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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파란편지 모음 1

"어머니야말로 나의 진짜 MVP" -- 하인스 워드 (1) --

by 답설재 2007. 8. 29.

성복초등학교 학부모님께 드리는 파란편지

 

 

 

 

"어머니야말로 나의 진짜 MVP"

-- 하인스 워드 ⑴ --

 

 

 

 

  미식 축구선수로 유명해진 한·미 혼혈인(혼혈인을 지금부터는 '누리안'으로 부르기로 했답니다) 하인스 워드(30)가 연일 매스컴을 장식했습니다.

 

  지난 6일 오후에는 자신이 태어났던 병원에 가서 "내가 시작한 곳으로 돌아와 감격스럽다"며 환하게 웃은 반면, 어머니 김영희(59)씨는 감회에 젖은 듯 계속 흐르는 눈물을 닦았답니다.

  제가 이 글을 쓰기 위해 들여다보고 있는 A 신문의 기사는 그 제목이 '어머니야말로 나의 진짜 MVP'이고, '아들은 웃었고 어머니는 울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워드 모자를 가장 반갑게 맞이한 사람은 당시 주치의 Y 박사로, "슈퍼볼 MVP를 받았다고 할 때는 몰랐지만 만나보니 당시가 생생하게 떠오른다"며 워드를 환영하고, 제왕절개수술을 할 만큼 산고가 고됐지만 '아프가 스코어(신생아 건강도)가 9점이 넘어 기뻤다는 것까지 기억해냈으며(정말일까요? 의사들이야 우리와 달라서 기억력이 그처럼 좋습니까?), "내가 받아본 수천 명의 아기들 중 가장 의미 있는 아기가 바로 하인스"라고도 했답니다.

 

 

  그날 저녁, 버시바우 주한미국대사가 워드를 위해 베푼 환영 리셉션에는 '누리안' 여성 가수 I, 국회 국방위원장, J 위원, 전 주미대사, K대 총장, 대한미식축구협회 회장 등 100여명의 각계 인사들이 참석했답니다.

  이 자리에서 워드는 "30년간 한국인임을 부끄러워했던 점에 대해 사과 드린다"며 "나는 수퍼볼 MVP로 기억되겠지만, 어머니야말로 나의 진짜 MVP"라고 해 참석자들의 박수를 받았답니다.

 

  저는 워드의 이야기를 읽으며 기사들 - 그리고 그 기사에 등장하는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 - 은 대체로 좀 호들갑스러운 편이지만, 어머니에 대한 워드의 생각과 마음은 똑바르다는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한 제 생각의 바탕은, -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경우가 많지만 - '모든 자식들에게 어머니는 MVP'라는 사실입니다.

  어떤 소설에는 이런 구절도 있습니다. "아무리 이름 없이 살아가는 여인일지라도, 아이를 낳아 이 세상의 일원이 되게 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여자는 이미 인간의 중심이며, 세상의 빛이며, 빛의 한가운데라는 사실을 나는 죽음의 문턱을 넘어선 후에야 깨달았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여기에, 은하수의 별들처럼 무수한, 잠재적 MVP 한 분의 편지를 소개합니다. 어쩌면 아주 평범한 내용일 것입니다. 그것은, MVP는 많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아마 저널리스트들은 '여기 성복동에도 MVP가 무수히 많다'고 하면 매우 난처해할 것입니다. 기사거리가 너무 많다는 것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여러분께서 '어쩌다가 한 명의 MVP를 만드는 그 저널리스트들을 믿는가, 아니면 모든 어머니를 MVP라고 생각하는 교육자의 한 사람을 믿는가'입니다. 누가 진짜인가를 가려내는 일에 달렸습니다.

 

 

 

 

선생님께

 

  참 걱정이 태산이었습니다.

 

  나름대로의 교육철학으로 아이가 단편적인 지식습득보다는 스스로 자립하는 사람이 되길 원하는 마음으로 흔히들 보내는 학원 하나 안 보내고 집에서 뒹굴며 지내게 하다가 겨우 유치원 1년 보내고 입학시켰습니다. 주위에서 교육에 관한, 학교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듣게 되면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며 살지 말자고 다짐했던 마음도 서서히 흔들리며 '내가 아이를 너무 안일하게 키우는 게 아닌가' 우려도 했습니다.

 

  입학한 지 이제 한 달이 되었습니다. 그 많은 걱정들은 어느새 사라져가고 아이와 더불어 저도 학부모 1학년으로 성장해 가는 느낌입니다. 처음 학교 언덕길을 보며 '아이들이 어떻게 저 길을 오르내릴까' 했던 걱정은 제법 단단해진 아들의 허벅지를 만져보며 사라졌습니다. 이것저것 가르치지 않아서 학교 공부를 못 따라가면 어쩌나 했는데 3월에 배운 「우리들은 1학년」이란 교과서에는 선생님, 친구들과 함께 즐겁고 안전하게 생활하는 것을 중점적으로 가르치게 되어 있는 것을 보고 교육에 있어서는 학교와 선생님을 믿고 따라야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습니다.

 

  3월 중순쯤엔 갑자기 날이 추워지고 눈발도 뿌렸습니다. 집에 돌아온 아들은 "이건 겨울이 봄한테 샘이 나서 그런 거야. 그래서 꽃새미추위야." 꽃샘추위란 정확한 낱말은 아니었지만 선생님께 들은 이야기를 의기양양하게 들려주기도 했습니다. 식탁의자에 앉을 때는 주먹 쥔 손을 배에다 대어보며 말합니다. "책상에 앉을 때는 이 정도 간격으로 앉아야 해. 엄만 이거 모르지?" (중략) 3월초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편지의 '태아에서부터 입학 전까지의 가정교육이 인성의 70%를 좌우한다'는 구절을 읽고 여러 가지 반성을 했습니다. 매일 아침 부지런히 시간 맞춰 밥해 먹이고, 이 닦아라, 세수해라, 옷 입어라, 재촉하겠지요. 그러면서 나만큼 빨리 하지 못하는 아이가 답답하겠죠. 왜 이런 걸 스스로 학습하도록 '선행학습'을 못시켰던가, 정말 후회가 됩니다. 선행학습, 영재교육… 말을 많이 하지만, 정작 부모가 아이들에게 해줘야 하는 것은 기본교육, 생활교육이 아닌가 싶습니다.

 

  입학하고 일주일이 지난 날 마중 나가서 아이가 저 언덕길을 마구 뛰어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중에 담임선생님께서 "어머니가 그곳에 서 있는 것이 보이면 아이는 뛰기 마련"이라며 야단을 치셨습니다. 교과서로 수업한 첫날, 「수학익힘책」을 잊고 달랑 「수학」만 넣어 보냈다가 나중에 또 혼이 났습니다(선생님께서 아이들에게 수학과 수학익힘책은 짝이라고 온갖 쇼를 다하며 알려 주셨다지만, 다른 건 다 잘난 척하는 우리 아들은 그 내용은 한마디도 전하지 않더군요. -_-;;).

 

  하지만 기분은 좋습니다. 저도 지금까지는 '1학년 견습 학부모'였으니까요. 이제 4월, '진짜 1학년'이라는 아들의 말처럼 저도 '진짜 학부모'가 되어서 즐겁습니다.

 

 

2006년 4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