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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파란편지 모음 2

그의 부모님 보십시오, 제가 그 애를 사랑합니다

by 답설재 2007. 8. 29.

성복 학부모님께 드리는 파란편지 78

 

 

 

그의 부모님 보십시오, 제가 그 애를 사랑합니다

 

 

 

입학한 지 며칠 되지 않은 1학년 아이들이 담임을 따라 제 방에 들어왔습니다. 교장은 어디에서 무얼 하는 사람인지 보러 왔겠지요. 저 앞에서 걸어가던 아이가 부딪혀 비뚤어진 물건을 한 여자애가 지나면서 바르게 놓았습니다. 무슨 생각을 하며 그렇게 했을까요? 저는 그 어린것을 사랑합니다.


6학년 남자아이가 계단을 오르고 있습니다. 기가 펄펄 살아 있어야 할 그 애는 풀이 죽었습니다. 머리가 아프고 메스꺼워서 보건실을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이마를 짚어보았더니 뜨겁습니다. 그 이마에 입술을 대어보며, 그런 몸으로 무얼 배운다고 학교에 있는 그 아이에게 미안하였고, 그 순간 내가 그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요즘 1, 2층 간의 계단 청소를 맡은 그 남자애는 4학년입니다. 왜 매일 혼자냐고 물었더니 다른 아이들은 다른 곳을 맡았다고 했습니다. 그 많은 계단을 혼자 맡았나 싶어 며칠 후 또 물었더니 그곳은 자신이 맡은 구역이라는 것을 지난번보다 더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그 애는 대충 하지 않고 차근차근 정성을 다하여 닦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겉으로 보면 남을 위한 일이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자신을 위한 일일 것 같습니다. 언제까지나 정성을 다하여 살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렇게 살아가는 제 아이들을 사랑합니다.


5층까지 올라가서 6학년 교실을 들여다봅니다. 창가의 맨 뒤쪽 아이는 이미 중학생 평균 신장을 초과했을 듯하고 아무래도 '애'라고 하기가 뭣한 소녀입니다. 교과서를 들여다보며 담임의 설명을 경청하고 있습니다. 그 표정이 아주 진지하여 저 모습을 동상으로 만들어 교정에 세웠으면 싶었습니다. 배움에 침잠해 있는 그 모습처럼 아름다운 것이 있겠습니까. 저는 그 소녀를 사랑합니다.


어느 교실에 들렀더니 한 녀석이 칠판 앞에 서 있습니다. '척' 보면 벌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를 보고 좀 당황해하고 부끄러워하는 표정만 봐도 확실합니다. 저는, 남에게 꾸중을 듣는 제 자식 같은 그 아이를 사랑합니다.


지난해 여름 어느 날, 현관에서 1학년 아이를 데리고 들어오는 한 어머님을 만났습니다. 인사를 했더니 "교장선생님이세요? 홈페이지를 보고 전학 왔어요." 하고 다른 이야기도 더 했습니다. J라는 그 아이는 이제 2학년이 되었는데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제 가슴이 '철렁' 하게 하고 무겁게 했던 그 어머님, 그 어머님의 아들을 저는 사랑해야 합니다.


아이들 하나 하나가 저에게는 소중합니다. 8백 여 명이 있는 학교이므로 그래도 사랑스럽지 않은 아이가 있을 것 아니냐, 말썽꾸러기도 있고 부모가 괴팍한 가정의 자녀도 있을 것 아니냐고 하시겠지요. 말썽꾸러기가 없으면 그런 학교를 어떻게 학교라고 하겠습니까? 그러면 우리 교원들이 무얼 하겠습니까? 또, 괴팍한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세상을 무슨 재미로 살겠습니까? 한 명 한 명이 모여 우리 학교가 있으므로 소중하지 않은 아이가 있다면 이 학교는 그야말로 우스운 학교일 것입니다. 심지어 어떤 이는 초등학교 아이들은 시끄럽지 않으냐고 묻습니다. 저는 학교가 '시끄럽다'고 느낀 적은 없습니다. 아주 조용하면 '뭐가 저리 진지할까?' 싶고, 여러 아이들이 제각각 큰 소리를 내면 '무엇 때문에 저렇게들 흥분하였을까?' 싶기는 하지만 단 한번도 '시끄럽구나' 싶거나 "애들 좀 조용하게 하십시오." 한 적은 없습니다.


설령, 그렇지 않은 일이 더러 있다 해도 저는 무조건 이 아이들과 박자를 맞추고 싶습니다. 그래야 '교육'이 될 것 같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학교교육이 형편없다고 비판합니다. 정말로 형편없어서 그런지 아니면 그런 사례가 유행이 되었는지 아이를 아예 다른 나라로 데리고 나가는 부모도 흔합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등 마음 편한 소설을 많이 쓴 - 여러분도 잘 아실 - 그 누님 같은 작가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이런 회의에는 처음이라면서 회의주제가 '독서교육'이라고 해서 참석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회의 결과는 유야무야되고 말았습니다. 어느 대학 교정에서 그분을 다시 만나 커피는 자판기 커피가 제일이라는 이야기도 하고, '우리 교육은 박자가 잘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우리 교육에 대한 비판은, 그 이유는, 학생과 교사와 학부모간에 박자가 맞지 않기 때문인 것 아닐까요? 저는, 우리 교육에서 박자가 이렇게도 맞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학부모가 학교를 믿지 않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학교가 아이들을 '골칫덩어리'로 보기 때문일까요?


혹 살아가는 것이 따분하시면 학교에 와서 이 아이들을 보시고 힘을 내십시오. 살아가는 것이 어려운 분도 이 아이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십시오. 이곳이야말로 이상적인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이들처럼 생활한다면 다 괜찮아질 것입니다. 이곳은 하루 하루가 참 괜찮은 곳입니다. 이 아이들과 함께 있다는 것은 위안입니다.

 

 

2007년 4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