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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파란편지 모음 1

"컴 온 아름, 컴 온, 샤이 걸. 돈 크라이" -- 하인스 워드 ⑵ --

by 답설재 2007. 8. 29.

성복초등학교 학부모님께 드리는 파란편지

 

 

 

 

"컴 온 아름, 컴 온, 샤이 걸. 돈 크라이"

-- 하인스 워드 ⑵ --

 

 

 

또 하인스 워드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언론의 생리가 흔히 그렇지만, 워드가 우리나라에 머무는 동안 혼혈인(누리안)을 보는 언론의 시각은, 흡사 우리가 천사들의 집단을 곁에 두고도 한심하게도 지금까지 그것을 모르고 지냈다는 듯했고, 이 세상은 영웅이라야 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철저히 가르치려는 듯했습니다.

 

워드는 다음에 또 우리나라를 방문하겠다고 했으니 그때는 또 무슨 큰 기사거리를 제공할는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의 각 신문들은 이제 어느 정도 '이삭줍기'에 들어간 것 같은데, 지난 10일자 C일보를 보았더니 「떡메 치는 워드 "난 힘센 농부"」라는 제목으로 '민속촌서 전통문화 체험', '어머니 이름으로 장학금' 등의 내용이 실렸고, J일보에는 두 가지가 실렸는데 기사는 「워드, 한국의 잠든 효심을 깨우다」라는 제목으로 '어디서나 "어머니…우리 어머니"', '한국 젊은이 뺨치는 효성 돋보여' 등의 내용이었고, 다른 한 가지는 NIE(신문활용교육) 내용으로 제목은 「'혼혈과 함께 살기' 생각해 볼까요」, 주제는 '국제결혼 늘어나 차별 없는 다인종 사회 불가피'였습니다.

 

그러나 워드의 어머니 김영희 씨는 그러한 시각에 찬물을 끼얹고 우리가 본심으로 돌아가 침착하게 생각하고 교육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말들을 했습니다. C일보에 의하면, 워드 모자 母子는 지난 5일 오후에 펄벅 재단 사무실을 방문했답니다.

 

"Come on Areum, come on, shy girl. Don't cry."

 

편지까지 보냈던 혼혈아 아름이가 엄마 품을 파고들며 선뜻 다가오지 않자 워드가 다가가 아름이를 불러 품에 안았고, 김영희 씨는 한참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물만 흘렸는데, 아름이 엄마 안진희(30) 씨가 김씨 곁에 다가가 말했답니다. "하고 싶은 얘기가 너무 많았어요. 혼혈아를 키우는 엄마로서, 그리고 한 여자로서…. 지금이라도 한국을 떠날 기회가 있다면 주저하지 않고 그렇게 하겠어요." 말없이 눈물만 닦던 김씨가 이렇게 대답했답니다. "그렇게 해요. 나도 그런 생각 참 많이 했었죠." 다음은 제가 본 그 신문기사에서 워드의 어머니 김씨가 한 말들입니다.

 

"한국 사람 안 쳐다보고, 생각 안 하고 살아온 30년이었다."

"애기 엄마, 그때 내가 워드 데리고 한국 왔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 그 놈 거지밖에 안 됐겠지? 여기선 누가 파출부라도 시켜줬을까?"

"한국 사람들은 말이야, 좀 그렇지. 미국에서도 한국 사람들끼리 사이가 별로 좋지 않잖아. 이민 온 사람이 우리들을 무시하고, 피부 색깔도 같은 한국 사람들끼리 인종을 더 차별하잖아. 근데 참 이상해. 우리 새끼들이 피부색 다른 것은 그렇게 싫어하는데, 왜들 그렇게 머리는 노랗고 빨갛게 물들이고 다니는지…."

"내가 그렇게나 힘들 때는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더니, 이제 와서 우리 워드가 유명해지니 관심을 참 많이 가져준다."

"좀 그래. 부담스럽지 뭐. 세상 사는 게 다 그런 거 아니야."

 

김 씨의 이런 말들은 어떻게 사회적으로 크게 부각되지 않는지 기이합니다. 이제, 혼혈인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고, 그들에게도 하고싶은 말이 많으며, 그들도 성공하면 영웅이 된다는 것을 충분히 알았다면, 만약 시험에 "우리는 혼혈인을 어떻게 대해야 하겠습니까?"라는 문제가 출제되면 어떤 답이 나오겠습니까. ① 그래도 우리와 동일한 인간 취급을 할 수는 없다. ② 실제로 겪어보아야 답할 수 있겠다. ③ 그들은 천사들의 집단이므로 우대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 '천사들' 중의 한 명과 함께 생활하라면 선뜻 응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우리는, 워드가 오지 않으면 이 땅엔 또 서러운 혼혈인만 남는 식으로 돌아서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국제결혼이 늘어나고 혼혈인도 많아지기 때문에 '차별 없는 다인종 사회가 불가피'하다는 소극적인 생각보다도 그들과 우리의 차이는 '존재의 차이'가 아니라 바로 '인식의 차이'였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자각해야 할 것입니다. 나아가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어이없게도 동정심이나 도움, 특별한 대우가 아니라 우리와 그냥 자연스럽게, 함께 어우러져 사는 것임을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조화로운 '다인종 사회'쯤이야 저절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아파트'를 부른 가수 윤수일도 '나는 왜 남들과 다를까…' 코 꾹꾹 누르며 많이 울었답니다.

 

아직도 흔히들 편견을 가진 장애인 이야기로 마치겠습니다. 서울맹학교 K 교장은 그 학교 학생들처럼 맹인입니다. 저는 언젠가 거리에서 그를 발견하고 뒤로 다가가 양팔로 껴안고 "누군가 맞춰 보라"고 했는데, 그와 함께 걸어가던 어느 여성 공무원이 순간적으로 그의 난처한 처지를 도와주고 싶었던지 "아, 김만곤 선생님!" 해버려 참 안타깝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맹인들은 냄새만 맡아도 저를 알아차리고 더구나 몇 년만에 전화를 해도 당장 저를 알아차립니다. 그들도 수학여행을 가고, 그들도 발야구를 하며, 영화감상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그들보다 나은 점이 좀 있다면, 그들에게도 우리보다 나은 점이 그만큼은 있기 마련입니다.

 

 

2006년 4월 14일

 

 

이 글은 제 블로그의 글 중에서 지속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글 중의 하나입니다. 어떤 연유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 글이 도대체 왜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 글이 되었을까?'

오늘 저도 들어와서 잠깐 살펴보고 갑니다. 몇 년이 지난 지금의 감각에 맞추어 글을 좀 고치고 싶은 건 당연합니다. 그러나 이대로 두기로 했습니다. 글을 쓴 당시의 감각 그대로 두는 것도 좋은 점이 있을 것 같아서 읽기에 편하도록 행간을 늘이는 일만 해두기로 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