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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파란편지 모음 2

이 선생님…

by 답설재 2007. 8. 29.

성복 학부모님께 드리는 파란편지 83

 

 

 

이 선생님…

 

 

 

올해는 제가 조선일보사의 전국교육자대상 심사를 보았습니다. 38년 교사 생활에 아직 변변한 상 한 번 받아본 적 없지만 그 심사위원 중에는 정원식 전 국무총리, 광주와 경상남도 교육감도 있어 제가 심사위원이 된 것이 영광스럽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예심과 현장조사 등을 거쳐 최종심사에 오른 초·중·고 교사 20명중에서 13명을 선정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스승의 날에 발표된 명단을 보았더니 한 명이 빠진 12명이었습니다.

 

그 날은 한국교원대학교에 볼일이 있어서 내내 '그 참 이상하다. 혹 어떤 대상자의 불미스런 일이 밝혀져 그렇게 됐나?' 생각하며 내려갔는데, 오후에 담당 기자가 전화로 D시의 특수학교 U선생님(여, 42세)이 굳이 상을 받지 않겠다고 하여 12명이 되었다고 설명했습니다. 1000만원의 상금이 나오고 한국문화의 전파 모습을 찾는 일본 연수도 보내주기 때문에 굳이 마다한 이유를 궁금해했더니 그 선생님은 부군과 사별할 때 그렇게 살겠다는 약속을 했기 때문에 사양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설명을 들으며 가슴이 벅차 올랐고 무어라고 해야 할지 모를 감동을 느꼈습니다.

 

특수아를 낳은 부모들은 남다른 애정과 연민을 갖고 일신을 아예 그 자녀에게 바치는 경우가 많지만, 기숙사 생활을 하지 않고 스쿨버스로 등하교하는 경우, 가능하면 아이가 그 버스에 오래 남아 온 동네를 다 돌아다니고 단 10분이라도 늦게 귀가하기를 바라는 부모도 있습니다. 그만큼 지치고 귀찮아졌을 것입니다. 반면, 특수학교 선생님 중에는 그 아이들의 학습지도는 물론 생활까지 보살피며 젊은 나이에 몸이 망가지도록 가르치고 보살피는 그야말로 신성한 교사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정신지체아들은 '오이'를 6개월이나 쳐다보고 썼는데도 방학이 끝난 다음에 보면 '이오'라고 쓰는 아이가 그래도 수준이 낮은 아이는 아니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래도 참고 또 참으며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심사자료를 살펴보았더니 U선생님이 바로 그런 교사였습니다. 꼼꼼하고 자상하게 보듬고 안아주면서도 혹 아이들이 상처를 받을까봐 걱정하는 선생님, 그 아이들이 살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과 용기를 갖게 해주는 선생님, 어느 아이도 편애하지 않고 아이들 하나하나가 가진 장애의 편차에 따라 가르치는 선생님, 신입생이나 전학생이 새로운 환경에 두려움을 갖지 않도록 감싸주고, 어린 나이에 부모와 떨어져 기숙사 생활을 하는 그 외로움을 달래주려고 자신의 집에까지 데려가 함께 지내기도 하는 그런 선생님이었습니다. 학부모들은 이런 U선생님을 '포근한 엄마' '축복' '행운' '천사'라고 부른다는데 그거야 당연한 일이겠지요.

 

오늘날 우리 교육계는 큰상을 받으려고 스스로 공적조서를 써서 제출하는 것이 상례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심사한 대상자들도 거의 모두 본인이 자신을 알리는 글까지 써낸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렇게 하기를 꺼려 가만히 있는 사람은 평생 상을 받기는 틀린 일인지도 모릅니다. U선생님도 그렇게 가만히 있는 분인데, 어느 날 신문사 기자로부터 정말 훌륭한 선생님인지 찾아가서 알아보겠다는 통보를 받고는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그야말로 기가 막히는 일이었겠지요. 그래서 "내가 언제 상을 받겠다고 했느냐? 오지 마라"고 했고, 그래도 찾아간 기자와 현장조사 담당자에게 사진도 찍지 못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한 일을 하나도 이야기해주지 않았답니다. 다만, "이 정도는 특수학교 선생님은 아무나 다 하는 일이므로 내가 상을 받으면 다른 선생님들께 실례가 된다" "내 제자가 자신도 특수학교 교사가 되려고 교생실습을 나왔을 때 큰 보람을 느꼈다"는 말만 해주더랍니다. 서류와 공적조사보고서를 살펴보았더니 과연 그 선생님께서 작성한 것은 하나도 없고 기자의 글과 학부모들이 신문사에 보낸 편지뿐이었습니다. 학부모가 쓴 글에는 이런 부분도 보였습니다. "말도 못 하고 빛도 못 보는 아이를 위해 온몸을 다 바치시는 선생님께 그저 두 손 모으고 머리 숙여 되뇝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부군의 죽음에 이르러 무슨 약속을 어떻게 했는지 모르지만, 제가 보기에 딱 한 명만 고른다면 바로 그 선생님이어야 하는데 정작 그 선생님은 굳이 상을 받지 않겠다고 하여 빠지고, 상을 받겠다고 한 열두 명만 덩그러니 상을 받았으니, 알고 보면 그 열두 명도 전국적으로 알려야 할 훌륭한 분들이 분명하긴 하지만 세상은 참 희한하다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그게 정상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러고 보면, 지난 스승의 날에 문을 닫고 하루를 쉬도록 한 저는 제 아이들에게도, 그 선생님 보기에도 부끄러운 일을 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 선생님이라면 무엇이 무서워서 그 날 아이들이 학교에 오지 않도록 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이튿날 우리 학교 선생님들 회의 시간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제 스승의 날에 받은 꽃다발, 편지, 메시지 등이 빈약한 것을 서글퍼한다면, 우리는 얼마나 초라한 사람이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하는 것이 제대로 가르치는 것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학교장 재량 휴업일'이라는 미명을 빌어 하루를 쉬게 한 제 부끄러움은 숨기고, 또한 제가 가르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에 초조함을 느끼며 그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2007년 5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