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라는 이름의 해피
만난 첫날부터 결혼하자던 한 남자에게
꼭 한 달 만에 차였다
헤어지자며 남자는 그랬다
너 그때 버스 터미널 지나오며 뭐라고 했지?
버스들이 밤이 되니 다 잠자러 오네 그랬어요
너 일부러 순진한 척한 거지, 시 쓴답시고?
그런 게 시였어요? 몰랐는데요
너 그때 「두사부일체」 보면서 한 번도 안 웃었지?
웃겨야 웃는데 한 번도 안 웃겨서 그랬어요
너 일부러 잘난 척한 거지, 시 쓴답시고?
그런 게 시였어요? 몰랐는데요
너 그때 도미회 장식했던 장미꽃 다 씹어 먹었지?
싱싱하니 내버리기 아까워서 그랬어요
너 일부러 이상한 척한 거지, 시 쓴답시고?
그런 게 시였어요? 몰랐는데요
진정한 시의 달인 여기 계신 줄
예전엔 미처 몰랐으므로 몰라 봬서
죄송합니다. 사연 끝에 정중히
號 하나 달아드리니 son of a bitch
사전은 좀 찾아보셨나요? 누가 볼까
가래침으로 단단히 풀칠한 편지
남자는 뜯고 개자식은 물로 행굴 때
비로소 나는 악마와 천사 놀이를 한다
이 풍경의 한순간을 시 쓴답시고
.............................................................................................
김민정, 「피해라는 이름의 해피」,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 문학과지성사, pp. 96~97.
『현대문학』 2010. 6월호, 「텍스트에 포개놓은 사진」에서 옮김.
당신 같으면 그런 상태로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저 시에 나오는 저 시 쓰는 여인이,
'만난 첫날부터 결혼하자던 한 남자에게' 그 '개자식'에게 꼭 한 달 만에 차여버린 저 시인이,
기다린다고, 기다려본다고 무슨 수가 나겠습니까?
저렇게, 버스터미널 지나오며 한 이야기, 「두사부일체」 보면서 웃지도 않은 일, 도미회 장식했던 장미꽃 다 씹어 먹은 일까지 모조리 오해하고 있는데,
저 개자식이 그 사이에 있었던 어떤 일인들 저 여인에게 유리하도록 이야기해 주겠습니까. 그렇게 해석해 줄 리가 있겠습니까.
저렇게까지 해놓고 오해를 풀었다는 이야기를 단 한 번이라도 들어본 적 있습니까?
'대화'라는 게 그렇게 좋은 겁니까? 오해라는 게 그렇게 풀릴 수 있는 겁니까?
오해를 풀어보려는 시도 자체를 말아야지요.
포기할 건 얼른 포기해야지요.
그냥 그렇게 지내다가 말아야지요.
오해는 사람을 죽이는 거라니까요? 충분히 죽일 수 있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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