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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파란편지 모음 1

아이들이 자존감을 갖게 해줍시다

by 답설재 2007. 8. 29.

성복 학부모님께 드리는 파란편지

 

 

 

아이들이 자존감을 갖게 해줍시다

- 여름방학을 앞두고 생각하는 것들 -

 

 

 

  여름방학이 다가왔습니다. 방학, 하니까 수많은 일들이 생각나면서 저도 교원으로서 여러 번 방학을 보냈지만, 그동안 과연 어떤 일을 했는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행정기관에서 방학도 없이 일할 때는 '내게도 방학이 있다면 무엇이든 큰일을 하나씩 이루어내겠는데……' 싶었는데, 막상 학교로 돌아와서 세 번의 방학을 보내고 보니 역시 이루어낸 일은 아무것도 없고, 다만 잘 깨닫게 된 것은 사람은 게을러지기가 가장 쉬운 것 같다는 점뿐입니다.

 

  그래서 생각나는 것은, 만약 우리 아이들에게 방학 동안 각자 어떤 한 가지 일에 매진하게 하면 대체로 그 부문에서 뛰어난 성장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읽기가 부족한 아이에게 한 달여 학교 도서실에 와서 책을 읽게 하면 글을 잘 읽지 못할 까닭이 없지 않겠습니까? 이럴 때 "너는 읽기가 부족하니까 딴 생각말고 들어앉아 책이나 읽어!" 한다면 '그래, 맞아. 나는 그 쉽다는 한글도 잘 읽지 못하니까 책을 열심히 읽어야겠구나' 하겠습니까? 아이들에게도 자존심이 있어 그리 쉽게 응할 까닭이 없겠지요. 그 아이가 심정적으로 따르도록 하자면 그만큼의 전략이 필요하고, 그 아이가 그 전략에 동의하도록 해야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그 전략 중의 하나가 그 일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냈을 때의 자신의 위상 - 자존감 - 을 예상해보게 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래, 내가 책을 줄줄 읽게 되면 나도 어려운 책을 많이 읽어 ○○이처럼 선생님과 아이들 앞에서 유식한 이야기도 할 수 있게 되겠지.'

 

  자존감 이야기가 나왔습니다만, 어떤 학자의 글을 읽어보았더니 '자존감 형성은 자신의 역량에 대해 어떻게 지각하느냐와 관계가 있다'고 하며 자존감 형성에 영향을 주는 역량에는 5가지 하위요소가 포함되는데, 그것은 '학업 역량, 사회적 수용도 역량, 품행 역량, 운동 역량, 그리고 신체 외모에 대한 역량'이라고 합니다. 또, 자존감의 중요성이 널리 인식되면서 자존감 형성을 돕는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는데, 이 연구들에 의하면 '자존감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요소는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모두 신체 외모 外貌로 나타났고 이러한 결과는 남학생이나 여학생 모두에게 해당되었으며, 고등학생의 경우에는 공부도 외모도 아닌 또래관계 즉 친구가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합니다(김순혜, '몸짱, 얼짱 열풍에 학교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한국교육개발원, 교육정책포럼, 2006. 3. 23). 잘 아시다시피 예전에는 학생들의 자존감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이 학업요소였으므로, 우리 성인들은 지금도 그러려니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고 보면 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이른바 '몸짱'이니 '얼짱'이라는 말의 위력에 실감이 납니다.

 

  그러나 그러한 현상은 어디까지나 정상적인 현상은 아닐 것입니다. 다만, 화장품 소비량 세계 1위, 성형 수술률 1위, 보톡스 주사 소비율 1위인 이 나라(『현대문학』, 2003. 1월호, 253)의 일시적 현상일 뿐이며, 우리나라는 또한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나라이므로 곧 이러한 부문의 세계 1위도 변하여 우리는 다시 더욱 멋진 부문에서 세계 1위를 자랑하게 될 것을 가정하면, 우리나라 학생들의 자존감에 대한 그러한 인식도 변하고 말 것이라는 것을 훤히 내다볼 수 있습니다. 더구나, 우리는 자존감의 그러한 하위요소에 대하여 교육적으로 해석해야 하며, 우리가 교육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당연히 우리의 통제권 統制圈 안에 있는 것으로 예를 들어 열심히 공부하면 좋은 성적이 나온다든지, 운동에 힘써야 진정한 '몸짱'이 된다든지, 남과 더불어 일하는 것을 좋아하여 여러 사람이 보고싶어 하고 찾고싶어 하는 사람이 된다든지 하는, 말하자면 우리의 사고와 우리의 노력, 우리의 태도 같은 것에 의해 변화할 수 있는 것들을 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 방학을 앞두고, 부모님께나 이 아이들에게나 올 여름이야말로 멋진 계절이기를 기원합니다. 특히, 760여 명 자랑스런 아이들 모두가 이 방학에는 각자 한 가지 일에 힘써 오는 가을에는 모두들 그 부문에서는 자존감을 가지고 돌아오기를 기원합니다. 초등학교 시절에 그러한 자존감을 찾을 수 있는 기회가 6학년에게도 아직은 두 번이나 남았고, 5학년에게는 네 번, 4학년에게는 여섯 번, 3학년에게는 여덟 번, 2학년에게는 열 번, 1학년에게는 열두 번, 유치원 아이들에게는 열네 번이나 있습니다.

   

 

2006년 7월 20일

   

 

추신 : 그동안 저의 <파란편지>를 애독해주신 성복 학부모님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방학이고 하여 당분간 이 편지는 우리 학교 홈페이지에만 싣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학교 홈페이지 주소는 http://www.sungbok.es.kr입니다. 앞으로도 많이 애독해주시고,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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