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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파란편지 모음 1

국가경쟁력의 순위와 교육

by 답설재 2007. 8. 29.

성복초등학교 학부모님께 드리는 파란편지

 

 


국가경쟁력의 순위와 교육

 

 

 

지난 5월 11일, IMD 국가경쟁력 보고에서 우리나라는 9단계가 내려 61국 중 38위가 되었고, 중국은 12단계나 뛰어 19위를 차지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IMD 국가경쟁력 보고는, 스위스 로잔에 있는 IMD(국제경영개발원) 산하 세계경쟁력센터가 매년 60여 국가의 순위를 매겨 발표하는 대표적인 국가경쟁력 지표 중 하나인데, IMD에서는 국가경쟁력의 개념을 '기업의 경쟁력을 지속시킬 수 있는 여건들을 창출하고 유지할 수 있는 국가의 능력'으로 정의하고, 경제운영 성과와 정부행정 효율, 기업경영 효율, 발전 인프라 등 4개 분야 20개 부문을 종합 평가하여 국가별 순위를 정한다고 합니다. 이 기관에서는 경제 운영 성과와 인프라 분야는 경제성장률과 교사 1인당 학생 수 등 주로 객관적인 통계지표를 활용하고, 정부 효율성과 기업 효율성 부문은 각 나라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한 주관적인 설문조사 결과를 많이 반영한답니다.


이번 발표에서 국가별 순위를 살펴보면(괄호 안은 지난해 순위), 1. 미국(1), 2. 홍콩(2), 3. 싱가포르(3), 4. 아이슬란드(4), 5. 덴마크(7), 6. 오스트레일리아(9), 7. 캐나다(5), 8. 스위스(8), 9. 룩셈부르크(10), 10. 핀란드(6)가 차례로 10위까지를 차지했고, 네덜란드는 15위, 타이완(대만) 18위, 영국 21위, 독일 26위, 타이(태국) 32위, 프랑스 35위였습니다. 이 순위야 해마다 달라지겠지만, 언론에서는 '우리나라의 순위가 왜 떨어졌나', '중국이나 인도에 비해 어떤 상황인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등 말이 많았습니다. 또, 여러 신문의 기사를 살펴보았더니, 이 보고서에는 '정부가 국가경쟁력의 발목을 잡는가(Are government dragging their feet?)'란 부제가 붙어 있는데, 이는 "민간부문이 아무리 잘해도 정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국가경쟁력이 높아질 수 없다"는 메시지가 강조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분석·평가는 물론 정부와 기업, 그리고 관심과 전문성을 가진 이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기사를 보면서, 국가경쟁력 지표도 그것을 측정하는 기관에서 정한 조건의 절대적인 영향을 받겠지만, 그 배경에는 그 나라의 교육력에 비례하여 어느 정도 한계가 설정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즉, 교육력이 약한 나라는 정부나 기업 등에서 제 아무리 노력해봐도 일정한 수준 이상의 국가경쟁력을 지닐 수 없으며, 반대로 교육력이 강한 나라는 정부나 기업에서 노력하는 만큼 - 그 노력에 비례하여 - 수준이 높아질 것이라는 가정입니다. 그리고 저는 '교육력'이라는 말의 의미에 우선적으로 포함시키고 싶은 단어가 바로 '유연성'이며, 이 유연성을 가꾸는 지름길은 폭넓고 수준 높은 기초·기본교육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가령, 한가지 일만 아는 사람보다는 어떠한 일에든 새롭고도 여러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합리적인 대안을 낼 수 있는 사람을 길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점에 대하여, 저와 같은 표현을 쓰지는 않았지만, 며칠 전 어느 교수는 - 좀 극단적 제안이 아닐까 싶은데 - 고등학교에서 문과와 이과를 구분하지 말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고, 일본 학자(저널리스트) 다치바나 다카시는 대학에서도 인문·교양 교육에 힘써야 한다는 글을 벌써부터 많이 쓰고 있습니다. 또, 정진석 추기경도 우리나라 대학교육이 기술인과 직업인을 배출하는 데 치중하고 있는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한번 패배한 사람이 재기하기 힘든 것은 기업과 개인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고 본 일본의 재도전추진위원회에서는 사회가 정말로 원하는 개인의 능력(기초력)을 주체성, 설득력, 실행력, 과제 발견력, 계획력, 창조력(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힘), 발신력(자기 의견을 알기 쉽게 전하는 힘), 경청력, 다른 의견을 이해하는 능력, 정황 파악력, 규율성, 스트레스 조정력으로 정리했답니다. 저는 이러한 능력들을 한마디로 간추리면 '유연성'이라는 단어가 가장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제가 담당하고 있는 초등교육에서 힘쓸 점을, 저는 문화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1946)의 저서『국화와 칼 : 일본 문화의 틀』(을유문화사, 1994, 31쪽)에서 찾고 있습니다.

 

미국인은 생활 전부를 끊임없이 도전해오는 세계에 맞게 조정한다. 그리고는 그 도전을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반면 일본인은 오히려 미리 계획되고 진로가 정해진 생활양식에서만 안정을 얻으며 예견하지 못한 일에는 심각한 위협을 느낀다.

 

일본인들이 지금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으나 이 인용의 '일본인'을 '한국인' 혹은 '우리 아이들'로 바꾸어 해석해보면 어떻겠습니까. 우리는 깊이 생각하기보다는 들떠서 소리지르기를 좋아하지나 않습니까. 그러면서도 질문을 하기보다는 가만히 앉아서 듣기만 좋아하는 것은 아닙니까. 공란에 의견을 적기보다는 4∼5개의 답지 중에서 선택하기를 더 좋아하지 않습니까. - 그리하여 음식이나 옷을 고를 때조차 남과 다른 선택을 할까봐 두려워하지는 않습니까. - "알아서 하라"보다는 "무엇을, 언제까지, 무엇으로, 어떻게 하라"는 지시를 안정감 있게 받아들이지나 않습니까. …….


저는 그런 인간을 기르는 데는 동의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도 우리 아이들이 혹 그런 공부에 매달려 있지나 않은지 노심초사하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그런 한심한, 쓸데없는, 어처구니없는 공부만 시키고 있다면, 우리의 국가경쟁력의 장래는 한계를 벗어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2006년 6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