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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파란편지 모음 1

나쁠 수 있는 식품에 대한 관심을 위하여

by 답설재 2007. 8. 29.

성복 학부모님께 드리는 파란편지

 

 

 

나쁠 수 있는 식품에 대한 관심을 위하여

- 아이들이 저 운동장을 달리던 장면을 떠올리며 -

 

 

 

 

  저는 2004년 초가을에 우리 학교에 왔습니다. 봄에는 창 너머 저 동산의 송화 가루가 자동차를 뿌옇게 해놓고 한가롭게 뻐꾸기가 울어댔으며, 귀뚜라미가 이 방안에까지 들어온 가을에는 '내가 비로소 여기까지 왔구나' 싶었습니다. 이제 또 코스모스가 피겠지요. 벌써 보셨습니까? 제가 그 첫 번째 가을에 생각한 것 중에는 아직 입밖에 내지도 못한 것도 있으니 저는 스스로 보기에도 참 한심한 사람입니다. 오늘 이야기도 체계적으로 전개하기가 어렵고 일면 조심스러워서 오랫동안 망설였습니다.

 

  그 가을에 우리 선생님들께 말씀드려서 소규모의 운동회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것을 계기로 지난해와 올해에는 학년별 체육대회도 했으니 변화도 있었다고 해야 하겠지만, 그 가을 운동장을 달리던 아이들을 보면서 놀랐던 일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무엇이든 아이들에게 경쟁을 시켜 상을 주고 칭찬을 하려면 그것은 학습의 결과이어야 하고, 학습이라면 당연히 열심히 공부하면 좋은 성적이 나와야 하는데, 제가 보기에 달리기대회만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키에 비해 몸무게가 좀 많이 나갈 듯한 아이는 꼴찌를 면하지 못하고 있었으니까요. '뛰어보나마나'였습니다. 그러한 종목을, 옛날부터 운동회만 하면 꼭 프로그램에 넣고 있으니, 즐거워야 할 - 운동회만 하면 '즐겁고 신나는 운동회'라고 쓴 현수막을 걸어놓고 "즐겁고 신난다"는 것을 강조하니까 즐거운 척이라도 해야 할 - 그 운동회가 그런 아이에게는 전혀 즐겁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즐겁기는커녕 그 작은 가슴이 얼마나 답답하고 안타까울지는 겨우겨우 달려가는 그 모습, 그 표정을 보면 당장 알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온 동네 사람, 부모님 다 오시게 해놓고 이게 무슨 꼴인가!' 생각하며 그 순간을 못 견뎌하는 지도 모르고, 운동회만 아니면 학교가 좋을 텐데 운동회 때문에 학교가 싫을지도 모릅니다(이렇게 쓰면 그 아이를 찾아 두리번거리는 사람이 생기지 않을까 또 두려워지는군요. 우리 학교 아이들이나 부모님 중에는 그런 유치한 사람은 물론 없겠지만).

 

  과체중이 심하면, 비만으로 진행하여 고지혈증, 지방간, 고혈압, 동맥경화, 당뇨, 심근경색, 뇌출혈 등 성인병에 연계되기가 쉽고, 심장에도 부담을 주며, 호흡장애를 일으키고 관절, 척추에도 무리가 가기 쉽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문제보다도 정서적인 불안을 느끼고, 자발성이나 적극성이 부족하게 되며, 열등감을 느끼거나 내향성으로 변하기 쉽다는 점이 더 부담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오히려 아직 그렇게 걱정할 단계가 아닌데도 과민한 반응을 보이는 아이가 있다면 그런 아이도 지도 대상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학교에서 지난 5월에 배부해드린 '성복보건소식'에는 고열량의 인스턴트 식품 섭취량 증가, 텔레비전 시청이나 컴퓨터 게임 시간의 증가와 함께 걷기보다 자동차를 타는 시간이 증가함에 따른 운동 부족, 과보호와 무관심을 그 원인으로 제시했으므로 이런 점에 유념하시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요즘에는 신문에도 자주 실려서 때마다 살펴보면 특히 인스턴트 식품의 영향이 큰 것으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여러 학교 영양사들은 흔히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좋은 반찬은 맛없다고 안 먹고 패스트푸드를 사먹으니……."

 

  다행히 우리 아이들 중에는 그 과체중이 비만으로 진행되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아이는 별로 눈에 띄지 않고 공식적인 용어로 말하면 신장기身長期에 키가 더 크게 되면 당장 '정상'으로 돌아갈 '경도' 몇 명, 아무래도 '경도'를 지난 '중등도' 몇 명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저로서는 그 상태를 바꾸기가 비교적 쉬운 이 단계에서 우리 어른들이 좀더 신경을 써주셨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하고싶은 것입니다. 우리 학교 아이들의 '신체발달상황통계표'를 보고 강조하고싶은 한가지 특징적인 면은 현재 과체중인 남학생이 여학생보다 3∼4배는 더 많다는 것입니다. 이른바 '다이어트'(건강이나 미용을 위하여 음식 양, 종류를 제한함)라면 여성의 전유물처럼 생각하는 것도 그 원인이 아닌가 싶고, 남성에게는 아무래도 무언가 좀 관대한 경향도 있는 것 같습니다.

 

  여담이지만 서양 사람들의 과체중 문제는 우리보다 훨씬 심각하며, 우리나라에도 과체중이 서서히 늘어나는 것은 음식이나 생활 패턴 등 우리의 문화가 서구화함에 따른 경향인 것 같기도 합니다. 오죽하면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는 캐럴린 플린트 보건부 차관을 새로 자리를 마련한 피트니스 장관Minister for Fitness에 임명했겠습니까. 캐럴린 플린트는 "2012년 런던 올림픽 개최 전까지 전 국민의 군살을 빼고 체력을 기르는 캠페인을 국가 차원에서 전개하겠다"고 선언했답니다. 영국 정부는 생활 속의 작은 습관을 바꿔 질병을 예방하자는 '작은 변화, 큰 차이 운동(Small Change Big Difference Initiative)'도 하고 있으며, 블레어가 직접 나서서 ▶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 이용하기 ▶ 야채와 과일 섭취 늘리기 등을 강조하고 있답니다(중앙일보, 2006. 8. 25). 우리 학교의 피트니스 상담실은 친절하기로 소문난 '성복초등학교보건실'이므로 전화나 면담 등 어떤 방법으로든 자주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2006년 8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