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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파란편지 모음 1

스승의 날에 받은 선물 - 아름다운 제자의 편지에 대한 답신 -

by 답설재 2007. 8. 29.

성복 학부모님께 드리는 파란편지

 

 

 

 

스승의 날에 받은 선물

- 아름다운 제자의 편지에 대한 답신 -

 

 

 

 

올해 스승의 날에는 전국적으로 태반의 학교에서 수업을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불편한 마음으로 가르치느니 차라리 쉬기로 했었지만 안타깝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예년에는 상투적으로 이른바 '촌지' 문제를 다루던 언론도 이번엔 '교문을 닫았다'는 강한 표현까지 쓰면서 못마땅해했습니다. 모른 체 수업을 했다면 또 어느 교사가 봉투를 받았네, 어느 학교 교장은 교문을 지키고 서서 출입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했네, 듣기 거북한 소식들이 전해져 자존심 상했을 것이 뻔하여 '그럼 도대체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고 묻고싶기도 했고, 우리를 공깃돌 다루듯 가볍게 그러지 말고 '좀 가만두면 좋겠다'는 심정이기도 했습니다.

 

스승의 날이 지나자마자 이번에는 어느 교사가 학부모들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는 소식에 이어 어느 중학교 학생이 교사를 발길로 찼다는 소식도 전해졌습니다. 언론에서야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겠지만 이런 일은 널리 알리지 말고 조용히 처리하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사회는 어떤 문제가 발견되기만 하면 앞뒤 재지 않고, 나중에야 어떻게 되든 우선은 뒤집어보고야 마는 이 습성, 온통 끓어오르는 이 분위기가 문제이기도 합니다.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고마움에 대한 성의를 선물로 표현할 수도 있다는 것은 가르치지 않아도 좋을까', '아이들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세상에는 '이것은 내가 마련할 수 있는 최고의 물건'이라는 표현을 하며 선물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것은 '나는 당신을 그만큼 비중 높게 여긴다'는 뜻이겠지요. 반면, 우리는 선물을 내밀며 흔히 '보잘것없는 것을 마련했다'는 표현을 합니다. 전자의 사람들이라면 "그럼 내가 보잘것없는 사람이란 말이냐?"고 묻겠지만, 우리의 경우 '당신은 내게 말할 수 없는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이므로 이까짓 선물로 그 소중한 은혜를 나타낼 수는 없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그나저나 우리는 '마음의 선물'을 강조하다가 요즘은 마치 선물을 해서는 안 된다는 듯한 분위기이니 이 일을 장차 어떻게 합니까. 심각한 문제가 많으므로 이 사회가 더욱 삭막해지더라도 그까짓 것은 지도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일까요.

 

저는 그 날, 얼마 전에 저를 찾아왔던 한 제자로부터 "선생님 사랑합니다"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다시 만난 것은 참 좋은 봄날 같은 해후이며, 오랜만에 초등학교 학생으로 돌아가서 아직은 한결같은 선생님의 눈빛을 확인했으며, 이번에는 초등학교 그 시절처럼 나무라지 않아 고마웠다는 내용에 덧붙여 건강을 좀더 보살펴야한다고 부탁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지금 어느 고등학교 선생님입니다.

 

그는 35년 전에는, 그 시골 초등학교 6학년 2반 여학생이었습니다. 본인의 말로는 별로 예쁘지도 않은 아이가 공부는 열심히 하지 않고 '허구한 날' 다른 아이들과 다투기만 하여 '허구한 날' 저에게 꾸중을 들었답니다. 기억 속의 그 학교에 가보았더니 저 쪽 자리에 얼굴 하얀 한 아이가 우울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그 애가 그렇게 앉아 있는 이유를 자세히 파악하지 않은 채 한 해를 다 보낸 제 자신이 참 어처구니없었습니다. 그는 중학교와 고등학교 때도 그렇게 지냈는데, 그 이유는 가정 사정이 따뜻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아이들이 우리의 기대에 맞추지 않을 때는 "내가 지금 이런 상태에 있습니다" 하고 우리의 보살핌과 사랑을 요청하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고 보면 틀림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 신호를, 어떤 아이는 자꾸 다가오는 일로 나타내기도 하지만 남을 괴롭히거나 걸핏하면 티격태격하는 일로 나타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신통하게도 일기만큼은 줄기차게 썼다고 했습니다. 그의 설명을 들으면, 일기를 써야 하므로 남과 싸우면서도 그 상황을 정리하고 있었고 그렇게 일기를 쓰면서 일상생활과 주변 환경,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이 습관이 되었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가 별 뜻 없이 이야기하는 일기 쓰기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그는 일기를 쓰면서 지냈으니까 어떤 생활을 해도 근본적으로는 문제가 없었고, 갖가지 어려움도 하나하나 주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그는 대학에 가서 특수교육을 전공하였고, 특수학교에서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일반계 고등학교로 옮겨 된 것입니다. 저는 그에게 물었습니다. "고등학교 학생들은 아무래도 교사들을 많이 걱정시키겠지?" "모두들 그 나이에 어울리는 문제를 일으키지요. 그러니까 우리들 교사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 대답이 저에게는 얼마나 가슴 든든했겠습니까. 함께 이 길을 가고 있는 것에 얼마나 큰 위안을 받았겠습니까. 함께 이 길을 가며 이제는 서로에게 위안이 되고 한때의 선생과 제자가 이제는 서로 가르치고 배우게 된 것이 또한 얼마나 신기하고 즐거운 일이겠습니까. 그렇게 물으면서 저는 이런 대답을 기다렸습니다. "말씀 마십시오. 요즘 교사 생활이 어렵다는 것쯤 선생님도 짐작하시는 대로입니다."

 

 

2006년 5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