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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파란편지 모음 1

'스승의 날'을 앞두고

by 답설재 2007. 8. 29.

성복초등학교 학부모님께 드리는 파란편지

 

 

 

 

'스승의 날'을 앞두고

 

 

 

 

  주제넘은 소개가 되겠지만 저는 오랫동안 교과서 편수 업무에 심혈을 기울이며 살았습니다. 처음에는 초등학교 교과서를 담당하다가 나중에는 초·중·고등학교 교과서 편찬 전체를 책임지기까지 했습니다. 그 일은 제가 보기에 우리나라 교육행정 중에서 가장 높은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일인데, 아직 그것을 인정해주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까움을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누구나 교과서에 관한 여러 가지 추억과 느낌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과서를 통해 다양한 지식을 얻고, 삶의 바른 길을 깨달으며 성장했기 때문입니다. 또, 교과서에는 우리 역사와 문화가 담겨 있고, 민족의 혼과 가치관, 민족성이 서려 있기도 합니다.

 

  저처럼 정부에서 교과서를 편찬했던 사람들의 모임에서는 내년부터 10월 5일을 '교과서의 날'로 정하고 교과서 전시회, 디자인·삽화 공모, 유공자 표창, 수필 공모 등 여러 가지 행사를 전개하여 교과서의 질적 향상을 위한 노력을 적극적으로 전개해 나가기로 했습니다. 10월 5일을 '교과서의 날'로 정한 것은, 최현배 선생을 중심으로 당시 문교부가 정부 수립 후 처음으로 '초등 국어 1∼1'(별칭 : 『바둑이와 철수』) 교과서를 발행한 1948년 10월 5일을 기리고자 한 것입니다. 우리 모임에서는 이 날을 뜻깊게 보내기 위한 구상을 하며 자못 흥분하기까지 했습니다.

 

  '교과서의 날'에 관한 사례를 말씀드린 것은, 웬일인지 우리 선생님들께서는 전직 편수관들이 '교과서의 날'을 기다리는 것처럼 '스승의 날'을 기다리기는커녕 오히려 이날을 힘겨워하는 것 같아 안타깝기 짝이 없다는 느낌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언론보도는 심지어 "올해부터 서울지역 초·중·고교생들은 스승의 날인 5월 15일에 등교하지 않아도 될 것으로 보인다"고 시작하여 그 날 등교하지 않게 된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는 듯한 인상까지 주고 있습니다. 사실은, 선생님들은, 극소수이지만 이기적인 선심 제공 사례를 취재하는 언론이 해마다 이를 반복하여 과장 보도함으로써 교사와 교육의 권위를 추락시키고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으며, 그러려면 차라리 '스승의 날'을 공식적인 휴업일로 정하여 다양한 행사와 이벤트에 참가시키는 한편 소정의 연수 비용을 지급하여 문화 예술 연수나 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기도 합니다. 선생님들께서 이런 정서를 갖고 있다면 당연히 학부모님들도 그 정서와 연계하여 공연히 힘겨운 느낌을 갖기 마련이므로 이 기회에 서로의 생각을 털어놓아 하루속히 이 날이 정말로 뜻깊은 하루가 되도록 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미국에서도 해마다 5월 첫째 주일이 '스승의 주간 Teacher Appreciation Week'이며, 그 주의 화요일을 '스승의 날 National Teacher Day'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스승의 주간을 더 기린다고 합니다. 미국에서 아이를 가르쳐본 어느 학부모의 글을 인용해보겠습니다. 인용하는 부분은 그분이 학급대표 학부모에게서 받은 편지의 내용입니다(심양섭, 『미국 초등학교 확실하게 알고 가자』, 도서출판 사람과사람, 2003, 253).

 

 

  "월요일에는 당신의 정원에 있는 꽃 한 가지를 보내주세요. 꽃다발을 만들어 맥기 선생님께 드리려고 합니다. 화요일에는 초콜릿 하나를 보내주세요. 바구니는 이미 사놓았습니다. 그 바구니에 사탕과 함께 담아서 선생님께 선물할 예정입니다. 수요일에는 학부모회에서 선생님들께 점심식사를 대접합니다. 목요일에는 과일 하나를 보내주세요. 새 바구니에 담아 선생님께 드립니다. 금요일에는 아이들이 선생님께 드리는 그림이나 글을 모읍니다. 여성용 손가방 tote bag을 사놓았는데, 거기에 담아 드릴 생각입니다. 혹 바구니와 여성용 손가방 구입비를 기부하고 싶다면 1달러 내지 2달러를 학급대표 학부모인 팜 스미스 씨에게 보내주십시오."

  편지와 함께 유인물이 한 장 더 있었다. A4 용지의 맨 위에 자녀 이름을 적도록 해놓고, 그 아래에 '맥기 선생님의 반이 되어 좋은 점을 그리거나 써주세요. 선생님께 드릴 것입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그 밑에는 빈칸이었다.

  

  시애틀 근교 숄라인 교육구 Shoreline School District 선셋 초등학교 Sunset Elementary School 사례입니다. 매우 참신한 행사이므로 이 사례를 그대로 우리 학교에 적용해 보고싶은 생각은 없습니까?

 

  그렇지만 서둘지는 마십시오. 이미 지난해에 제가 이 사례를 그대로 적용해보고자 했다가 좌절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우려에 그칠 수도 있겠지만, 가령 월요일에 꽃다발을 하나 마련하자고 하면 누가 나서서 '까짓 꽃다발쯤이야 나 혼자서 마련할게' 하기가 쉽고, 그러면 '나도, 나도…' 할 것이 틀림없으며 드디어 별도로 갖다주는 분도 생기고, '정원도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하나?' '하필 왜 꽃이야?' 할 사람도 있을 것이라는 등 구구한 이야기가 나와 '그렇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 결론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이 우려를 어떻게 보십니까? 조금이라도 그렇다고 보시면 올해는 그냥 아이들에게 맡기고 지나가면서, 착하기만 한 우리 아이들에게 선생님의 고마움을 느끼게나 해줍시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같아서 / 우러러 볼수록 높아만지네. / 참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쳐주신 / 스승은 마음의 어버이시다. / 아아, 고마워라. 스승의 사랑. 아아, 보답하리. 스승의 은혜. …….

 

 

2006년 4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