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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나희덕 「비오는 날에」

by 답설재 2010. 7. 30.

   

비오는 날에

 

                                              나희덕 (1966~ )

  

내 우산살이 너를 찌른다면, 미안하다.

비닐우산이여

나의 우산은 팽팽하고

단단한 강철의 부리를 지니고 있어

비오는 날에도 걱정이 없었거니

이제는 걱정이 된다.

빗속을 함께 걸어가면서 행여

댓살 몇 개가 엉성하게 받치고 선

네 약한 푸른 살을 찢게 될까 두렵구나

나의 단단함이 가시가 되고

나의 팽팽함이 너를 주눅들게 한다면

차라리 이 우산을 접어두겠다.

몸이 젖으면 어떠랴.

만물이 눅눅한 슬픔에 녹고 있는데

빗발이 드세기로

우리의 살끼리 부대낌만 하랴

비를 나누어 맞는 기쁨,

젖은 어깨에 손을 얹어

따뜻한 체온이 되어 줄 수도 있는

이 비오는 날에

내 손에 들린 우산이 무겁기만 하다.

 

 

 

 

오늘 아침 신문에서 본 시입니다.

비오는 날에.

내 튼튼한 우산의 안락함만으로 지낸 것을 한 비닐우산의 주인에게 사과했습니다.

사과만으로 끝날 수 있는 거라면 그런 세상이라면

다행입니다.

내 우산으로 저지른 행위에 대해 걱정이 된다고 하고

차라리 "이 우산 접어둘게." 물러서고

그렇게 물러서서 '내 몸이야 젖으면 어떠랴.' 넉넉한 마음이 되고

그렇게 물러선 마음이 '비를 나누어 맞는 기쁨'이 된다면야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렇기만 해도, 그 진정성이 가 닿을 수 있는 마음을 바라볼 수만 있다 해도

아직 괜찮은 기대해도 좋은 사랑할 만한 세상일 것입니다. 

 

 

강은교 시인이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에 다음과 같이 소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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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누군가와 함께 걸어갈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라고 생각될 때가 있다. 사방이 환히 열려 있는 이 여름, 창틀 너머로 보이는 골목길도 어디엔가로 열심히 가고 있구나. 우산 하나가 귀중하다. 당신을 찌르지 않는 우산 하나가. 오늘 아침 나희덕 시인은 이런 우산 하나를 주는구나. <강은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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