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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박형권 「털 난 꼬막」

by 답설재 2010. 4. 19.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허 참 허 참…… 내가 퇴임을 했으니 ……' 하며 지내다가 『현대문학』 3월호를 보고 있습니다.

 

설명이 필요 없는, 설명을 해보려고 덤벼들어 봐도 도무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 김사인 시인의 말에 따르면 대책이 서지 않는 시 한 편을 옮깁니다.

시인 자신이 화자(話者)인, 그 시인의 가계사(家系史)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에는 그 중에서도 지금 노년기에 들어선 사람치고 이 가계사의 주인공보다 나은, 이보다 화려한 세월을 보냈다고 큰소리칠 만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김사인 시인의 감상문 또한 한 편의 시와 같아서 시 아래에 그대로 옮깁니다. 「털 난 꼬막 Ⅱ」가 될 만한 감상문입니다.

[박형권 시인의 시집 『우두커니』(2009, 실천문학)에서 김사인 시인이 뽑은 시(『現代文學』2010년 3월호, 138~139쪽)].

 

 

털 난 꼬막

 

 

아버지와 어머니가 염소막에서 배꼽을 맞추고 야반도주할 때

가덕섬에서 부산 남포동에 닿는 물길 열어준 사람은 오촌 당숙이시고

끝까지 뒤를 추적하다 선창에서 포기한 사람들은 외삼촌들이시고

나 낳은 사람은 물론 어머니이시고

나 낳다가 잠에 빠져들 때 뺨을 때려준 사람은 부산 고모님이시고

나하고 엄마, 길보다 낮은 집에 남겨두고

군대에 간 사람은 우리 아버지시고

젖도 안 떨어진 나 안고 '천신호'를 타고, 멀미를 타고 가덕섬으로 돌아온 사람은 할머니시고

빨아 먹을 사람 없어지자 젖이 넘쳐나

염색공장 변소 바닥이 하얗도록 짜낸 사람은 다시 우리 어머니시고

젖 대신 감성돔 낚아서 죽 끓여 나를 먹인 사람은

큰아버지시고

무엇을 씹을 때부터

개펄에서 털 난 꼬막 캐와서 먹인 사람은 큰어머니시고

그렇게 저녁마다 차나락 볏짚으로 큰아버지 주먹만 한 털 난 꼬막 구워주신 사람

큰어머니시고

한 번씩 나 안아보러 오는 우리 엄마에게

덕석에서 늦은 저녁상을 받으며

욕 잘하는 우리 큰어머니

니 털 난 꼬막으로 나왔다고 다 니 새끼냐 하셨을 것 같고

우리 엄마 울고

우리 엄마 울고

털 난 꼬막 목젖에 걸려 넘어가지 않고

 

 

웬 '자연산'이란 말인가! 이런 시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염소막과 야반도주와 염색공장과 털 난 꼬막으로 이어지는 작중의 신산한 가계사는 재론이 필요치 않다. 가슴 한 켠이 울컥하는 것을 피하지 못한다. 독특하게 비틀린 문장의 '자연스러운 부자연함'은 아마도 눈물과 감성을 견디기 위한 표정의 안간함이자, 그 구문상의 등가물일 것이다.

이런 질감의 야생성――거칠고 싱싱한 따뜻함이며 섧고 쓴 눈물 같은 것들――을 시에서 만나는 것도 귀한 일이 되었다. 도회의 삶이 비겁하고 왜소하다고 느껴질수록, 박멸되어가는 옛 삶이 거느리던 영웅적 풍모의 흔적과 생의 그 직접성의 감각들이 더욱 그립고 아프다.

                                                                                                                           ―― 김사인

 

 

"우헤헤헤 우헤헤헤…… 털 난 꼬막 털 난 꼬막 우헤헤헤……."

웃고 말 수도 있겠지만 우리나라 수많은 시인들 중에 단 한 명이라도 '아, 파란편지를 쓰는 이 사람도 이런 시를 좋아하는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시인이 생긴다면 얼마나 좋을까, 당연히 '꿈'이지만... 혼자서는 무슨 생각인들 못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