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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파란편지 모음 1

황우석 쇼크 - 저로서는 어쩔 수 없었던 문제에 대한 고백 -

by 답설재 2007. 8. 29.

성복초등학교 학부모님께 드리는 파란편지

 

 

 

 

황 우 석 쇼 크

- 저로서는 어쩔 수가 없었던 문제에 대한 고백 -

 

 

 

 

  지난 1월 11일 ㅈ일보 제1면에는 서울대 황우석 교수 팀의 연구에 대하여 이 대학 조사위원회에서 "줄기세포는 없다"는 발표를 했다는 「신화(神話)의 종말」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이미 지난해 연말부터 이러한 조짐이 보이는 언론보도가 줄을 잇고 있었지만, 이날의 보도야말로 제게는 크나큰 충격이었습니다.

  그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내 아이들에게만은 바른 이야기를 해야 할 입장에서 이미 해놓은 이야기도 문제지만 우리 홈페이지에 버젓이 실려 있는 「학교장의 생각」이라는 글의 황 교수에 대한 언급 때문이었습니다.

 

  황우석 교수 같은 사람 -- 그는 다른 교수들이 학장을 하라고 하자 '그럼, 한번 해볼까?' 하다가 사람들이 "그러지 말고 생명공학 연구를 더 열심히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자 두 가지를 깊이 생각해보고는 "그렇게 하겠다. 나는 죽도록 연구하겠다"고 했습니다. "내가 하는 연구도 99%가 실패"라고 하면서도 '죽도록 연구하겠다'고 한 그 교수가 참 좋고 부럽습니다. 여러분도 부디 제2의 황우석이 되십시오.

 

  어떻게 연구했기에 이런 결론이 내려질 수 있는가, 어떻게 해서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동안 정부와 민간에서 대어준 예산이 얼마였습니까. 게다가 난자를 제공한 이도 많았고, 정부에서는 특별히 경호원까지 붙여주지 않았습니까.

  언론은 어떻게 보도했습니까. 생명공학은 21세기의 최첨단 산업으로, 체세포 핵이식 기법을 중심으로 한 줄기세포 분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게 경쟁력을 갖추고 있고, 황 교수가 세계 최초로 난치병 환자를 대상으로 한 맞춤형 배아줄기세포를 성공적으로 연구했다는 결과 발표는 이를 명백하게 보여주는 사실임을 온갖 설명과 사례와 도표, 그림, 사진을 통해 온 국민이 과학자가 된 것처럼 자세히 알 수 있도록 보도해오지 않았습니까. 우리나라가 황 교수의 연구에 따라 의료서비스산업을 발전시킨다면 당뇨병 환자 등을 세포 치료할 경우 2015년에는 최대 33조원의 경제적 가치가 예상된다는 발표도 있었습니다.

  학교 성적도 신통치 않았던 시골의 가난한 소년이 세계적인 과학자가 되었다는 전기도 나왔으며, 어떤 교육기관에서 나온 책에는 그가 ㄴ초등학교를 방문한 기사가 실려 있어 그를 초청할 수가 없는 저로서는 대단히 부러웠습니다.

 

  이 정도인데도 제가 그 성공 드라마를 의심할 수 있었다면, 저로서는 얼마나 다행스러웠겠습니까. 그러나 불행하게도 저에게는 그 보도들을 의심할 만한 재주가 없었습니다. 1월 10일 기사를 예로 들었지만, 그 전후의 언론들은 용감했습니다. 언제 우리가 그렇게 보도했느냐는 듯이 이번에는 '순 엉터리'라는 것을 철저히 전했습니다. 어떤 학자는 "내가 전부터 우려하는 목소리를 냈는데, 그때 왜 내 말을 곧이 듣지 않았느냐?"고 다그치는 글을 써서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러한 분위기에서 '남들은 잘도 벗어나는데 내 처지만 참담하고 외롭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 아이들을 모아놓고 그런 식으로 호기롭게 발표하거나 그동안의 제 관점에 대한 최소한의 변명도 할 수 있는 자신이 없었습니다. 말하자면, 그들은 또 어떤 변화가 일어나면 당장 뛰어들어 설명하고 주장하고 토론할 수 있겠지만 저는 도저히 그럴 수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제가 어떻게 "얘들아, 이걸 뒤집는다. 그리고 다음에 얼마든지 또 뒤집을 수도 있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저 '모든 진실은 진행형일 뿐이구나', '이 사건은 또 어떻게 전개되려나' 생각도 해보면서 일단 홈페이지의 그 부분을 슬며시 삭제했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이렇게 고백하고 나니 조금은 후련합니다. 우리 아이들 중에는 평소 이 편지를 읽고 제법 해석할 줄 아는 아이도 있으므로 그 또한 차라리 다행스럽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저는 부끄럽습니다. 교과서를 편찬하는 사람들은 생존 인물이나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은 가능한 한 교과서에 싣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것은, 사람은 죽기 전에는 언제 어떤 일을 저지를지 모르며,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은 언제 또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 예측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한번은, 교과서에 독도 의용수비대 홍순칠 대장 이야기와 '나무 할아버지'라는 별명까지 얻은 분의 이야기를 실었더니 홍 대장의 부인과 그 나무 할아버지께서 찾아오신 적이 있었습니다. 홍 대장의 부인은 "이제 교과서에까지 실렸으니 홍 대장이 저승에서 선생님께 감사하고 있을 것입니다." 했고, 나무 할아버지는 유엔으로부터 받은 상이라며 영문으로 된 상장을 보여주었습니다. 저는 그 상장을 들여다보며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홍 대장은 이미 돌아가셔서 안심이지만, 할아버지는 생존해 계시므로 돌아가실 때까지 부디 아무 일 없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여러분(그리고 이 글을 읽은 어린이 여러분), '쯧쯧, 그러기에 사람은 끝없이 읽고 생각하고 배우며 살아가야 하는 거야' 생각하시고 넘어가 주시면, 앞으로는 교과서를 만들 때 배우고 겪은 그 원칙을 더 잘 지키겠습니다.

 

 

 

 

2006년 4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