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파란편지 모음 1

우리가 느끼는 열정과 희열

by 답설재 2007. 8. 29.

성복 학부모님께 드리는 파란편지

 

 

 

우리가 느끼는 열정과 희열

- 교육과정정책 연구학교 운영 보고를 앞두고 -

 

 


출근하자마자 선생님 한 분이 서류를 내밀었습니다. 무언가 하고 들여다보았더니 '수학여행추진계획서'였습니다. 우리 학교 교육과정 계획에 의하면 아직도 3개월이나 남은 10월 중순에 실시될 예정인데 벌써 무슨 계획인가 하기가 쉬울 것입니다. 보통은 그렇습니다. 잠잠히 있다가 - 며칠 전부터 아이들이 들뜨면 그걸 억눌러가며 지내다가 - 그때가 되면 훌쩍 떠나는 것입니다. 그런 교육활동을 하면, 대체로 계획은 계획에만 머물러 실제 교육활동은 주먹구구식으로 이루어지기 마련이며, 게다가 평가의 관심은 학생들의 시험 문제에만 기울어져 '우리가 이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프로그램을 적용해주었는가'에는 아무 관심이 없는 형식적인 평가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수학여행 같은 건 노는 것이지 교육이 아니었고, 아이들이 보면 - 아이들이 그렇게 지적할 수는 없지만 - 분명히 비정상적인 교육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모든 교육활동에 대하여 선생님들이 계획을 세우고 추진하고 평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이제는 아이들이 주체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고 평가해보게 하는 교육도 중시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아이들의 자기 주도적 自己主導的인 능력이나 탐구하는 힘, 판단하는 힘 등 '살아가는 힘'을 향상시켜 스스로의 삶을 주체적으로 영위하는 능력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수학여행이라면, 그 교육활동이 이루어지는 그 날만의 교육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경험한 바 지난해의 축제를 떠올린다면 아이들은 축제 당일보다 오히려 그 축제를 준비하는 기간에 어쩌면 더 값있는 교육을 받았다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서류의 내용은 간단하여 교사와 학생·학부모 대표로 조직되는 '수학여행추진위원회'를 구성·운영하고, 지금부터 10월 중순까지 단계적으로 어떤 활동들을 펼쳐나가겠다는 내용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서류에 감동하며 혼자말로 중얼거렸습니다. "웬 일이야?" 그러자 그 선생님께서 대답했습니다. "연구학교 2년째 아닙니까? 교장 선생님이 그걸 바라지 않습니까?" 그런 대답을 듣게 된 제 느낌이 어떠했겠습니까. 저는 개인적으로는 봉급을 받아 생활을 해나가려고 이 학교에 오지만, 국가·사회적으로는 제 능력을 발휘하여 이 학교의 교육이 좀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되는 걸 보며 제가 이 자리에 앉아 있는 데 대한 보람을 느끼고 더불어 열정과 희열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학교는 지난해 3월부터 우리 학교 교육을 교사와 학생, 학부모가 함께 하는 교육활동으로 바꾸고 - 물론 전면적으로 그렇게 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 계획과 실천과 결과가 밀접한 관계를 이루어 하나의 선線으로 나타나는, 그리고 그 선은 시작과 끝을 찾을 수 없는, 혹은 하나의 원을 이루어 끝없이 이어지는 순환과정이 되게 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건 당연한 일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이 사실이어서 계획은 서류에 머물고, 실제는 교과서 내용을 그대로 전달해주는 일에만 치우치고, 평가는 평가 서류에만 머물러 다시 새로운 계획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 평가가 이루어져 온 것이 우리 교육계의 근원적이고 만성적인 병폐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는 일은 말처럼 그렇게 쉽지 않고 조금만 방심하면 다시 옛날의 관습으로 되돌아가려는 자신을 발견하기가 일쑤였으나, 우리는 미미하게라도 나타나는 그 성과에 만족할 줄 알아야 이러한 개선에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일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이러한 노력은, 물론 한 시간 한 시간의 수업에도 적용되어야 합니다. 며칠 전에는 어느 선생님께서 우리 학교 전 선생님들 앞에서 수업을 공개했습니다. 저는 그 수업을 참관하면서 행복했습니다. 한 가지 한 가지 과제가 제시될 때마다 아이들이 그렇게 떠들며 말이 많은데도 선생님은 한번도 "얘들아, 조용히 해!" 소리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가르쳐야 할 것을 다 가르치는 그 선생님께 감탄하며 '이런 장면을 학부모들도 좀 보아야 하는데…….' 안타까워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힘이고 미래일 것입니다.


우리 학교에서는 내일 오후에 전국 16개 시·도의 대표 교원들과 교육인적자원부, 경기도교육청 등의 인사들 100여 명을 초대하여 우리 학교의 수업을 보여주고 그동안 우리가 연구해온 것도 보고하게 되었습니다. 그분들께 모든 것을 공개하고 여러 가지 의견을 들어 고칠 것이 있으면 더 고쳐나가는 연구를 2학기에도 계속할 예정입니다. 이 행사로 하여 좀 불편한 점이 있다면 본래의 뜻을 상기하시고 이해하여 주시기 바라며, 우리 학교의 이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져 우리 아이들의 성장에 기여할 수 있도록 응원하여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2006년 7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