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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파란편지 모음 1

어느 할아버님과 어머님의 학교환경에 대한 조언

by 답설재 2007. 8. 29.

성복초등학교 학부모님께 드리는 파란편지

 

 

 

어느 할아버님과 어머님의 학교환경에 대한 조언助言

 

 

 

교장 선생님께


이 글을 드리는 사람은 학교 앞 LG 빌리지에 살고 있는 70대 중반의 늙은이올시다. 선생님들께서 정성으로 훈육하고 계신 어린 새싹들의 밝고 맑은 표정과 발랄하고 생동적인 모습을 보며 참으로 흐뭇하고 대견스러운 생각을 하게 됩니다.


모두가 선생님들의 노고와 사랑의 결실이라고 믿고 깊은 존경을 드립니다. 학교도 한 해 한 해 연륜을 쌓아가면서 틀이 잡히고 무게가 실리는 것 같아 기쁜 마음으로 지켜보면서 저의 육십여 년 전의 초등학교 시절을 회상하게 됩니다.


우선 떠오르는 것은, 교정의 둘레와 교사 주변을 에워싼 오래된 벚꽃나무와 느티나무, 은행나무들… 봄이면 찌든 겨울 때를 말끔히 씻어내듯 화사하게 핀 벚꽃, 여름이면 짙은 녹음으로 그늘을 드리워 뙤약볕에 땀으로 범벅이 된 우리들에게 시원한 그늘을 제공해주고 가을이 되면 노란 은행잎으로 낙엽을 밟을 수 있게 해주던 고마운 나무들… 지금쯤은 백년을 넘긴 우람한 노목으로 자라 학교의 역사와 내력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을 그 나무들이 생각납니다.


저의 일방적이고 미숙한 생각이겠지만 우리 성복초등학교도 10년 20년 후에는 울창한 숲에 에워싸인 뛰어난 경관과 정화된 맑은 공기를 호흡하면서 자라나는 새싹들이 마음껏 뛰어 놀고 공부하면서 호연지기를 키워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무를 심고 가꾸어 큰 나무로 키운다는 것은 어린 새싹들을 훌륭한 인재로 훈육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행히 성복초등학교는 도심의 학교에 비하여 교정이 넓고 주변에 공지가 넉넉해서 나무를 심고 가꾸기에 좋을뿐더러 운동장 앞의 학교 철책과 진입도로의 옹벽 사이에도 적당한 공지가 있어 나무를 심고 가꾸기에 좋은 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많은 나무들이 심어져 있지만 아파트에서 내려다본 학교에는 더 많은 나무를 심었으면 하는 욕심에서 드리는 제언임을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수종은 기왕이면 낙엽이 진 겨울에도 푸름을 간직할 수 있도록 잣나무와 소나무 등 상록수라면 더욱 좋겠지요. 흉물스러운 고사목은 즉시 자르거나 파내고 대체 식수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주제넘은 참견인 것 같아서 이해와 용서를 빕니다.


좋은 학교가 되었으면 하는 일념에서 드리는 제언임을 거듭 말씀드립니다. 학교의 무궁한 발전과 선생님들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지난해 가을에 받은 편지입니다. 그 어른에게 답장을 드리지는 못했지만 그동안 몇 번을 읽었습니다. 아이들이 떠들고, 깔깔거리며 웃고, 온갖 소리를 지르고, 때로는 쓰레기도 내던지며 지나가는 것이 못마땅할 수도 있고, 운동장에서 많은 아이들을 가르치려고 확성기를 쓰는 것이 일상생활이나 명상에 지장을 드려 늘 조심스럽고 송구스러운데도 이런 편지를 보내시는 그 마음과 정성을 존경하여 할아버님의 어린 시절은 어떤 것이었을까, 지금은 어떻게 지내시는가, 여러 가지가 궁금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학교를 어떤 환경을 가진 학교로 가꾸어가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전문성을 가지신 어느 어머님께 자문을 구한 적이 있습니다은 참으로 전문가다운 답을 주셨기 때문에 아직도 그 내용을 해석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그 조언 중에서 몇 가지만 가려 이야기해보면 이렇습니다. 우선, 우리 학교는 산으로 둘러싸인 외부 환경의 특징을 살려야 하며, 그로 인한 자연 친화적 교육환경을 구성해야 하고, 그러한 환경에서 인간적인 교육을 실현해야 한답니다. 건물을 제외하고 외부 공간을 살펴보면, 학교로 올라오는 오르막길과 교문, 운동장, 샘(수도), 언덕, 문길(전관 앞길), 놀이터, 주차장, 마당 등으로 나눌 수 있으며, 향나무나 소나무, 개나리 등의 나무들과 해, 하늘, 빛 등의 상징적인 자연환경 요소들을 연계하면 희망, '고운', 믿음, 지혜, '큰', 꿈, 미래, 어울림 등의 의미를 추출해낼 수 있답니다. 그분은, 우리 학교 환경의 기본계획에 대하여 3E (교육적인 educational, 감성적인 emotional, 자연적인 environmental)+ 녹(綠)으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더욱 자세한 내용도 제시해주셨지만, 제가 그것을 제대로 읽고 해석하여 구체적인 배치계획을 말씀드리기가 아직은 어려우므로 그 중에서 한가지만 전해보겠습니다. 먼저, 오르막길의 이름은 '해오름길'이고, 전관 앞길(문길)은 '향나무 문길'입니다. 유치원 앞 놀이터의 이름은 '꿈놀이터', 전관과 후관 사이의 마당 이름은 '하늘마당', 전후관 사이의 동쪽 마당 이름은 '빛마당'입니다.


그동안, 아이들이 등하교하는 그 길에 위험한 요소가 있다는 건의를 해서 시청에서 가드레일을 설치하는 등 '해오름길'이 정비되기도 했지만, 등하교 길은 완전하지 못한 면이 많습니다. '하늘마당'은 지금은 그야말로 하늘밖에 보이지 않는 삭막함을 느끼기도 하는 공간입니다. 늘 자동차만 즐비한 '꿈놀이터' 주변이나 '빛마당'에 커다랗고 아름다운 나무도 심고 그 아래에서 책을 읽거나 친구들과 놀거나 어른들이 자녀를 기다릴 수 있는 벤치도 설치하여 그야말로 '꿈놀이터', '빛마당'의 이름값을 하는 공간이 되게 하려면 멀었습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합니까. 한꺼번에 어떻게 할 수도 없고 학교예산을 그 일에 집중 투자할 수도 없으므로, 우선 이름이라도 그렇게 부르면 어떻겠습니까. 해오름길, 향나무 문길, 꿈놀이터, 하늘마당, 빛마당 …. 아이들도, 선생님들도, 부모님들도, 동네 사람들도, 그렇게 부르다보면 무엇이 되지 않겠습니까?

 

 

2006년 4월 10일

 


추신 : 할아버님, 건강하게 잘 지내셨습니까? 제 방에 오셔서 차 한잔 드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