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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金春洙 「千里香」

by 답설재 2011. 3. 6.

千里香

 

 

꽃망울 하나가 가라앉는다.

얼음장을 깨고 깊이 깊이

가라앉는다.

어둠이 물살을 그 쪽으로 몰아붙인다.

섣달에 紅疫처럼 돋아난

꽃망울,

저녁에는 함박눈이 내린다.

마을을 지나

잡목림 너머 왔다 간 사람은

아무 데도 발자국을 남기지 못한다.

 

       『金春洙詩選2 處容以後』(민음사 오늘의 시인 총서, 1982), 76쪽.

 

 

 

 

 

 

 

봄입니다.  그걸 부정하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부정한다고 해서 될 일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지난 2월 둘째 주 주말에만 해도 전국적으로 폭설이 내린 곳이 많았습니다. 동해안에는 백몇십 년 만에 처음 그렇게 많은 눈이 내려서 피해가 극심했습니다. 그 당시 불친 "강변 이야기"에 실린 사진입니다.

 

부치지 못했던 오랜 추억을 기억하던 편지가  한꺼번에 쏟아지는…

 

그분은 이 사진 아래에 오석환의 시 「눈(雪)은 부드러운 저항의 눈빛(眼光)을 갖고 있다」에서 위의 구절을 옮겼습니다.

 

자욱하게 눈 내리는 저녁 풍경을 저렇게 나타낸 사진을 본 적이 없습니다. 저런 풍경 속에서는 그리움이 맺혀 있지 않은 곳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가 나를 미워하든 말든 그립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기도 합니다.

 

다 지나고 나면 그만입니다. 잊히고 맙니다. 그래서 시인은 '마을을 지나 / 잡목림 너머 왔다 간 사람은 / 아무 데도 발자국을 남기지 못한다'고 했을 것입니다.  우길 것 없이 봄이 확실하므로 지난 겨울조차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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