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을 하고 나니까 사람들과의 인연이 새롭게 보입니다.
이제 맺어진 인연을 잘 지키고, 굳이 새로운 인연을 찾아나설 때는 아닌 것 같습니다. 소년처럼, 이것저것 재지 않고 다가가다가 상처를 입고 눈물 글썽입니다. 더구나 이제 그 쓰림은 당장 의기소침으로 이어집니다.
잊혀져가던 인연들을 다시 생각하는 새벽에, 오늘도 가슴이 저렸습니다.
「취운정(翠雲亭) 마담에게」를 쓴 김원길 시인은, 1960년대의 누추한 제게 세상은 아름다운 마음으로도 살아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었습니다. 그는 지례예술촌을 운영하고 있습니다(유홍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당시에는 안동의 어느 여자고등학교 국어교사였습니다. 그러니까 그 국어 선생님은 '국어'를 잘 가르치는 선생님이었지, 대학입학시험에 출제될 문제를 잘 가르치는 데는 소질이 없었을 것입니다. 곧 국어 선생을 집어치운 걸 보면 그걸 짐작할 수 있습니다.
나는 그분에게 '단 한 푼'도 값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찾아가지 않은 세월이, 그에게 오히려 득(得)이 되었다면 좋겠습니다. 그럴 것이 분명합니다. 손해 날 일 없고, 마음 편하고, 그래서 더 좋다면 그만입니다.
취운정(翠雲亭) 마담에게
굳이
어느 새벽꿈 속에서나마
나 만난 듯하다는
그대,
내 열번 전생의
어느 가을볕 잔잔한 한나절을
각간(角干) 유신(庾信)의 집 마당귀에
엎드려 여물 씹는 소였을 적에
등허리에
살짝
앉았다 떠난
까치였기나 하오
참 그날
쪽같이 푸르던
하늘빛이라니.
- 金源吉 시집 『들꽃다발』(1994, 길안사)에서
인연(因緣)에 대해서라면,
아니 뭐랄까…… 추억과 그 추억 속의 한 부분이 된 사람에 관해서라면,
이 시인의 어느 시 한 편을 인용해서 이야기하면 거의 정확한 표현이 가능하지 않을까,
그렇게 단정(斷定)하며 지낸 세월이 40년이 넘었고, 실제로 더 나은 시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찔레라도
누구는 가버린 사랑을
이슬에 씻기운 한 송이
장미로 보듬는데
그대 내 가슴에
사철
꽃도 잎도 안 피는
메마른 가시넝쿨로 남아
바람이 일 적마다
서걱
서걱
살을 저민다.
나는 애써
찔레라도 피우고파
찔레라도
피워 가지고파
눈물로 물준다만
추억이여,
한송이 가시없는 풀꽃으로나
왜
피어 남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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