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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파란편지 모음 1

"정말 아름다운 오드리 헵번은…"

by 답설재 2007. 8. 29.

성복 학부모님께 드리는 파란편지

 

 

 

"정말 아름다운 오드리 헵번은…"
- 우리 아이들의 불우이웃을 돕자는 포스터를 보고 -

 

 


혹 오드리 헵번 Audrey Hepburn(1929-1993)이 출연한「로마의 휴일 Roman Holiday」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앙상한 나뭇가지처럼 뼈만 남은 아프리카 어린이를 안고 서 있는 그의 사진을 보신 적은 있습니까? 이 사진은 유니세프(國際聯合兒童基金, United Nations Children's Fund) 홍보물로도 알려졌지만, 요즘 아는 사람들끼리 주고받는 메일에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 메일은 흔히 젊은 시절의 그가 출연한 영화에서의 예쁜 얼굴의 사진과 유니세프 홍보대사가 되어 주로 아프리카 어린이들과 함께 한 모습을 담은 사진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제가 보기에 젊은 시절의 그는 그냥 예쁘기는 하지만 아름답다고 하기에는 좀 그렇고 '참 아름답다' 싶은 사진은 그 뼈만 남은 어린이를 안고 저쪽 하늘가를 쳐다보고 있는 노년의 그 사진이었습니다. 입을 닫은 채 먼 곳을 바라보는데도 그 눈은, 그 표정은, 수많은 말을 담고 있는 사진으로, 누군가가 이런 설명을 붙여 놓고 있습니다. "우리가 정말 아름다운 오드리 헵번을 만난 것은 '로마의 휴일'에서가 아니라 아프리카에서였습니다."


그는 벨기에 브뤼셀에서 태어나 제2차 세계대전 때는 네덜란드에서 지냈고 전후에는 런던에서 발레리나 수업 중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했는데, 프랑스의 콜레트라는 사람에게 인정받아 「지지」 브로드웨이 공연에서 주역을 맡았고, 그것을 계기로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로마의 휴일」(1953) 주연으로 뽑혔답니다.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주연상을 받아 세계적 스타가 되었는데, 「티파니에서 아침을」(1961) 같은 영화에도 출연했고 결국 '현대의 요정'이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답니다. 그는 1987년에 유니세프의 특별 대사로 지명되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에티오피아, 수단, 방글라데시, 베트남 같은 곳을 방문하여 어려운 아이들을 돌보았습니다. 그러나 1991년, 소말리아에서 돌아온 그녀는 직장암 진단을 받았고, 1993년 1월 20일, 스위스 톨셰나츠라는 곳에서 63세에 세상을 떠났답니다. 유니세프 대사로서의 그의 활약은 대단했기 때문에 아마도 그가 이 역할을 하지 않았다면 아무리 '현대의 요정'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해도 아직까지도 사람들이 그처럼 칭송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유네세프는 어린이들의 보건·영양·교육에 대한 세계적 노력을 지원할 목적으로 창설되어 1950년이래 전쟁이 일어난 나라나 저개발국 아동들의 복지계획에 관심을 가져왔으며, 이 기구의 노력은 특히 질병의 예방과 치료, 잉여 식량 제공 등 비교적 작은 규모의 지출로 어린이들의 생활개선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되고 있습니다. 유니세프의 활동경비는 세계 여러 나라 정부와 개인의 자발적인 기부에 의하여 충당됩니다.


우리나라도 6·25 전쟁 때 이 기구의 도움을 받았는데, 그때 아무것도 모른 채 우리가 받은 우유나 학용품, 장난감, 담요 등 여러 가지 물품을 바로 이 기구에서 보내주었다는 것을 알게 된 저는 몇 년간 유니세프한국위원회의 자문위원 역할을 했었습니다. 그때 제가 인식한 것이 두어 가지 있습니다. 우리나라보다 어려운 나라 어린이들을 돕자는 회의를 해보면 "주변에도 어려운 사람들이 많은데, 무엇 하려고 남의 나라 아이들까지 도우려 하느냐?"는 사람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의 인정은 참 희한하여 그런 사람일수록 남 돕는 일에는 인색하며 "내가 여유롭게 살아갈 수 있게 되면 남을 돕겠다"고 하고, 혹 성금을 내게 되면 남에게 떠벌려 생색내는 일에는 아주 적극적이라는 점입니다.


또 한가지는 아이들은 아프리카의 그 헐벗고 굶주려 쓰러진 - 입가에 파리가 더덕더덕 붙어 있는 - 사람들의 모습을 찍은 사진을 보고 무슨 벌레나 짐승 쳐다보듯 하기가 쉽지만 직접 도와주는 기회를 가진 후에는 '세상에 이렇게 지내는 사람들도 있구나'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느낌을 가져보는 것이 교육적으로 얼마나 중요하겠습니까. 오드리 헵번도 이렇게 말했답니다. "어떤 사람도 무시되어선 안 된다. 당신이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할 때 당신 역시 팔 끝에 손을 갖고 있음을 기억하라. 나이를 먹으면서 당신은 알게 될 것이다. 당신이 두 개의 손을 갖고 있음은 한 손은 당신 자신을 돕기 위해, 나머지 한 손은 남을 돕기 위해 있다는 것을……."


요즘 학교 이곳저곳에 붙어 있는 우리 아이들의 성금 모금 포스터를 보고 생각난 것을 적어보았습니다. 교장실 앞에는 "동전 한 닢, 수십 명 살린다"는 포스터가 붙었는데, PC방과 피자, 닭꼬치, 치킨, 호떡에 가위표(×)를 한 다음, '용돈 날아간다' 생각말고 동전 한 닢 '댕그랑!', 당신의 조그만 도움에 수십 명, 아니 수천 명의 목숨이 연장됩니다, 사랑의 날개를 단 모금함이 당신을 찾아갑니다, 등 욕심스럽게 여러 가지로 호소한 내용으로, 저는 그것을 한참 들여다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