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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파란편지 모음 1

우리는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 좋아하는 것일까요?

by 답설재 2007. 8. 29.

우리는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 좋아하는 것일까요?

 

 

 

지난 4월 마지막 주에는 우리 학교 제1기 학부모 아카데미가 열렸는데 20명이 참여하여 사흘 간 진행되었습니다.


첫날에는 저의 인사말씀에 이어 아카데미 진행에 대한 협의를 했습니다. 이때만 해도 모두들 좀 얼떨떨했답니다. 이튿날에는 대상을 확대하여 우리 학교 전체 학부모 중 희망자들이 모여 강연을 들었습니다. 초빙강사의 강연 주제는 '에니어그램(자기발견을 위한 내면으로의 여행)'이었습니다. 그 내용을 간단히 설명하면, '인간은 무의식 속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하나의 집착을 갖고 있는데, 우리의 삶이 그것에 지배당하여 건강하지 못한 태도를 갖게 되고 자신과 남에게 피해를 주게 되므로 자신을 부정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이 집착을 찾아내어 극복함으로써 성숙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안내하는 프로그램'이랍니다.


사흘째에는 다시 초빙강사의 성(性)에 대한 강의를 듣고, 교육 문제에 대한 토의를 했습니다. 처음부터 듣지는 못했지만, 주로 초등학생의 해외유학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마도 처음에는 해외유학이 긍정적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던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듣기 시작했을 때는 이런 이야기도 나오고 있었습니다. "해외유학이 유행처럼 되어 '나는 언제 보내주나요?' 하고 동요하는 아이도 있다" "갔다와야 축에 끼는 것처럼 되고 있다" "그것은 환상이고 현혹이며 가치관의 혼란이다" "공부가 힘든 건 어디서나 마찬가지다" "여행 정도는 좋을 것이다" 그 이야기가 끝나고 곧 제1기 아카데미에 대한 자유토론을 한 다음 헤어졌습니다. 저는 사흘 간의 일정을 지켜보면서 당초에 그렸던 만큼은 아니라 해도 일단 '성공적'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우리는 이야기를 듣기만 좋아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물론, 남의 앞에 나서서 이야기해주는 것보다 가만히 듣고 앉아 있는 쪽이 편하기는 하고, 가만히 있는 것 같아도 각종 미디어를 통하여 시시각각 수많은 정보를 습득하기는 하지만, 함께 이야기하고 스스로 참여한 토의·토론, 회의를 통하여 보다 유익하고 생생하고 실제적인 경험을 할 수 있고, 직접적이고 생산적인 지식을 습득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우리 학교 학부모님들의 경우에는 언제나 일방적으로 남의 이야기나 듣고 앉아 있어야 할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 제 생각이며, 그러한 뜻에서 저는 '성복 학부모 교육'이 아니고 '성복 학부모 아카데미'라는 이름이 적절하다고 했습니다.


보고회, 원탁토의, 포럼, 패널토의, 세미나, 워크숍, 브레인스토밍, 난상토의, … 토의와 토론, 회의 종류에는 여러 있습니다. 평생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수많은 회의에 참석해온 저도 어떤 것이 세미나이고 어떤 것이 워크숍인지, 어떤 것이 토의이고 어떤 것이 토론인지 구분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잘 모르면서도, 적어도 초등교육 전문가의 집단인 우리 학교 선생님들의 회의만큼은 '시시콜콜' 일방적으로 지시·전달하거나 '중구난방'으로 일어서서 이야기하고 앉는 원시적인 형태의 회의가 아니고, 회의를 개최하게 된 목적에 따라, 오순도순, 예를 들어 '학년별 체육대회'처럼 우리가 당면한 과제(주제)의 해결을 위한 의견을 내고 토의·토론하는, 제대로 된 형태의 회의를 하자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 회의에서는 심지어 교장인 제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도 있을 수 있으며, 그런 장면에서 저는 오히려 기분이 좋아지기까지 합니다.


'학부모 아카데미'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학년별 가정학습 지도요령' '숙제와 학부모의 역할' '특기·적성 교육과 학원 보내기' '독서지도' '특수목적고등학교(특목고)는 어떤 학교인가' '저학년과 고학년의 성교육' '생일파티' '회장·반장 선거' … 학부모님들의 관심사는 수도 없으며, 누가 있어 이러한 문제들을 속시원하게 다 해결해주지도 않기 때문에, 결국은 우리가 함께 해결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이런 문제들이 강의 한번 듣는다고 해결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며 사실은 우리끼리 의견을 나누고 정보를 교환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경우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죽 둘러앉아서 자유롭게 이야기하기도 하고, 어떤 문제는 경험이 많은 한두 분이 이야기한 다음 모두들 의견을 내기도 하고, 또 다른 문제는 그 분야의 전문가를 불러 강의를 들은 다음 배운 점을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때로는 광교산 기슭에 올라가서 이야기할 수도 있고, 아이들처럼 경기도박물관에 가서 학생의 입장이 되어 둘러보고 보고서를 써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서로가 서슴없이 나선다면 얼마든지 다양한 토의, 토론, 학습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플랭클린은 그의 자서전에서 "대화의 주된 목적은 가르치고 배우고 즐기는 것 등이니까, 남을 불쾌하게 하거나 반발하게 하면 그 목적을 잃는다"고 했습니다. 누가 무슨 이야기를 하더라고 숙덕거리지 말고 따뜻하게 서로 이해하고 도와주면 얼마나 멋진 모임이 되겠습니까.


그렇게 하자면 너무 많은 인원이 참여하기보다 20명 안팎이 적당할 것입니다. 저는 이 아카데미가 앞으로는 누가 간섭하거나말거나 자생적으로 이루어지는 하나의 공동체로 발전해나가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2006년 5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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