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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윤예영 「강을 위한 망가」

by 답설재 2011. 1. 14.

강을 위한 망가

 

 

윤예영

 

 

일요일 오후 산책을 해요

강변을 따라 걷지요

엄마들은 쇼핑카트에 인형 얼굴을 한 아기들을 태우고

아빠들은 빨강 파랑 노랑 헬맷을 쓰고 인라인스케이트를 타요

햇살은 차갑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고

그러니까 두 시와 세 시 사이에서 초당 일 도씩 기울구요

젤리처럼 출렁이는 강물 위에는

고무 오리가 헤엄을 쳐요

 

리뉴얼된 강에는 갈대나 잡풀은 자라지 않아요

대신 헬륨가스를 빵빵하게 채운 풍선들이 노래를 해요

이 강은 폭 1.5미터 길이 400㎞의 첨단시스템으로서

자체정화시스템과 자동수위조절장치를 부착하여

 

조심하세요!

아이들이 카트에서 뛰어내릴 수 있어요

엄마, 내가 풍선이 지껄이는 잔소리까지 들어야겠어?

그리곤 귀여운 무릎을 구부리며 물수제비를 뜨지요

고무 오리가 날아오르고

그렇지!

풍선이 터지고

그렇지!

시리얼 상자가 터지고

아니, 그건 아니야

우유가 상해요

오 저런!

 

그제야 아빠는 아이를 번쩍 안아 카트에 싣고

엄마는 풍선을 꺾어 아이의 입에 물려주어요

자 불어봐. 우리가 어렸을 땐 이걸 불고 놀았지

이 강은 폭 1.5미터 길이 400㎞의 첨단시스템으로서

자체정화시스템과 자동수위조절장치를 부착하여

 

아빠는 다시 팔꿈치를 90도로 구부리고

오른발 왼발 오른발 왼발

헬륨가스를 잔뜩 들이마신 아이들이 끄덕끄덕 졸기 시작하면

어느덧 강물 위로 노을이 내려앉아요

엄마들은 인형의 눈꺼풀을 닫아주면서

어쩌다 아이들 눈꺼풀까지 내려주는 신세가 되었을까

비탄스러운 한숨을 쉬지만

사실은 행복해 미칠 지경

이 강은 폭 1.6미터 길이 400㎞의 첨단시스템으로서

오늘치의 땀을 다 흘린 아빠는 이제 헬맷을 벗으며

사실 컨베이어벨트시스템이 첨단은 아니지, 안 그래?

 

맞아요, 아랫동네엔 진짜 강물처럼 강이 흐른다잖아요

구부울 구부울한 강물 말이에요

그래, 뱀처럼 구부울 구부울 말이오

걱정 마 언젠가 우리도 걷게 될 거야

진짜 강이 흐르는 마을로 이사를 갑시다!

그러나 사실은 엄마도 알아요

이 마을 밖에는 어떤 마을도 없다는 걸

 

조명이 꺼지고

풍선들이 일제히 터지면

드디어 일요일 오후의 산책은 막을 내리고

아이들은 진짜 강물 한 번 보지 않고도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걸 척척 그려낸다죠?

그건 그랑자트섬의 일요일 오후보단 덜 인상적이겠지만

엄마 아빤 어쨌든 열렬히 박수 치겠죠

진짜 같은 가짜가 진짜 진짜라고

그게 진짜라고 배웠으니까

 

근데, 밤에도 강물은 흘러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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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예영 1977년 서울 출생. 1998년 『현대문학』 등단. 시집 『해바라기 연대기』.

 

 

 

 

 

 

『현대문학』2010년 6월호(106~109)에서 봤습니다.

설명해보고 싶은데 한이 없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근데, 밤에도 강물은 흘러가나요?"

바다도 좀 쉬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가짜 강이 밤에도 흐를 리가 없을 것 같기에 꼭 대답을 들으려고 묻는 건 아니지만 이야기의 처음으로 돌아가듯 가장 궁금한 걸 한번 물어보기라도 한 것입니다.

 

"조명이 꺼지고 / 풍선들이 일제히 터지면 / 드디어 일요일 오후의 산책은 막을 내리고 / 아이들은 진짜 강물 한 번 보지 않고도 /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걸 척척 그려낸다죠? / 그건 그랑자트섬의 일요일 오후보단 덜 인상적이겠지만 / 엄마 아빤 어쨌든 열렬히 박수 치겠죠"

 

주말이면 야단법석을 치루어야 하는 고단한 삶의 저녁, '조명이 꺼지고' '풍선들이 일제히 터지면' 막이 내리는 거죠. 그 '공연(公演)'으로 '아이들은 진짜 같은 강물 한 번 보지 않고도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걸 척척' 그려냅니다.

진짜를 본 아이들은 그렇게 진짜처럼 그리지도 못하겠지요.

이럴 수 없이 직설적이어서 시원합니다.

뼈저리지 않고는 이런 얘기를,

이처럼 쉽게,

(시인들은 점점 더 자기네들만 아는 말로 자기네들끼리 속삭이거나 혼자서들 뭐라고 중얼거립니다.)

이처럼 나직나직하게,

……

어쨌든, 이처럼 재미있고 멋있게 이야기해줄 수가 없을 것입니다.

 

혹 '강을 깨끗이 하고 잘 보존하자는 얘긴가?'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건 좀 그렇고 그런 것까지 얘기할 건 없고, 우리의 마음까지 자꾸 가짜가 되어가는 것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게 이럴 수 있을까 싶다는 건 이야기가 되겠지요.

우리가 어디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