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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파란편지 모음 2

속상했던 토요휴업일 - 그러나 움베르트 에코의 항의를 우려함 -

by 답설재 2007. 8. 29.

성복 학부모님께 드리는 파란편지 77

 

 

 

속상했던 토요휴업일
- 그러나, 움베르트 에토의 항의를 우려함 -

 

 

 

지난해에는 송구스럽게 되었습니다. 토요휴업일이 올 때마다 원망하셨겠지요. 2004년에 이 학교에 와서 보고 '이게 아닌데…' 싶어서 2005년도에는 "하나의 주제를 장기간 탐구하는 토요휴업일이 되면 좋겠다."고 해서 좀 그 방향으로 가는 듯하더니, 2006년도에는 또 2004년도의 방식으로 회귀하여 토요휴업일마다 계획서를 받고 월요일만 되면 보고서를 받았으니 그 짜증이 오죽했겠습니까. 그리하여 지난해 말 우리 홈페이지의 온라인 평가를 보았더니 "노는 토요일이면 그냥 놀게 하라." "토요일이 다가올까 봐 오히려 겁이 날 지경이다." "토요일에는 놀고 일요일에 체험학습을 한 경우 그 체험을 토요일에 했다고 보고하는 것조차 거짓말 같아서 망설여졌다." 등등 신랄한 비판을 한 분이 한두 분이 아니어서 제 귀에는 "무슨 교육을 이 따위로 하나!"라는 비난이 그대로 들리는 듯하였습니다.


저도 형식적이고 무익한 교육은 절대로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그 비난들을 읽은 지난 겨울이 지루하였고, 얼른 새 학년도가 되어 제대로 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올해는 어떻습니까? 1·2학년은 담임이 지정한 공책에 한 일을 그대로 적고, 3학년 이상은 연초에 정한 탐구주제에 따라 올 한 해 그 주제를 연구하게 하였습니다. 물론 토요휴업일만 되면 그 주제만 연구하자는 것도 아닙니다. 지내다보면 때로는 다른 공부를 할 수도 있습니다. 무조건 데리고 나가야 하는 것도 아니고 도서관을 찾든지 인터넷을 뒤지든지 집에서 책을 읽든지 연구 형태도 다양할 것입니다. 담임이 무얼 했는가 보자고 하면 그대로 보고하며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할 경우에도 걱정거리는 있습니다. 어른들도 연간 과제라면 우선 놀고 보자는 의식을 가지고 있을 텐데, 과연 우리 아이들이 계획적으로 차근차근 그 주제를 연구해나갈까, 하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담임이나 부모님께서는 아이들이 탐구주제를 제대로 설정하는지, 그 주제탐구의 연간활동계획을 제대로 수립하는지, 그 계획에 따라 제대로 연구해나가는지 자주 살펴보고 지도해주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 아이들이 써야 할 보고서를 '논문'이라 하고 다음 글을 읽어보십시오.

 

"논문을 쓴다는 것은 스스로 즐거움을 얻는다는 뜻입니다. 모든 일은 재미있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약 우리 아이들이 관심 있는 테마를 선택했다면, 또 그 테마의 탐구에 정말로 몰두하기로 결정했다면, 그 아이는 논문을 하나의 놀이, 하나의 내기, 하나의 보물찾기로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찾기 어려운 자료를 찾는 과정에서는 스포츠와 같은 만족감을 느끼고, 오랜 숙고 끝에 불가능해 보이던 문제의 해결책을 발견하는 과정에서는 수수께끼 놀이를 했을 때와 같은 만족감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아이들은 논문을 하나의 도전으로서 체험해야 합니다. 아직 해답을 찾지 못한 하나의 질문을 제기했으므로 수많은 활동 안에서 해결의 길을 찾아야 합니다. 때로는 논문 쓰기를 우리 아이들과 그 주제간의 시합으로 체험할 수도 있습니다. 아이들이 설정한 과제는 그 비밀을 보이려 하지 않고, 우리 아이들은 그 비밀을 캐내야 합니다. 때로는 외로운 작업이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모든 조각들을 갖고는 있지만, 그 조각들을 잘 정리하여 제자리에 맞추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스포츠처럼 즐겁게 연구한다면, 훌륭한 논문을 작성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중요하지 않은 공부라고 생각하고 관심도 없다면, 그 아이는 이미 출발점에서 패배한 셈입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부모님께서 대신 써주고 아이는 그것을 베끼게 하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아이가 한번만 괴롭게 하는 것이 오히려 나을 것입니다.


만약 논문을 재미있게 쓴다면, 그 아이는 또 연구하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소홀히 했던 부분들을 깊이 연구해 보고 싶고, 머릿속에 떠오르기는 했는데 탐구하지 못한 생각들을 뒤쫓아 보고 싶고, 다른 책들을 더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 것입니다. 그러면 된 것입니다. 교사로서, 부모로서의 우리의 소임은 끝난 것입니다. 논문은 대학에서 학위를 얻기 위한 수단만은 아니며, 승진을 하거나 부모를 만족시키기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논문을 쓰는 것은, 앞으로는 훌륭한 모든 전문 직업인이 평생 관심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지식중심사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의 아이들이 논문을 재미있게, 진지하게 썼다면, 언젠가 그 논문을 다시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그 글을 쓴 것이 계기가 되어 그 글과 관계 깊은 대학을 가고 그 글과 관계 깊은 직업을 가지거나 그 글과 관계 깊은 취미·여가 활동을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 이유는 마치 첫사랑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처음 써본 논문을 잊기가 어렵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결론적으로 논문을 쓰는 일은 결코 간단한 경험이 아닙니다."

 

논문 쓰기에 대한 이 생각이 어떻습니까? 사실대로 밝혀야 하겠지요. 이 글은, 저 유명한 소설 『장미의 이름』을 쓴 움베르트 에코의 저서 『논문을 잘 쓰는 방법』(김운찬 옮김, 열린책들, 2006 ; 초판은 1994년)의 결론 부분을 제 마음대로 고쳐 쓴 것입니다. 뜻이 왜곡되었다면 에코와 옮긴이 등에게 참 미안한 일이 되었지만 우리 아이들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끝까지 변명을 늘어놓을 작정입니다.

 

 

2007년 4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