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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박재삼 「머석과 거석」

by 답설재 2010. 11. 22.

 

 

 

'참 거시기하다' 하면 그렇게 말하는 사람 얼굴 한번 쳐다보고 말면 그만인 일이긴 하지만 심각한 논의를 하거나 그런 논의로써 뭘 결정해야 하는 자리에서는 속 터지는 경험을 한 적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그런 표현이 역시 오묘하다는 확신을 가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몸이 좀 괜찮다 싶은 어느 주말, 누구네 혼사로 자연스럽게 모였다가 헤어지는 전철 안에서 교육부에서 함께 근무한 적이 있는 한 사람이 역시 함께 근무한 적이 있는 어느 분의 죽음에 관한 소식을 전했습니다. 퇴임 후에 무슨 종교에 관한 일을 열성적으로 하다가 병들어 사망했다면서 그랬습니다.

"그분은 평소에도 워낙 저-기한(저어기한) 분이었잖아요."

'저-기한 분' '저-기하다'?

그가 지금도 그런 표현을 하고 있는 게 이젠 신기하게 느껴지지는 않지만 무슨 일이든 딱 부러지지 않게 해석하면서 모나지 않게 살아가려고 애쓰는 모습이 훌륭해보이기조차 했습니다.

 

하기야 '저-기하다' '머석하다' '거석하다'…… 그런 표현이 오묘하지 않을 리 없지요.

 

 

머석과 거석

 

 

내 젊었을 적

고향의 한 늙은이가

사투리로 이렇게 말했네.

"내가 웬만큼 머석하면 거석했을 낀데,

원청 거석하다 보니까

머석할 수가 없었네."

 

얼른 무슨 말이 안 나와

그저 指稱이 애매한

머석과 거석을 들고 나와

말을 때우고 있었으니

'저 老人 보게.'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건만,

이제는 그것이 어느새

내게 오게 된

멍청한 나날이여.

 

 

박재삼, 『다시 그리움으로』(실천문학사, 1996), 6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