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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파란편지 모음 1

왜 학부모님들을 자꾸 부르느냐 하시면

by 답설재 2007. 8. 29.

성복 학부모님께 드리는 파란편지

 

 

 

왜 학부모님들을 자꾸 부르느냐 하시면
- 어머니이자 아내·며느리·직장 여성이신 K 어린이의 어머님께 -

 

 

 

편지 받아보았습니다. 먼저, 저와 다른 생각을 갖고 계신 걸 모르고 지낸 데 대해 부끄러워하며 '그래도 나는 내 식대로 가겠다'기보다는 어느 쪽으로든 어머님과 저는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엄마이자 아내이고 며느리인 어머님께서 전업주부와 다른 점은 단 한가지 직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뿐인데도, 오늘날 직장을 가진 주부들이 어머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아이 키우고 일하는 보람과 재미를 느끼면서도' 스트레스가 그처럼 강한 대표적인 이유가 바로 자녀를 학교에 마음놓고 맡길 수가 없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즉, 학교에 자주 오시지는 못하시더라도 안심하고 맡기실 수 있다면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단적으로 말하여 바로 그 스트레스 때문에 오늘 직장을 가진 우리나라 주부들 중에는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이 학원 저 학원으로 돌아다니도록 일정을 짜주는 경우가 많고, 핸드폰으로 일분 일초까지 체크하며 "이제 이것 하라, 그리고 나면 바로 저것 하라" 일일이 채근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아이를 그렇게 다루면 자율성이나 창의성이 얼어붙게 마련이며 결국은 책임감까지 고갈되어버리고 만다는 사실을 잘 모릅니다. 덧붙이면, 아이가 할 일을 아이에게 그냥 맡겨두기가 불안하기 때문인데, 그러니까 그 아이는 로봇이나 마찬가지가 됩니다. 또 한가지 단적으로 지적한다면 - 좀 조심스러운 표현이기는 하지만 - 그 시간에 만리장성을 쌓고 있을 것 같은 전업주부도 나중에 보면 그렇지도 않으며 다 하기 나름이고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어렸을 적에는 학교라는 곳이 교과서에 담긴 지식을 꼼꼼히 전달해주는 일만 하고 있었습니다. 교과서의 지식은 그야말로 금과옥조金科玉條였으며 교사는 그 지식을 먼저 많이 배웠으므로 아이들은 그의 설명을 마땅히 잘 경청해야 하고 떠들고 장난치는 아이는 매를 맞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학교의 권위는 교육에 관한 한 무소불위였고 교육의 필수 불가결한 요소는 교사와 교과서, 칠판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 하나 하나가 각자 새로운 지식을 발견하거나 만들어 나간다는 것을 전제하는 오늘날의 교육은 그렇지 않다는 것에 대해서는 자세한 설명이 필요 없을 것입니다. 우선 교육의 목표가 교과서의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고 아이들 하나 하나의 개성을 존중하여 그 꽃이 피게 하는 것으로, 학교는 같은 내용도 아이들의 다양성에 비추어 다양한 방법으로 가르칠 수 있어야 하므로 학습방법, 학습자료도 아주 다양해야 하고 가르치는 인적자원도 다양해져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들이 방과후에 학원으로 달려가는 것도 따지고 보면 학교에서 다 책임져주지 않는 데 따른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여러 학교에서는 우선 가까이 있는 인적자원 즉 학부모님들의 힘부터 이용해보려는 갖가지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사실 학부모님들 중에는 폭넓은 분야에 전문성을 지닌 분들이 매우 많으므로 우리는 그 힘을 제대로 다 이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 늘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전문성까지는 아니라 해도, 아이들을 보살피는 문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옛날에는 한 반에 60∼70명이라 해도 대수롭지 않았으나 이제는 35∼40명도 많다고 합니다. 한 가정의 자녀가 보통 6∼7명이던 것이 겨우 1∼2명이 되었으므로 한 반의 학생 수가 10∼20명이면 적당할 정도입니다. 그만큼 아이들이 기대하는 우리의 손길은 넓고 자세해야 바람직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의 교육을 옛날의 교육과 비교하려면 수많은 이야기가 있어야 하겠지만, 특징적인 것을 하나만 더 들어보면 이제 학생·교사·학부모간의 관계가 그만큼 깊어져서 그들 상호간의 신뢰가 전제되지 않으면 교육이 제대로 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우리 교원들이 나서서 "옛날처럼 교육을 다시 우리에게만 맡겨달라"고 주장해봐야 아무도 "그래, 그렇게 해 보라"고 할 사람이 없게 된 것입니다. 언론에는 오히려 학부모님들과 지역사회의 각 기관·기업체·단체의 교육에 대한 참여의 모습이 우수사례로 자주 보도되고 있습니다.


제가 너무 에두른 것 같으므로 한 가지만 예로 들겠습니다. 지난 5월의 학년별 체육대회 때는 학부모 도우미들이 특히 많이 동원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조별로 저희들끼리 의논하여 스무 가지 가까이 되는 코너를 돌며 운동과 놀이를 했습니다. 이 체험활동 시간에는 응원하는 아이도 없이 오전 내내 모든 아이들이 움직였는데, 각 코너를 담당한 도우미들은 그 코너에서만 자신의 자녀를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부모님께서 오시지 않은 아이는 당연히 섭섭했겠지요. 섭섭해하지 않는다면 정상적인 아이가 아닐 테니까요.


"그러므로 걱정 마시라"는 말씀을 드리지는 않겠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날 제 자식이나 챙기고 있다면 그 부모님은 학교까지 찾아와서 스스로 자신의 자녀를 망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앞으로는 이 점을 더욱 강조하면서 학교에 오지 못하시는 분들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학교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후진을 면치 못했던 그 날로 돌아가기보다 조금만 더 기다리시면서 우선 저와 함께 우리를 도와주시는 그 학부모님들께 고마워하며 더 살펴보고 생각하며 가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2006년 6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