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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파란편지 모음 2

「아기가 타고 있어요」

by 답설재 2007. 8. 29.

성복 학부모님께 드리는 파란편지 81

 

 

 

「아기가 타고 있어요」

 

 

 

우선 "아기가 타고 있다"는 표지를 붙인 차를 뒤따르기 싫어하고, 굳이 이렇게 꼬집는 자신이 '참 별난 성격'이라는 것도 시인합니다.


"아기가 타고 있어요'를 붙이고 다니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는 것일까요. ① 소중한 내 아기를 태우고 다니는 것이 온 세상 사람들에게 자랑스럽다. ② 나는 지금 아기를 태우고 가니까 조심스럽게 운전하여 내 차와 충돌하거나 경음기를 울리지 않기 바란다. ③ 위의 ①②처럼 생각하여 써 붙였다고 하면 혹 아니꼽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다만, 목숨보다 소중한 내 아기가 이 차에 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면 좋겠다. ④ 아기를 태우고 있어 천천히 가더라도 이해해 달라. ⑤ 기타(그렇게 써 붙이고 다녀본 적이 없는 사람으로서는 짐작할 수 없는 어떤 이유).


그 이유가 대부분 ⑤일 수도 있고 그러면 저는 당연히 '황당한 사람'이겠지만, 아무래도 ①②③ 중에 그 답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④의 경우 그런 차가 천천히 다니는 걸 본 적이 별로 없고 때로는 재주껏 더 빨리 달리는 걸 많이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기가 타고 있어요"만 보면 얼른 차선을 바꾸고 맙니다. 솔직히 말해 그걸 보면서 그분들의 사고(思考)에 간섭받기가 싫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별별 생각을 다합니다. 미안하지만 그 '별별' 생각을 나타내면 다음과 같습니다. '본인에게야 한없이 소중하고 자랑스럽겠지만 굳이 그걸 드러내고 돌아다닐 필요가 있나', '남에게 조심하라고 써 붙이고 다니기보다는 자신이 조심하면 될 것 아닌가', '아기를 태웠거나 아니거나 조심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이고,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인명이 어디 있나', '경음기야 웬만한 곳에서는 본래 울리지 말라는 것 아닌가', '아기 때문에 천천히 다녀야 하겠다면 차라리 "이 차는 천천히 다닙니다"라고 써 붙이면 쉽게 알아차리지 않겠나'……


이런 생각을 하는 저를 제 아내는 아주 못마땅해 합니다. "남이야 뭘 하든 무슨 상관이며, 별 걸 다 문제삼는 당신이 오히려 희한하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별난 인간이라는 걸 다시 한번 자인합니다. 오죽하면, 이 나라의 도로문화가 오죽 어려우면, 그런 표지를 붙이고 다니겠습니까. 그걸 충분히 이해하면서 저는 다른 생각도 합니다. 사실은 그 다른 생각에 골똘하고 그것 때문에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그것은, '왜 "노인이 타고 있어요"라고 써 붙이고 다니는 차는 없을까?'입니다. 노인을 태운 차는 자랑스러울 수 없거나, 노인이 탄 차 주위에서는 경음기를 울려도 좋거나, 불가피하면 더러 충돌할 수도 있거나, 노인이 탄 차에 "노인이 타고 있어요"라고 써 붙이면 분명히 아니꼬운 일이거나, 노인을 태운 차가 천천히 가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거나, 뭐 그렇기 때문일까요? 다른 나라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누가 좀 살펴보셨습니까? 우리는 서양 사람들을 보고 걸핏하면 예의가 없느니, 어른아이 구별이 없느니 하면서 지내지만 그들의 아이들 사랑하는 태도만은 옛날부터 우리보다 뚜렷했으므로 아기를 태우고 다니는 차는 모두들 그렇게 "아기가 타고 있어요"를 써 붙이고 다닐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우리나라는 이제 OECD엔가 WTO엔가 가입한 나라들 중에서 늙은 부모와 함께 지내는 사람의 비율이 제일 낮다는 통계를 본 적이 있습니다. 좀 잘살게 되면 부모보다 자식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일까요? 언제 우리가 이렇게 되고 만 것일까요? 먹고 살 만하니까 드디어 자식이 눈에 보이고, 자식 귀여운 줄도 알게 되고, 외식을 한번 해도 부모 모시고 나가는 집보다 오순도순 자녀들만 데리고 나가는 것이 자연스럽게 되면서 이제 효도니 뭐니 하는 건 다 집어치우게 된 것일까요? 그렇다면 지금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노인이 되면 지금의 노인들보다 더 섭섭한 대접을 받으며 서러운 말년을 보내게 될 건 뻔하지만 우선은 아이가 귀엽기 짝이 없으니 아직은 그런 거야 알 바 없다는 생각을 하는 걸까요?

 

이런 이야기를 하면, "노인이 되면 자식의 봉양을 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나는 실버타운에서 즐겁고 여유롭게 살아갈 태세를 갖추고 있으며, 사실은 나는 노인이 된다 해도 결코 자식에게 의지하지 않고 무슨 일이든 일을 하면서 살아갈 작정이다. 그럴 만한 능력도 갖추고 있다"고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정작 그렇게 살아갈 수 있을지는 지금 쓸쓸하고 섭섭하게 살아가는 노인들에게 물어보고 해야 할 말입니다.


도대체 우리는 어떤 교육을 해야 하는 것일까요? 지금 우리는 이 아이들에게 부모나 노인을 공경해야 한다는 걸 강조합니다. 그러나 제 자식을 소중하게 여기고 귀여워해야 한다는 것은 직접적으로는 별로 가르치지도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 아이들도 성인이 되어 결혼하고 아이가 태어나면 시키지도 않았지만 "아기가 타고 있어요"라고 잘도 써 붙이고 다닐 것이 뻔한데도, 그것을 깊이 생각해보는 사람은 없는 것 같고, 더구나 "노인이 타고 있어요"라고 써 붙이고 다니는 사람은 눈 닦고 봐도 없습니다.

 

그러나 누가 알겠습니까. 만약 늙은 부모가 있다면 "아기가 타고 있어요" 옆에 당장 "노인도 타고 있어요"도 써 붙이고 다니겠다고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희한한 생각 말고 열심히 가르치기나 하면 되겠지요. 다만, 느낌으로는 하고싶은 말이 많아서 길고 긴 이야기를 이렇게 줄입니다.

 

 

2007년 5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