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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파란편지 모음 1

아데바요르의 눈물 - 우리 아이들에게 지는 방법을 가르칩시다 -

by 답설재 2007. 8. 29.

성복초등학교 학부모님께 드리는 파란편지

 

 

 

아데바요르의 눈물

- 우리 아이들에게 지는 방법을 가르칩시다 -

 

 

 

지난 6월 19일 새벽, 한국과 프랑스간의 축구 경기는 참 대단했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6시가 되기 전에는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는 저도 그 날은 좀 일찍 일어났습니다. 그 여운은 언제까지 계속될까요?


20일의 한 신문 1면에는 「지단 위에 지성」이라는 기사가 실렸는데, '프랑스 기절시킨 오른발 동점골, 스위스전 24일도 행복 예약'이라는 부제副題가 보이고, 그 기사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2006년 6월 19일. 대한민국은 행복했다. 스위스전이 열리는 24일, 그날도 행복하기를, 박지성이 있기에.' 다른 한 신문의 1면에는 「아드보카트 마법의 비밀은… 상대가 지칠 때를 기다려라」라는 박스 기사가 실렸습니다. 그 제목의 기사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19일 라이프치히 경기장을 나가다 독일 축구전문지인 키커 지의 하디 하셀브루흐 기자를 만났다. "한국이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프랑스 선수들의 체력이 떨어지는 시점을 교묘하게 이용하더군요." 그는 한국 선수들이 개인 기량은 떨어지지만 팀으로서 승부를 거는 요령은 뛰어나다는 말을 덧붙였다.'


요즘은 신문지면들이 온통 축구 이야기로 채워지고 있어 조금은 식상하기도 하지만 이런 경우에는 또 다른 신문들은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어느 건물에 들어가서 사람을 기다리며 잠시 살펴본 경제지 1면에도 어김없이 축구 이야기가 실려 있었습니다. 그 기사에서 본 단어는 이런 것들입니다. '한국 축구는 한계가 없는 숭고한 투혼·끈기·한恨의 축구', '16강 가는 길 스위스전 비법', '한편의 드라마', '열두 번째의 선수 붉은 악마', '길거리 응원', '승리를 쟁취하는 저력', '기적', '민족성', '정체성', '신명', '벌떼 축구', '유럽 강호가 두려워하는 축구', '시련이 있어야 더 강해지는 축구', '응원의 축구', …… 하다 못해 '뚝배기 축구'라는 단어도 보였습니다.


각 신문의 기사, 방송사의 축구 특집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분위기가 이렇게 이어졌으면, 하고 기원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정말, 언제까지나 축제처럼 살아갈 수는 없을까요. 그렇게 살면 왜 안 되는 것일까요. 그러나, 그럴 수는 없겠지요. 언젠가는 우리도 다시 실의에 빠지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할 것입니다. 히딩크가 우리 선수들을 이끌어가던 그 2002 한·일 월드컵 평가전 때는 그를 가리켜 '오대영'(5 : 0)이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지 않습니까. 저는 우리가 행복할 때마다 그런 때를 기억하자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늘 행복할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연수회의 강사가 억지로라도 웃어야 젊어진다는 말을 하면 그에게는 미안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고 앉아 있습니다(이건 순전히 제 개인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억지로라도 웃으면서 젊어져야 하는 것인가. 그렇게 해서라도 살아 있어야 하는가. 그게 제대로 사는 것인가.'


19일 저녁에는 우리가 2 : 1로 물리친 아프리카의 그 토고란 나라가 이번에는 스위스와 대결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데바요르 Emmanuel Adebayor라는 선수를 따라다니며 관전하고 있었습니다. 우리와 싸울 때 그 눈동자에 어떤 슬픔 같은 걸 담고 있던 그가 특히 눈길을 끌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그 눈길이 아니어도 충분히 매력적인 사나이였습니다. 아프리카 인이라면 으레 머리칼이 짧고 게다가 뽀글뽀글하기 마련인데 이 사내는 그렇지 않습니다. 늘씬하고 훤칠한 키에 밴드로 묶은 머리칼이 그래도 길어서 휘날리는 사내, 클로즈업될 때 보면 '언제 그렇게 뛰었을까' 싶게 피곤한 얼굴의 눈물이 비칠 듯한 그 예민한 눈길, 허탈함이 담긴 것 같은데도 의지가 보이는 눈, 그는 등 번호 4번인 공격수로 우리와 싸울 때는 우리의 4번 최진철 선수와 겨루었습니다. 그는 자기네 선수 1명이 퇴장 당하자 더욱 안간힘을 쓰며 종횡무진 뛰어다니고 있었습니다.


아데바요르, 그 사나이는 스위스와 싸울 때에도 그렇게 보였습니다. 이번에는 우리나라와의 대결이 아니므로 제게는 더 그렇게 보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주심은 참 한심한 사람이었습니다. 분명히, 바람처럼 달리며 골문 앞으로 다가가는 아데바요르를 스위스 선수가 넘어뜨렸는데도 페널티킥을 주기는커녕 그냥 뛰라고, 경기를 계속하라고만 야단이었습니다. 주심의 판단은 좀처럼 번복될 수 없으므로 아데바요르는 그 긴 팔을 내두르며, 데굴데굴 구르며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저는 그 아데바요르가 프랑스전에서 마지막 투혼을 발휘하기를 기대합니다. 토고가 프랑스와 잘 싸우면 우리나라에 유리하다고 그러는 것만은 아닙니다.


다른 한 가지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제가 지금 가르치고 있는 이 아이들도 살아가다가 혹 어려움을 만나면 그런 사람, 좌절하지 않고, 까짓 눈물쯤이야 얼마든지 쏟을 수 있을 만큼 많지만 또한 얼마든지 참을 수도 있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기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파이팅!!! 아데바요르.

 

 

2006년 6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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