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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파란편지 모음 2

'그냥 편안하게 지내다 조용히 갈까…' - 성복동에 사시는 여러분의 노블레

by 답설재 2007. 8. 29.

성복 학부모님께 드리는 파란편지 82

 

 

 

'그냥 편안하게 지내다 조용히 갈까…'

- 성복동에 사시는 여러분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어떤 것입니까? -

 

 

 

망설이다 이 편지를 씁니다. 몇 가지 장면을 주절주절 늘어놓겠습니다. 이해하여 주십시오.


어느 날 아침 교감이 제 방에 오더니 불편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말했습니다. "어느 아주머니가 교정의 솔잎을 따고 있어서 지금 무얼 하느냐고 물었더니, 글쎄, 학교처럼 깨끗한 곳의 솔잎이니 솔잎차 재료로는 그만일 것 같아서 따고 있다고 했습니다." 잠시 의논하여 『학교 소나무에는 농약을 살포했으니 주의하라』는 표지를 붙였습니다. 그 아주머니가 이 편지를 보면 '아, 농약을 뿌리지는 않았구나.' 할까봐 밝혀둡니다. 농약을 살포한 것은 사실입니다.


어느 교사가 운동장 동쪽 벚나무 아래 척박한 땅에 갖가지 씨앗을 뿌려놓더니 가을이 되자 어설프게 보이는 고추 몇 개도 보였습니다. 그런 땅에서도 열매가 달려 익어가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했고, '내 아이들은 이런 걸 보고도 무언가를 배우겠지.' 생각하며 지내는데, 서리 내린 어느 아침나절 한 아주머니가 오더니 그 고추를 다 따버려 제가 다가갔을 땐 이미 앙상한 가지만 남게 되었습니다.


지난해 겨울, 아시다시피 우리는 방학중에도 몇 가지 '특기·적성교육'을 하고 도서실 문도 열었습니다. 그 날 아침에도 학교 건물 뒤로 들어오고 있었는데, 제 앞에 차 한 대가 멈추어 서더니 아이가 내리고 이어서 그 애의 아버지가 대형 쓰레기봉투를 꺼내어 우리 학교 쓰레기통에 집어넣었습니다. 차마 대면하기가 어려워 한참을 기다렸다가 쓰레기통을 들여다보았더니 그건 우리 고장의 쓰레기봉투가 아니었습니다. 그 봉투에 인쇄된 고장에서 이사를 왔을까요? 학교에서도 당연히 쓰레기봉투를 구입하여 씁니다. 저는 자신에게, 그 아이는 내 아이지만, 그 아버지는 내 학부모가 아니라는 설명을 하고 들어왔습니다.


올봄에는 웬일인지 자동차로 등교시키는 학부모들이 많아졌습니다. 때로는 여러 차가 엉키어 그 바쁜 아침에 교문 앞에서 한참을 기다리고 있어야 합니다. 제가 더 바쁠까요, 코앞에서도 차를 몰고 오는 그 학부모들이 더 바쁠까요. 경남의 어느 학교는 자동차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교직원들이 인근 아파트에 주차한답니다. 낮에는 출근하는 사람이 많아서 괜찮고, 저녁 때 교직원들이 그 주차장을 비우면 주민들이 퇴근하므로 상관이 없답니다. 아이들이 가방을 끌고 가는 소리, 참새처럼 재잘거리며 가는 소리조차 딱 귀찮아하는 분들이 많은 우리 동네에서 제가 이런 제안을 한다면 어떻게 받아들여질까요.


얼마 전에는 교육청에서 더러워진 국기를 바꾸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누가 전화를 했더랍니다. 빤히 쳐다볼 수 있는 분이겠지요. 그분은 왜 제게 전화하여 "그런 국기를 달면 교장 체면이 뭐가 됩니까!" 하고 호통을 치지 않고 교육청에 전화를 했을까요? ① 김 교장은 여간해서는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이다. ② 국기는 교육청에서 주는 돈으로 산다. ③ 교직원들은 수준이 낮아서 대화하기가 싫다. ④ 하급기관의 잘못이나 무관심은 상급기관에 알려 따끔한 맛을 보여주는 것이 우리의 전통이다. 이 중에 답이 없다면 어떤 답이 있습니까?
다 털어놓으면 우리가 서먹서먹해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이제 다른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이런 일을 겪으면 힘이 빠집니다. '내가 지금 여기 와서 무얼 하고 있나.' 한심하여 '그냥 편안하게 있다가 조용히 갈까' 싶어집니다. 아무 일 않고 있으면 비난은 적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도 풀잎 같은, 햇병아리 같은, 아지랑이 같은 '이것들'이 한없이 '이뻐서' 눈물나게 사랑스러워서 마음을 돌립니다. 박재삼(1933∼1997)의 시 한 편을 보여드립니다.

 

 

천지무획(天地無劃)

 

나를 하염없이 눈물나게 하는, 풀잎 촉트는 것, 햇병아리 뜰에 노는 것, 아지랑이 하늘 오르는 그런 것들은 호리만치라도 저승을 생각하랴. 그리고 이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아주 이들을 눈물나게 사랑하는 나를 문득 저승에 보내 버리기야 하랴.

그렇다면 이 연연(戀戀)한 상관(相關)은 어느 훗날, 가사(假使) 일러 도도(滔滔)한 강물의, 눈물겨운 햇빛에 반짝이는 사실이 되어도 무방한 것이 아닌가. 얼마 동안은 내 뼈 녹은 목숨 한 조각이, 얼마 동안은 이들의 변모한 목숨 한 조각이, 반짝인다 하여도 좋다. 혹은 나와 이들이 다 함께 반짝인다 하여도 좋다.

그리하여 머언 먼 훗날엔 그러한 반짝이는 사실을 훨씬 넘어선 높은 하늘의, 땅기운 아득한 그런 데서 나와 이들의 기막힌 분신(分身)이, 또는 변모(變貌)가 용하게 함께 되어 이루어진, 구름으로 흐른다 하여도 좋을 일이 아닌가.

 

 

말하자면, 제게는 이러한 제 마음이 - 아니, 제 가슴이 - 주제넘지만 제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입니다. 수준 높다는 성복동, 이 좋은 곳에 사시는, 여러분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어떤 것입니까? 저 같은 사람은, 가르쳐주신다 해도 도저히 짐작도 할 수 없는, 어떤 심오한 것입니까?

 

 

2007년 5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