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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파란편지 모음 1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by 답설재 2007. 8. 29.

성복 학부모님께 드리는 파란편지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출근하는 길입니다. 오늘도 세상의 모든 다른 것들은 잊고, 혹은 까짓 것 다 잊은 체하며 교문을 들어섭니다.


출근길이거나 출장을 다녀오는 길이거나 저는 건물 뒤편을 돌아 동쪽 주차장으로 갑니다. 앞쪽은 눈길이 자주 가기 마련이지만, 뒤쪽의 그 어수룩한 곳에서는 어떤 상황이 전개되어 있는지 살펴보는 눈길이 적기 마련이므로 들어올 때만이라도 그곳을 지나가고 싶기 때문입니다. 더러 학부모님들의 차가 그 좁은 길을 턱 막고 있을 때는 할 수 없이 후진하여 건물 앞길(향나무문길)로 지나갑니다.


유치원 놀이터 옆을 지나는데 그 소나무 가지 사이로 한 어머님께서 운동장 쪽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그 표정을 일별(一瞥)하는 순간 걱정스런 눈길임을 확인합니다. 가슴이 철렁합니다. '요즘은 조용했는데 오늘은 이렇게 시작되는구나' 싶습니다. 할 수 없는 일이라면 어쩔 수 없습니다. 피한다고 되겠습니까. 얼른 차를 세우고 창문을 내리면서 인사도 건네지 않고 물었습니다. "무슨 걱정스런 일이 있습니까?"


"아니에요. 아이가 하도 축구를 하고싶다고 하여 축구부에 넣었는데 잘 하는지 보려구요."
바로, 가슴이 진정됩니다. "아, 예--. 그럼."


출근길이므로 대화를 더 진행하지는 않았지만 안심하고 들어가며 생각합니다. 너무나 솔직한 그 대답이, 또한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그 눈길, 그 표정이 너무나 애틋하고 애절하고 간절하였습니다. 아무런 부끄러움이나 망설임이나 가식 없이 저를 향해 바로 "잘 하는지 보려구요" 한 그 어머님의 가슴, 그 어머님의 진실, 그 어머님의 애환과 생애, 아니 그 어머님의 모든 것을 '저는' 알 것 같았습니다. 그 얼굴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눈길 그 표정만은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그 분은 교장인 저 아니면 또 누구를 향해 그처럼 솔직하게, 묻자마자, 그분의 모든 것을 내보이겠습니까. 또한 그 자식을 그 몸으로 낳은 '어머니' 혹은 '엄마'라는 자격을 가진 바로 그 분말고는 누가 '감히' 제게 그렇게 말할 자격을 가졌겠습니까.


하기야, 그분이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에 무슨 부끄러움이 필요하고, 가식이나 체면 따위가 필요하고, 학력이나 재산이나 사회적 지위가 필요하겠습니까. 잊지 못할, 이 세상이 사라진다해도 잊지 못할, 이 세상 누구 앞에서도 그것만은 가장 떳떳하게 밝힐 수 있는, '내가 저 아이를 낳았다'는 그 사실 외에 또 무슨 조건이 필요한 것이겠습니까.


그러고 보면, 저야말로 참으로 무서운 책무를 지닌 사람일 것입니다. 그 어머니는 이 학교 구석구석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하여 알고싶을 것이고, 저는 그분에게 그 모든 일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모든 일이란 제가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지도·지휘·결정하는 크고 작은 모든 일을 의미하며, 그러므로 심지어 이 학교를 불어 가는 저 바람과 이 교정에 내리는 빗방울 하나 하나까지를 의미하며 이 교정에 서 있는 나무 한 그루의 표정까지를 의미하고 있을 것입니다. 쉽게, 그리고 한마디로 말하라면, 그 어머님이 궁금해하는 것이 어떻게 운동장을 내다보면 당장 한꺼번에 다 보이는 그 축구하는 모습뿐이겠습니까.

 

어제는 '어린이날'이었고, 모레는 '어버이날'입니다. 대부분 아이들의 경우 일년 내내 '어린이날'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고, 더구나 쉬는 날인 것만으로도 특별히 챙기지 않아도 별 무리가 아닐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실은 '어버이날'이야말로 뜻깊은 날이어야 할 것입니다. 혹 살아 계신 부모님께는 예를 다하시고 혹 돌아가신 부모님께는 가슴아파하시면서 정작 아직 초등학생일 뿐인 우리 아이들로부터는 특별한 선물이나 기특한 인사말을 듣기가 어려울 것이기 때문으로, '살아간다는 게 뭐 이럴까, 늘 가족이나 남에게 신경을 쓰면서도 정작 나를 위해 신경 쓰는 사람은 하나도 없으니' 하지나 않으시는지요.


그러나 너무 일찍 실망하지는 마십시오. 학부모님께서 '내가 저 아이를 낳았다'는 것을 몽매에도 잊지 않으시는 것처럼 우리 아이들의 '부모님'의 존재에 대한 인식 또한 깊고 깊으며, 그 깊이는 살아갈수록 더해지기 때문입니다. 그 증거가 되는 시 한편 소개합니다.

 

비타민과 미네랄이 골고루 들어있고 / 탈지유 유크림 해바라기유 어유 달맞이유 / 단백질 지방 탄수화물 회분 수분이 들어있는 / 한국 어머니의 젖을 가장 많이 닮았다는 / 로히트분유를 한잔 마시고 나면 / 예쁜 아기 나비잠 자며 배냇짓하듯 /밝은 햇살 볼에 받으며 옹알이하듯 / 기저귀에 오줌싸고 잠이 깨어 / 젖몸살난 엄마 젖꼭지 찾듯 / 나도 어머니의 예쁜 젖 찾을 수 있을까

지금은 다 커서 나도 대학교수가 됐지만 / 어떻게 연구를 해야 / 어머니의 젖가슴으로 다가갈 수 있을까 / 이제는 저승의 이슬밭에서 / 뽀얀 젖 뚝뚝 흐르는 젖가슴 헤치고 / 탁번아 탁번아 / 막내를 부르고 계실 / 아아 나의 어머니

                                                                                                            (오탁번 시집 『겨울강』의, 「로히트분유」 후반부)

 

 

2006년 5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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