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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파란편지 모음 1

학교는 어떤 힘에 의해 움직여질까요?

by 답설재 2007. 8. 29.

성복 학부모님께 드리는 파란편지

 

 

 

학교는 어떤 힘에 의해 움직여질까요?

- 교장 임용제에 대한 논란을 보며 -

 

 

 

끝이란 걸 믿을 수 있나요

더는 물러설 곳 없기를 바라오

때론 사는 게 죽음보다 힘든 걸 뼈 속까지 차게 알게 된 거죠

손끝 하나 움직일 수 없도록 삶의 무게는 더해만 가오

느끼나요, 아름다운 모든 것, 어두운 세상, 사랑하는 사람들

실패는 우리가 포기할 때뿐이라오

희망이란 우리들의 마음에…

삶의 끝까지 내려가 본 사람은 알게 되지요

그래도 세상은 아직 살 만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살아있는 건 그 자체만으로 희망이라는 것을…

 

「아프리카」/ 작사 한경혜 /작곡 Rolf Loveland / 편곡 김건영·이혜린 / 노래 김동규

 

 

 

교육부에서 나온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에는 8,246개의 유치원이 있고, 초등학교 5,542개교, 중학교 2,900개교, 고등학교 2,141개교, 특수학교 141개교, 전문대학 162개교, 대학교와 대학원 249개교가 있습니다(2004. 4. 1. 기준). 그러므로 초·중등학교만도 10,583개교이니 교장도 1만 명이 넘고, 저는 그 1만여 명 중의 한 명이므로 잘난 체할 것 하나도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교장은 걱정도 많겠지만 우리 학교 교육을 좌지우지할 수 있으므로 참 좋겠다'고 하실 분도 계시겠지만, 제 경우에는 전에 하던 일에 비해 아무래도 좀 여유가 있어서 그런지 직접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께 미안하기도 한 것이 사실일 뿐 권한을 휘둘러 보고싶은 느낌 따위는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교장으로 지내고 있는 것이 그 여유에 비해 그리 간단치도 않아서, 이 기회에 제대로 토로하면 오히려 잔뜩 의무감만 느끼게 되고 제 맘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며 지내는 것이 또한 사실이기도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 낙원(?)에 혹 무슨 일이 벌어지면 다 제 책임 아닙니까? 그렇다고 미리부터 그것을 내세워 교직원들을 닦달하면 저들이 한시도 마음 편하게 지낼 수 없게 되고 그러면 아이들도 덩달아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 학교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어떻게 보면 학교라는 곳은, 교사나 아이들은 그들의 의사대로 가르치고 배우며 생활하고, 교장은 그 과정과 결과의 모든 책임을 지는 그런 곳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도 교장들끼리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렇지도 않아서 '우리의 권한을 더 이상 빼앗겨서는 아무것도 안 된다'는 주장도 꽤 많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학교에 따라서는 교육활동에 대한 결정을 주로 교장이 내리는 학교도 있어서 그런 학교에서는 교직원회의부터 지시·전달형으로 이루어집니다. 회의가 시작되면 교장의 결재를 받은 교사들이 불쑥불쑥 일어서서 "이런 것은 이렇게 하고 저런 것은 저렇게 하십시오" 하기 때문에 그 지시·전달 사항을 서로 발표하고 듣기만 하면 그만입니다. 교장이 결정하거나 허락한 지시·전달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더 좋은 의견을 내거나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 학교 선생님들은 재빨리 그런 회의 스타일을 고쳤기 때문에 그런 대로 회의다운 회의를 하고 있는 것으로 자평(自評)하고 있습니다. 지시·전달형 회의를 하는 사람들은 그런 회의가 잘못된 것인 줄을 잘 모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 회의를 의사결정기구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런 사항들에 대한 논란이 크게 불거지면 드디어 정부에서 나서서 그 문제에 대한 제도나 시책을 강구하는 것이 우리 교육계의 풍습이 되었는데, 생각해보면 참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모든 일을 이처럼 정부에서 마련한 시책이나 제도에 따라서 시행하게 되면 우리 교원들이 배우고 쌓아온 전문성이나 경험 따위는 무엇에 쓰겠습니까. 그런 문화, 그런 사회에서 교장이 되면 그가 도대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사고방식을 가진 사회이므로 교장을 뽑는 일에 대한 의견도 서로 너무나 달라서 어떤 사람들은 '선출보직제'로 하자고 하고, '공모제'나 '초빙제'를 주장하기도 하며, 또 어떤 사람들은 그동안 시행해온 '자격증제'가 좋다며 그 문제만 나오면 교육계가 온통 떠들썩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더구나 의견을 내는 측들의 주장이 하도 강하여 이제는 어떤 방법이 좋은지 마음놓고 이야기하기도 거북한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학교는 교육과정을 편성하여 운영하는 곳이므로 그 일을 전문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사람, 이런저런 교육활동을 구상하는 선생님을 만나서 보다 수준 높은 아이디어를 창출하게 하고 그 일에 대한 의견을 효율적으로 모으도록 조언할 수 있는 사람, 수업을 마친 선생님의 지친 표정을 그냥 한번 쳐다보기만 해도 그 심중을 헤아릴 수 있는 사람, 아이들을 보면 한없이 사랑스러워 강한 책무성을 느끼는 사람, 정명훈은 축구도 오케스트라라고 했지만 학교의 일들을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지휘해나갈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교장을 하면 될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우리가 먼저 걱정해야 할 것은 '교장임용제도'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교장이 되어야 하는가'에 있다는 것입니다.

 

<아프리카>란 노래는, 들을 때 제 생각이 난다고 한 분이 있어 노래를 들어보지도 않고 좀 우쭐한 적이 있습니다. 생각하면 부끄럽습니다.

 

 

2006년 8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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