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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박재삼 「천지무획(天地無劃)」

by 답설재 2010. 5. 15.

'스승의 날'입니다. 오늘은 좀 일찍 마쳤는지, 중학생 몇 명이 신나게 떠들며 아파트 마당을 가로질러 갑니다.

 

아침에 일어나 블로그를 열어보았더니 다음과 같은 댓글이 가슴을 저리게 했습니다. 커피도 내려 마시고 신문도 보고 했지만 잊히지 않아서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오늘 교장공모제 지원서류를 인쇄소에 제본 의뢰하고 돌아왔습니다.

이제 시장에 저는 섰습니다.

눈에 보이는 누군가를 이겨 내고

교장이 되어야 합니다.

이걸 어떻게 하죠?

사고 팔고 이기고 지고

이런 것이 싫어서 선생님이 되었었는데요.

쓰디쓴 마음에 선생님 블로그에 들어와

아직도 향기 가득한 꽃 한 송이 보고 돌아갑니다.

초심을 잃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만

아직도 교육의 길은 끝이 없고 아이들은 여전히 사랑스러운데

교육계는 환멸을 느끼게 합니다, 제게도.

 

 

이 블로그에 자주 오시는 분이 틀림없습니다. 그건, 저 댓글의 마지막 두 행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아직도 교육의 길은 끝이 없고 아이들은 여전히 사랑스러운데 / 교육계는 환멸을 느끼게 합니다. 제게도."

이 내용은 이 블로그에 소개한 나의 「마지막 인사」의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그 '환멸'의 내용에 대해 저 분과 나는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할지라도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이 교육자의 가슴앓이를 외면할 수가 없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저 선생님을 찾아가 달래주고 싶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합니까? 다만 그 신념까지 팔지는 않기를 기원합니다. 2007년 12월 10일이었으니까, 내가 아직 교장이었을 때, 이 블로그에 『신념의 표상(表象)』이란 '학교장 칼럼'을 쓴 적이 있습니다. 그 글의 뒷부분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들으시면 웃으시겠지만, 그동안 이 신념의 표상에 대해 자주 생각해왔습니다. 그래서 연전(年前)에 시인 박재삼의 다음 시를 제 신념의 표상으로 삼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제 방에 오실 때 출입문 쪽에 보면, 누구에게 멋있게 써달라고 할 수도 없어서 그냥 컴퓨터로 출력하여 게시한 그 시를 보실 수 있습니다. 여기에 그 시를 소개하겠습니다. 쉬운 것 같았는데 자꾸 그 뜻이 깊어집니다.

 

 

 

천지무획(天地無劃)

 

박재삼(1933~1997)

 

나를 하염없이 눈물나게 하는, 풀잎 촉트는 것, 햇병아리 뜰에 노는 것, 아지랑이 하늘 오르는 그런 것들은 호리(毫釐)*만치도 저승을 생각하랴. 그리고 이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아주 이들을 눈물나게 사랑하는 나를 문득 저승에 보내 버리기야 하랴. 그렇다면 이 연연(戀戀)한 상관(相關)은 어느 훗날, 가사(假使) 일러 도도(滔滔)한 강물의, 눈물겨운 햇빛에 반짝이는 사실이 되어도 무방한 것이 아닌가. 얼마 동안은 내 뼈 녹은 목숨 한 조각이, 얼마 동안은 이들의 변모한 목숨 한 조각이, 반짝인다 하여도 좋다. 혹은 나와 이들이 다 함께 반짝인다 하여도 좋다. 그리하여 머언 먼 훗날엔 그러한 반짝이는 사실을 훨씬 넘어선 높은 하늘의, 땅기운 아득한 그런 데서 나와 이들의 기막힌 분신(分身)이, 또는 변모(變貌)가 용하게 함께 되어 이루어진, 구름으로 흐른다 하여도 좋을 일이 아닌가.

 

                                                                     호리(毫釐) : 매우 적은 분량을 비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