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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파란편지 모음 1

다시 생각해보는 「재능」

by 답설재 2007. 8. 29.

성복 학부모님께 드리는 파란편지

 

 

 

 

다시 생각해보는 「재능」

- '제2의 인생'을 시작해야 하는 한 대학생의 이야기를 읽고 -

 

 

 

 

  야구선수의 꿈을 접어버린 대학교 4학년생의 참담한 현실에 관한 르포(르포르타주)를 보다가 옛일이 떠올랐습니다. 교육은 아무래도 좀 전통적인 사고를 기반으로 하는 일이기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우리 교원들은 아이들을 가르치며 적어도 교육적인 현상에 관해서는 그렇게 당혹함을 느끼거나 깜짝 놀랄 일을 자주 겪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날의 일만은 아무래도 제가 당혹함을 느끼기에 충분했습니다.

 

  아이들 중에는 남들보다 일찍 그 재능을 나타내는 경우가 있어서 교사들은 그런 애들을 각종 대회에 맡아놓고 출전시키는 말하자면 '선수'로 키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니었지요. 예를 들어 여러 가지 체육 활동이 그렇고 음악도 그렇고 그림, 서예, 독서, 문예 등 그런 영역은 여러 가지였습니다. 우리 반 영인이도 그런 아이로, 글짓기라면 어떤 제목이나 주제를 내주어도 당장 몇 장의 원고지를 가득 채울 수 있는 소질을 갖고 있어서 그 날 방과후에도 글짓기 교실에 가 있었습니다. 영인이 어머니가 오랜만에 학교를 방문했기에 이번에도 그 아이의 글짓기 재주를 한껏 칭찬하고 있는데 갑자기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이제 글짓기 공부는 그만 시키려고 해요."

 

  순간 저는 할말을 잃었습니다. 지금 영인이 어머니가 분명 그렇게 말했는지, 제 귀를 의심할 정도였으니까요. 한참만에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묻게 되었고 대답을 들은 저는 더욱 놀라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놀라움은 이제 글짓기 공부를 그만 시키게 되었다는 결정보다 더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선생님, 영인이는 아직 4학년이어서 시켜보고 싶은 게 대단히 많아요. 더구나, 재능을 보이는 영역이 글짓기만은 아닌 것 같아서 글을 쓰는 것이 정말로 그 애의 뛰어난 재능인지 의심스럽기 때문이에요."

그 자리, 그 순간 저는 제가 교사인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어째서 교사인 나는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는가, 영인이의 재능에 대한 나의 판단은 과연 어떤 근거에 의한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하자 교사로서의 권위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에 맥이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아이들의 재능에 대하여 우리에게 편리한대로 평가하는 무지막지한 잘못을 저지르기 쉬우며, 그러한 일방적 판단에 의해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큰 피해를 당할 수 있는지 도저히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지경이라고 해야 할 것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일찍이 아들의 재능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네 살 때부터 음악을 가르친 '모차르트의 아버지'는 아닌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야구선수의 꿈을 접어버린 한 청년의 참담한 현실에 관한 그 기사의 제목은 「외면당한 그들, 이젠 어디로…」였고, "내년 대학야구 졸업예정자 179명 중 프로 행은 13명, 20대에 벌써 '제2인생' 시작… 나오는 건 한숨뿐"이 부제였습니다(조선일보, 2006. 8. 17, 25면). 마침 프로야구 2007년도 신인 2차 지명이 열리고 있던 날의 이야기였습니다. "며칠 안에 짐 싸서 숙소에서 나와야죠." "10년 넘게 야구해서 안 됐는데 뭘 더 바라겠어요. 사회에 적응하려면 조금이라도 일찍 나가야죠."라며 이제 다른 진로를 생각해봐야겠다는 대학생도 있고, 텔레마케팅, 경비업체 등 닥치는 대로 면접을 봤고, 한 달 동안 이력서를 한 100통은 썼다면서 "운동만 했으니 뭘 알겠느냐는 식이었어요. 사실 배운 게 야구밖에 없으니까요. 가르쳐만 주면 잘할 자신이 있는데…"라고 한 대학생은 결국 하루에 10시간 일하고 월급 75만원을 받는 한 헬스클럽에 취직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또 다른 한 학생의 말에 의하면, 야구만 하고 공부를 하지 않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어서 경호업체나 트레이너 등 몸으로 때우는 일이 대부분이며 술집 웨이터를 하는 경우도 많이 봤다고 했습니다.

 

  제 선배 편수관(교과서 편찬 일을 맡아 하는 사람) 중에 나중에 한국교원대학교 교수로 지내다가 정년퇴직 때 살아온 일들을 책으로 내며 "나는 일하는 것을 노는 것처럼, 노는 것을 일하는 것처럼 살았다"고 쓴 분이 있습니다. 그분도 두 가지의 비중을 똑같이 보고 있지만, 사실은 일을 잘하는 것은 당연히 어렵지만 잘 노는 것도 어쩌면 일하는 것만큼 어려운 것이 아니겠습니까. 편수관 일을 아주 멋지게 해낸 그분은, 노는 데에도 아주 뛰어나 언제나 우리를 휘어잡고 있습니다. 제가 그 뜻을 다 알 수야 없겠지만,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 ; 論語 雍也篇)는 말도 있습니다.

 

  성복 아이들은 모두들 각자의 재능을 '성복 축구부'꾸어가면 좋겠습니다. 우리 학교 축구부 아이들 중에는 축구를 하여 먹고살겠다며 이를 가는 아이는 아직 없는 것 같고 이 무더운 여름날에도 학교에 나와 땀을 흘리면서 그저 축구를 즐기는 아이들뿐인 것 같아서 하는 말입니다. 그렇게 즐기다보면 아주 멋있는 축구선수가 될 수도 있는 일이지요.

 

 

2006년 8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