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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파란편지 모음 1

선운사에 가보셨습니까?

by 답설재 2007. 8. 29.

성복 학부모님께 드리는 파란편지

 

 

 

선운사에 가보셨습니까?

- 아이들을 데리고 나갈 땐 어떻게 하십니까? -

 

 

 

  아이들이 오지 않는 학교는 조용합니다. 저에게는 그들이 재잘거리고 떠들어대는 소리가 음악보다 낫기 때문이어서 그런지 그렇게 조용한 학교가 그리 좋은 느낌을 주지는 않습니다. 지금쯤 우리 아이들은 어디로 가 있을까요? 집에도 있겠지만, 시골이나 제주도, 설악산, 불국사 같은 곳에도 가 있고, 몇 명은 다른 나라의 어느 곳을 돌아다니고 있겠지요. 모두들 무엇을 보고 듣고 이야기하든 무엇인가 배우며 건강하게 지내기 바랄 뿐입니다. '선운사'라는 제목의 시를 보았습니다.

 

 

  서정주가 다 버려놓고 간 절. 지난 봄 노근하게 동백꽃에 낮술을 먹이고, 한껏 육자배기 가락이나 뽑던 절. 고창에는 다시 오지 말자. 법당 그림자가 땅바닥에 몸뚱이처럼 드러눕는데도 여름에는 오지 말자. 저 부도 속의 컴컴한 유암幽暗도 잊자. 야차夜叉같이 낄낄낄 누런 웃음이나 깔기고 서 있는 사내려니. 아아, 이파리 아래 푸르고 불그스름한 능구렁이려니. 법문마저 닫아건 무더위 속. 이제 지는 꽃 하나 없이 돌아서자. 해탈은 낮술처럼 숨이 막히는데 서정주인들 선운사에 다시 오랴.

 

                                                    - 김윤식(1947∼ ), 「선운사」(『현대문학』, 2006. 7월호) -

 

 

  선운사, ……, 달밤에 그 입구의 마을에 도착하여 참 좋다고들 이야기하는, 산딸기로 만든다는 술을 마셔본 일, 이튿날 아침 그 선운사를 향해 걷던 길, 들판의 길가에 세워져 있는 걸로 기억되는 서정주 시비徐廷柱 詩碑, 무더기로 자리잡은 그 동백, 그러나 최근에 세워져 고색창연古色蒼然한 그 절의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탑들, 주지 스님께 혼이 날 말인지 모르겠으나 왠지 저는 그 탑들이 보기가 싫었습니다. 시주施主를 많이 하는 사람이 최고라 해도 그 탑들을 저만치 떨어진 곳에 세울 수는 없는지, 물어보고 싶기도 했습니다. 만약, 생각이 바뀌어 "이걸 다 치우자"고 하면 그때는 그 탑들을 다 어떻게 할 작정인지도 걱정이었습니다. 지금은 어떻게 되어 있는지 모르겠으나, 이미 그 선운사에 가본 지도 10년이 지났지만 '선운사' 하면 떠오르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만약 아이들과 함께 그 곳에 간다면 어떻게 이야기하며 돌아보는 것이 좋을지 생각하게 됩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이다. 이 절의 창건에 대해서는 신라의 진흥왕이 왕위를 버린 날 미륵삼존이 바위를 가르고 나오는 꿈을 꾸고 감동하여 절을 세웠다는 설과, 그보다 2년 늦은 557년(위덕왕 24)에 백제의 고승 검단(檢旦 : 또는 黔丹)이 창건했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가장 오래된 조선 후기의 사료들에는 진흥왕이 창건하고 검단선사가 중건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354년(공민왕 3)에 효정(孝正)이 중수하고, 1472년(성종 3)부터 10여 년 동안 행호(幸浩)선사 극유(克乳)가 성종의 숙부 덕원군(德源君)의 후원으로 크게 중창하여 경내의 건물이 189채나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정유재란 때 거의 타버렸는데, …

 

 

  인터넷의 백과사전을 보았더니 이렇게 시작되고 있지만, 이런 것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기는 좀 난처할 것 같아서 더 생각해봅니다. "얘야, 저 비석이나 탑들은 쳐다보지 말고 절로 들어가서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금동보살좌상 같은 유명한 문화재나 보자." "봐라. 시주를 많이 하면 이렇게 비석도 세워주고, 탑에 이름도 새겨준단다." "내 참, 이게 뭐냐? 어울리지도 않고 내 성미에는 영 맞지 않는구나." 이런 반응은 아무래도 바람직하지 못할 것 같고, 뭐, 교육적으로 적절한 얘기 거리가 없을까요?

 

  어렵습니다. 역시, 정답은 없고, 다만 아이가 나름대로 관점을 세워서 보게 하고, 그렇게 보면서 또 다른 의문을 갖게 하면 되겠지요. 앞의 시 「선운사」의 주인공 서정주, 한때의 친일행적으로 지금은 그의 시 「국화 옆에서」도 자주 볼 수 없게 된 서정주, 그 들판의 시비詩碑에 새겨진 그의 시 「선운사 동구禪雲寺 洞口」를 찾아보았습니다.

 

 

禪雲寺 고랑으로

禪雲寺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시방도 남았습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디다.

 

                  - 민음사, 『세계 시인선 ⑫ 徐廷柱詩選』, 1974 -

 

 

  선운사 근방에는 아름다운 고창읍성高敞邑城도 있고, 제 기억으로는 그 당시 그 어딘가의 논바닥에서 프랑스에만 딱 한군데 있다는 무슨 좋은 물의 온천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고 했는데, 지금 어떻게 개발되어 있는지 이곳에 들어앉아 있으니 알 길이 없습니다.

 

 

2006년 7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