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구경 가다
남진우
봄날 피어나는 꽃 옆엔 으레 저승사자가 하나씩 붙어 있다
봄날 피어나는 꽃 옆에 다가가면 저승사자는 한쪽 눈을 찡긋하며
오라, 너도 꽃구경 온 게로구나
이 꽃 저 꽃보다 나랑 진짜 꽃구경하러 갈까 한다
저승사자 손에 이끌려 꽃밭 사이 무수한 꽃들 위에 엎으러지고 뒤집어지다가
하늘하늘 져 내리는 꽃잎을 이마로 받고 가슴으로 받고 팔다리로 받다가
아 이 한세상 꽃처럼 속절없이 살다 가는구나 싶어 고개를 들면
저승사자는 그윽히 나를 바라보고 있다
길가 꽃그늘에 앉아 잠시 숨 고르고 꽃들이 내뿜는 열기 식히노라면
저무는 하늘에 이제 마악 별이 돋아나고
내가 가야 할 길 끝에 환히 열린 꽃마당이 보인다
저승 대문 닫히기 전
저 꽃마저 보지 않으련 은근히 속삭이는 저승사자 뒤를 따라 걸어가는데
아무리 걸어도 꽃대궐 가까워지지 않고
으슬으슬 추위가 내 몸을 감싼다
봄날 피어나는 꽃 옆에서 한 시절 놀다 풀려나오면
현기증처럼 아득하게 졸음 쏟아지고, 마악 잠 속으로 몸을 처박을 찰나
저승사자가 스윽 웃으며 나타나 내게 저승꽃 한 송이 건네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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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진우 1960년 전주 출생. 1981년 『동아일보』 등단. 시집 『깊은 곳에 그물을 드리우라』 『죽은 자를 위한 기도』 『타오르는 책』 『새벽 세 시의 사자 한 마리』 『사랑의 어두운 저편』 등. <김달진문학상> 등 수상.
『現代文學』2010년 6월호, 94~95쪽에서 옮김.
"오라, 너도 꽃구경 온 게로구나. 이 꽃 저 꽃보다 나랑 진짜 꽃구경하러 갈까"?
'한쪽 눈을 찡긋'하는 저승사자,
그를 따라가면 어떻게 되는 걸까……
가까이 다가가면,
오래 쳐다보고 있으면
온몸이 늪에 잠기듯, 아니면 스르르 눈 감기고 죽은 듯 잠들 듯
그 저승사자를 따라가게 되는 일이 벌어지게 되는 걸까……
'덮석' 손목 잡혀 가는 게 아니라(그렇다면 세상이 지옥 같아지겠지. 이 집 저 집에서 잡혀가는 사람 때문에 아내나 남편, 아들이나 딸, 때로는 사위, 며느리, 아버지나 어머니 같은 생사람이 놀라 자빠지는 소리가 간단없이 들려오겠지),
그처럼 무질서하고 무지막지한 방법으로 잡혀 가는 게 아니라,
나도 모르게 나 스스로 끌려가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것 아닐까.
아이들처럼, 그 팔랑대는 나비들처럼 꽃밭이건 어디건 이리저리 팔랑대는 아이들처럼 말고,
일행(一行)과 떨어져 괜스레 마음 뺏기고 들여다볼 때,
그 저승사자가 보내는 야릇한 미소를 도저히 눈치채지 못하고 마는 건 아닐까……
'아무리 걸어도 꽃대궐 가까워지지 않고'
'봄날 피어나는 꽃 옆에서 한 시절 놀다 풀려나오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스윽 웃으며 나타나 저승꽃 한 송이 건네고' 가는
비몽사몽의 저승사자라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이 겨울 가고
다시 봄이 와
어디 저런 꽃구경 가면
주위부터 한바퀴 잘 둘러봐야지.
저승사자 그림자 스민 곳부터 찾아봐야지.
빛깔 곱고 냄새 신비로운,
보면 볼수록 돌아설 수 없는,
아, 드디어 마음까지 빼앗는 꽃 가까이에는
분명 그 저승사자가 노리고 있을 테니까
날 홀릴 작정인지 아닌지 확인해 봐야지.
'아, 이 한세상 꽃처럼 속절없이 살다 가는구나'
아니!
이것 봐!
겨울 가고 봄이 오는 걸 기다릴 것도 없이
이 세상 어느 곳 어느 때든 그곳이 꽃밭이란 얘기가 아닌가? 혹 그런 얘긴 아닌가?
하얗게 눈 덮인 바깥을 내다보는 겨울 아침에
한 편의 영화 같은, 소설 같은 詩 한 편이 지나온 생애를 돌아보게 한다.
'저승사자 손에 이끌려 꽃밭 사이 무수한 꽃들 위에 엎으러지고 뒤집어지다가 / 하늘하늘 져 내리는 꽃잎을 이마로 받고 가슴으로 받고 팔다리로 받다가 / 아 이 한세상 꽃처럼 속절없이 살다 가는구나 싶어 고개를 들면 / 저승사자는 그윽히 나를 바라보고 있다'
'아, 이 한세상 꽃처럼 속절없이 살다 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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