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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파란편지 모음 1

스쿨존(schoolzone)

by 답설재 2007. 8. 29.

 성복 학부모님께 드리는 파란편지

 

 

스쿨존(schoolzone)

 

 

 

며칠 간 여름 날씨를 방불케 하더니 마침내 비가 내리던 어제 아침이었습니다. 성복동으로 들어서면서 '오늘도 교문 주변이 난장판이겠구나' 했는데 웬일인지 아이를 내려주고 돌아가려 하는 두어 대의 승용차만 보였습니다. 그 차도, 틀림없이, 운전석에서 남의 눈치를 보고 있을 거라는 느낌은 자동차의 미세한 움직임만 봐도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갑자기 학부모님들께 감사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 편지를 쓰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학교 선생님들은 교내 차량 통행 때문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는데 이처럼 비가 내리는 아침에도 차량 등교가 거의 없으니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기야 학교에서 차량 등교를 자제해 달라고 부탁하고 있는 것은, 학교 직원들만 편하게 다니자는 것이 아니고 다 아이들을 보호하자는 것이니까 학부모님들은 다른 학부모님들께 서로서로 감사해야 할 일 같기도 합니다.


학교 주변을 '스쿨존'이라고 부릅니다. 스쿨존이란 교통사고가 많이 일어나기로 유명한 우리나라에서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어린이보호구역'으로, 교문을 중심으로 반경 300m 이내의 도로인데, 이곳에서는 차량이 주·정차할 수 없고 시속 30km 이하로 운행하도록 규제하고 있습니다.


미국도 교통사고는 많이 나지만 인명피해는 매우 적다고 하며, 이웃 일본도 교통사고율은 우리와 비슷하지만 인명피해는 역시 10% 이내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교통사고율도 높을 뿐만 아니라, 사고가 났다 하면 사고의 반은 인명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니 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의 경우 이렇게 교통사고로 인한 인명 피해가 큰 이유는, 바로 무관심이나 부주의 때문입니다.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도 않고, "이건 정말 중요한 일"이라고 해도 '그러려니' 하고 마는 의식이 팽배해 있습니다. 말하자면 "그렇게 하면 사람이 죽습니다" 해봤자 별로 놀라워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누구나 이용하는 자가용인데도, 아직도 무의식적으로 자동차에 올라앉아 있는 것이 무슨 특권인양 느끼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며칠 전에는 2학년 어느 반 아이들이 교실 앞마당에서 저희들끼리 벼룩시장을 열고 있었습니다. 제각각 학용품이나 장난감, 생활용품을 땅바닥에 늘어놓고 "100원이요, 100원!" 소리치며 제 물건을 팔아보려고 애쓰고 있는 그 길로, 마침 택배회사 자동차가 들어서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물건을 늘어놓고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는 그 길을 자동차는 유유히, 그러나 무사히 지나갔습니다. 현관 앞에 정차한 그 자동차로 다가가 학교 건물 뒤로 다니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더니, 그분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건물 뒤에도 길이 있는 줄을 몰랐습니다." 이렇습니다. 말하자면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그에게 그런 사실을 이야기한 적이 없고 그 사람도 '까짓 스쿨존쯤이야' 할 만큼 우리는 무관심하고 부주의한 것입니다. 정부에서 스쿨존을 정하거나 말거나 우리는 우리 식으로 간다고 하면 아무것도, 아무리 좋은 일도 잘 될 턱이 없습니다.


울산 염포초등학교에서는 인근 '성원상떼빌' 아파트 주차장을 교직원 주차장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되어 아이들이 차량 없는 학교에서 마음놓고 지내게 되었답니다. 그 학교는 학생 수 증가에 따라 교직원 차량도 크게 늘어나면서 체육 및 생활 공간 부족 난이 심화되어 왔답니다. 학교에서는 운동장을 아이들에게 돌려주기 위해 6부제 운행 등 여러 가지 방안을 찾다가 학교운영위원회에 호소하게 되었고, 이 소식을 들은 '성원상떼빌아파트자치위원회'에서 낮 시간에 비어 있는 주차장을 교직원 주차장으로 제공하겠다는 의견을 내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염포초등학교 교장은 "주민들이 출근하고 많이 비어 있는 아파트 주차장을 교직원 주차장으로 이용하게 된 것은 아이들의 안전과 교육과정 운영에 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교육문제를 학교와 지역사회가 함께 해결해 가는 한 장면"이라고 했답니다.


염포초등학교 교장의 입장에 비하면, 중학교 교정을 통해 등교하는 아이들을 쳐다보고 있는 저로서는 도저히 그런 사치스런 호소를 할 형편이 아니라는 것은 여러분도 잘 아실 것 같습니다. 그런 형편에서 학부모님들께서 학교에 차를 가지고 오시는 것을 전면적으로 막고싶은 생각도 없습니다. 바쁘시면 타고 오셔야 하겠지요. 다만, 좀 자제해주시는 것이 사랑하는 저 아이들을 위하는 길이며, 때로는 아이들이 그야말로 수없이 오르내리는 그 정겹고 따뜻한 길, 그 의미로운 길('해오름길')을 아이들의 발걸음을 확인하며 한가롭게 올라오시고 내려가 보시는 것도 좋은 일이 아닌가 싶을 뿐입니다.


그나저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춥거나 덥거나 가리지 않으시고, 또 바쁜 일 중요한 일 제쳐두시고 아침마다 나오셔서 아이들의 안전을 지키시는 녹색어머니회 여러분께 우리 아이들을 대신하여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2006년 5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