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약을 복용 후 자주 김보연 선생님 얼굴이 떠오르는 증세가 나타납니다. 잠자리에 복용했을 시에는 꼭 이를 닦고 주무십시오."라고 돼 있었다. 또 '부작용'으로는 "스승을 존경하지 않는 이에게 약을 조제하는 경우에는 혈압이 올라가거나 목소리가 커지는 등의 부작용이 생길 수 있습니다. 너무 단 약만을 복용할 시 치아 건강에 해로울 수 있습니다. 이 약은 어린이의 손이 닿는 곳에 안심하고 두셔도 됩니다."라는 재치 있는 내용에 절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참으로 선생님의 정성과 사랑이 가득 담겨 있는 약이었다. 반 모든 학생들에게 하나하나 사랑의 약봉투를 만들어 아이의 특성에 맞게 당부와 사랑의 문구를 적어 주신 것이었다. 부모로서 감사드리며, 이 같은 선생님이 계시는 한 대한민국의 미래는 밝지 않을까 한다.

 

양은주(경기 하남시)

 

 

2006년 4월, 내가 용인의 성복초등학교 교장이었을 때 그 학교 학부모들에게 보낸 '파란편지'2 「'스승의 날'을 앞두고」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 있었습니다.

우리도 좀 정신을 차리고 교육을 바라보자는 생각으로 다시 옮깁니다.

 

미국에서도 해마다 5월 첫째 주일이 '스승의 주간 Teacher Appreciation Week'이며, 그 주의 화요일을 '스승의 날 National Teacher Day'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스승의 주간을 더 기린다고 합니다. 미국에서 아이를 가르쳐본 어느 학부모의 글을 인용해보겠습니다. 인용하는 부분은 그분이 학급대표 학부모에게서 받은 편지의 내용입니다(심양섭, 『미국 초등학교 확실하게 알고 가자』, 도서출판 사람과사람, 2003, 253).

 

"월요일에는 당신의 정원에 있는 꽃 한 가지를 보내주세요. 꽃다발을 만들어 맥기 선생님께 드리려고 합니다. 화요일에는 초콜릿 하나를 보내주세요. 바구니는 이미 사놓았습니다. 그 바구니에 사탕과 함께 담아서 선생님께 선물할 예정입니다. 수요일에는 학부모회에서 선생님들께 점심식사를 대접합니다. 목요일에는 과일 하나를 보내주세요. 새 바구니에 담아 선생님께 드립니다. 금요일에는 아이들이 선생님께 드리는 그림이나 글을 모읍니다. 여성용 손가방 tote bag을 사놓았는데, 거기에 담아 드릴 생각입니다. 혹 바구니와 여성용 손가방 구입비를 기부하고 싶다면 1달러 내지 2달러를 학급대표 학부모인 팜 스미스 씨에게 보내주십시오."

편지와 함께 유인물이 한 장 더 있었다. A4 용지의 맨 위에 자녀 이름을 적도록 해놓고, 그 아래에 '맥기 선생님의 반이 되어 좋은 점을 그리거나 써주세요. 선생님께 드릴 것입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그 밑에는 빈칸이었다.

 

 

시애틀 근교 숄라인 교육구 Shoreline School District 선셋 초등학교 Sunset Elementary School 사례입니다. 매우 참신한 행사이므로 이 사례를 그대로 우리 학교에 적용해 보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까?

 

                  - 중앙일보 2010년 5월 14일 금요일 메트로 23의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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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일보, 2010년 5월 11일, A14,「교총 '스승의 날' 기념식 28년 만에 취소」. [본문으로]
2. 그 학교 학부모들은, 저를 만나면 '파란편지, 이번에는 언제 보내실 거예요?'하고 물었습니다. 보통의 종이에 인쇄해 보내면 읽지도 않을 것 같아서 파란색 종이에 제 편지를 인쇄해서 아이들 편에 보내던 시절이었는데, 그 파란색 종이의 편지가 '파란편지'로 불려지게 되었고, 이 블로그 이름도 '파란편지'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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