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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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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화과정 과목을 듣다」(?)

by 답설재 2010. 5. 17.

교육과학기술부가 일반계 고등학교 영어·수학 과목에서 학력 수준이 평균에 미치지 못하는 학생을 위한 기초과정과 우수 학생을 위한 심화과정을 별도 교과목으로 개설해 운영하기로 한 기사입니다.1

 

잘 하는 일입니다. 알지도 못하는 내용을 펴놓고 앉아 있어봤자 별 수 없고, 잘 하는 아이들은 '한심한' 내용을 펴놓고 앉아 있어야 한다면, 이런 과정 개설이 그야말로 절실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이를 '수준별 수업'이라고 합니다. '수준별 수업', 말만 나와도 징그럽습니까? 김만곤이라는 사람이 깃발을 들고 동분서주하던 그 제7차 교육과정기가 생각나서 또 시위를 하러 나가고 싶습니까? 요즘은 이런 문제를 가지고 시위를 하지는 않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저는 그때 그야말로 '죽을 지경'이었는데…….

 

 

 

 

 

 

위의 기사 2단 아랫부분을 보십시오. 다음과 같은 내용이 보입니다.

 

또 심화과정은 특목고의 전문교과나 대학과목선이수제(AP)와 비슷한 수준으로 과목이 구성돼 보통교과에서 높은 성과를 낸 학생들이 듣게 된다. 보통교과도 수준별 수업이나 교과교실제를 통해 학생 실력에 따라 수업한다.

 

이상한 단어가 눈에 띠지 않습니까?

저는 "학생들이 ○○과정의 □□과목을 듣는다"는 저 표현이 정말로 싫습니다. 듣다니요? 학생들이 들으려고 학교에 갑니까!

대학에서는 교수들의 강의가 천편일률적으로 설명형이라고 합시다(오늘날에는 그렇지도 않습니다). 고등학교에서는 사범대학이나 교육대학 교수들이 상투적으로 쓰는, "□□과목을 들어라"거나 "◇◇과목은 꼭 들어야 한다"느니 하는 그런 표현이라도 흉내내고 싶습니까?

 

듣다니요? 우리 교육의 최대 맹점이 "학습이란 교사로부터 설명을 듣는 활동"이라고 여기는, '누가 뭐라고 해도 역시 설명을 듣는 것이 공부 아니냐?'고 여기는 바로 그 점입니다. 그 폐단을 외면하고, 저렇게라도, 형편없는, 쓰레기 같은 대학교수들 흉내라도 내어 표현해야 한다는 관습이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입니까?

이 점을 고치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결국 교육 때문에 선진국 대열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고, 그러므로 이 나라 교육은 결국 '그 설명', '그 듣기' 때문에 망하고 말 것입니다. 두고 보십시오. 우리는 '듣고 대답하는 교실'을 '생각하고 말할 수 있는 교실', '생각하고 질문하는 교실'로 바꾸어야 합니다.

무엇을 부끄러워해야 하는가는 알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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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교직원신문, 2010년 4월 26일, 3면. 보도자료가 있었다면 이 내용의 기사는 어느 신문이나 비슷한 표현으로 작성되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