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파란편지 모음 1

재능과 노력과 여유

by 답설재 2007. 8. 29.

성복 학부모님께 드리는 파란편지

 

 

 

재능과 노력과 여유

- 정명훈과의 인터뷰 방송을 보고 -

 

 

 

지난 7월 22일 토요일 밤, KBS TV에서 서울시향 상임지휘자 정명훈과의 인터뷰를 보았습니다.

 

전임 서울시장이 어떻게 하면 우리도 멋진 연주회를 관람할 수 있겠는지 물었을 때 한 20년은 기다리라고 했다는 기사가 생각났습니다. 인터넷에서 '정명훈'을 찾았더니, 1953년 생, 4세에 피아노 시작, 7세에 서울시립교향악단과 협연, 8세에 미 시애틀 교향악단과 협연, 1974년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콩쿠르 2위, 1975년 미 줄리어드 음악학교에 입학하여 지휘자 수업, 1978년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부지휘자, 1983년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프랑스 국립교향악단 등의 객원지휘자, 1986년 독일 자르브뤼켄방송 교향악단 상임지휘자, 1987년 이탈리아 피렌체 오페라 객원지휘자, 1989년 프랑스 국립바스티유오페라단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프랑스정부의 압력으로 1994년 해임), 1989년 이탈리아 토스카니니 지휘자상 수상, 1992년 국제연합마약퇴치기구(UNDCP) 초대 친선대사로 피선 등 화려한 경력이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대담자가 그에게 '재능'과 '노력'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를 묻자 그는 곧 어느 정도 재능이 있으면 재능보다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아무려면, 재능이 없으면 '아무리 노력해봤자 헛일'이라거나 '재능과 노력은 그 비중이 똑같다'고 어색한 대답을 할 리가 있겠습니까. 중요한 견해가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해라, 해라' 해서 하는 노력이 아니라, 하고싶어서 하는 노력이 필요한데 우리나라 조기교육에서는 부모들의 '해라, 해라'가 심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런 교육을 받으면 중·고등학교를 지나 대학입학 때까지는 두각을 나타내지만 그 이후에는 정상적인 교육을 받은 다른 학생에게 당장 뒤지고 만다는 사례는 여러 분야에서 소개되고 있지 않습니까.

 

여름방학을 하는 날 3학년 학생에게 '독서왕 인증서'를 준 일이 생각났습니다. 그 애는 지난 3월 초부터 6월말까지 약 120일간 136권의 책을 읽었답니다. 그것도 그냥 읽기만 한 것이 아니라 또박또박 독서기록을 남겨서 제게 확인을 받았습니다. 저는 그 기록을 보면서 '이건 누가 시켜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렇다고 모두 이처럼 독서를 많이 해야 한다거나 한 권을 읽어도 큰 감명을 받는 경우를 가볍게 여기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어떤 공부를 하든 이 아이처럼, 또 정명훈처럼 모두들 나름대로 신이 나서 한다면 좋겠다는 뜻입니다.

 

그는 또 '성공'만을 위해 노력해서는 안 된다고도 했습니다. "성공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그럼 어떻게 하라는 말이냐?"고 할 수 있겠지만, "오로지 성공만을 지향한다면 그 부문에서 성공하지 못할 경우 인생의 낙오자가 되라는 말이냐?"고 되물을 수 있으므로 그의 견해는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피아노를 공부할 때, "피아니스트로서의 성공만을 위해 노력해서는 안 된다. 진정한 음악가가 되려고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줄리어드 음악학교 스승의 가르침도 이야기했습니다. 그 가르침대로 피아노만 한 것이 아니라 바이올린, 북도 배웠다고 하면서 "그래서, 피아니스트가 되지 못했는지 모르지만." 하고 농담도 했습니다.

 

그가 시간만 나면 잘 한다는 요리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는 고급 요리는 전혀 하지 못하고 그저 '패밀리 스타일family style'만 할 줄 알며, 자신이 잘하는 것은 음악과 이 요리뿐이고, 나머지는 아내한테 맡겨서 옷도 아내가 모두 구입해준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봐라, 정명훈 같은 남자도 요즘 세태에 맞추어 가족을 위해 요리를 한단다." 하고 페머니스틱feministic한 해석을 할 수도 있겠지만, 아마도 그의 요리는 음악적 긴장감을 풀어주고 여유를 찾게 하는 '열쇠'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그만큼의 열정으로 살아간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그처럼 긴장을 풀어가며 지내야 할 정도의 열정을 바쳐 일한다면 무엇을 한들 어떻겠습니까.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을 한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일 것입니다.

 

또 장마가 져서 아파트 정원을 온갖 것들이 기어다니는 모양입니다. 세네 살쯤이 외치는 소리가 제 집 거실까지 올라왔습니다. "할머니, 달팽이!" 할머니가 달랩니다. "달팽이를 만지면 손가락을 문다. 얼른 가자." 비도 오고 하니까 귀찮기도 하겠지요. 아이가 이제는 우는 소리로 외칩니다. "아니야, 달팽이는 깨물지 않아!" 그 외침이 제게는 이렇게도 들립니다. "할머니는 걸핏하면 엄마처럼 반대를 해!" 체험학습을 시킨답시고, 곰이나 뱀이나 따져보지도 않고 겁도 없이 마구 가까이 가게 하고, 심지어 덥석 만지게 하는 것도 문제지만 모처럼 마당까지 놀러 나온 달팽이를 좀 만져보게 하지 않고 빨리 가자고 채근하는 할머니도 딱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06년 8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