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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파란편지 모음 2

가르치고 배우는 길에 王道가 있을까요?

by 답설재 2007. 8. 29.

성복 학부모님께 드리는 파란편지 74

 

 

 

가르치고 배우는 길에 王道가 있을까요?

 

 

 

모 신문사에서 거실을 서재로 바꾸어주는 운동을 전개하자 신청하는 가정이 속출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텔레비전이 거실과 가정을 점령해버려서 가족들이 책을 읽기는커녕 대화조차 사라진 현실을 인정한다면 독서를 하자는 그 캠페인의 기본취지 이전에 '가정복구운동'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 기사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우리 국민의 독서 수준이 오죽해서 그런 아이디어가 나왔겠습니까만, 그렇게 하여 가족들이 모였다 하면 각자 한 권씩 책을 들고 묵묵히 독서에 빠져 있으면 그 모습은 괜찮겠습니까? 쓴웃음을 지은 개인적인 이야기도 하고 싶습니다. 장서라고 할 것도 없이 겨우 몇 천 권의 책도 보관할 수 없어 애써 모은 책들을 수도 없이 내다버렸고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기증이라는 이름으로 실어다준 책도 부지기수였는데, 제게 무슨 서재 같은 것이 있을 수 없으므로 아직도 남아 있는 책들은 어쩔 수 없어 소파 같은 것들을 내다버린 거실의 그 자리에 몇 개의 초라한 책장을 남겨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쓸데없는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 그렇게 하여 남겨둔 책 중에는 아직 읽어보지 않은 것들도 더러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책입니다. 『가르치는 방법에도 王道가 있다』(김대수, 우진, 2000). 어떻습니까. 눈이 번쩍 뜨이는 제목이어서 '지금은 비록 정신없이 살아가지만 언젠가 시간을 내어 꼭 읽어야겠다'는 미련으로 남겨둘 만하지 않습니까. 그러고 보면 책도 이름을 잘 지어야 읽히고 살아남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요즘 잘 팔리는 책들 중에는 '  하는 100가지' 혹은 '101가지'나 '죽기 전에 해야 하는' '가보아야 하는'으로 시작되는 책, '성공하는 사람들의' '하룻밤에 읽는'으로 시작되는 제목을 붙인 책들이 많고, 이제는 그런 제목이 식상하지만 그래도 더 잘 팔리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가르치는 방법에 왕도가 있다! '왕도'라 하면 어떤 것입니까. 국어사전에는 '어떤 어려운 일을 하기 위한 쉬운 방법'이라고 나와 있지만, 저의 선입관으로는 단기간에 큰 효과를 거두는 방법, 혹은 비법(秘法) 같은 것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요즘 각 일간신문의 교육에 관한 부록을 일별(一瞥)해도 거의 무슨 특별한 방법이나 비법을 소개하는 것 같은 제목을 붙여서 '모름지기 부모는 자녀를 이렇게 저렇게 간섭해야 한다' '모든 아이, 모든 공부에는 다 별도의 방법이 있어야 한다' '아이를 공부로써 성공시키려면 학교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 '이렇게 저렇게 하지 않으면 외고, 과학고 같은 특수목적고등학교도 못 보내고 아이 망치고 만다'는 것처럼 보이고 있습니다. 그 누구도 학교교육만으로 완벽하다고 주장할 수는 없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그러한 기사들은 학교교육을 너무 경시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한걸음 더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저는 최근 예의 그 책을 읽고 우리 학교 선생님들께 그 왕도(비법)를 알려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선 머리말을 읽어보았더니 가르치는 방법에 왕도가 있을 뿐 아니라 '배우는 방법에도 왕도가 있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금상첨화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차례를 보고 이내 '실망'하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우리 교원들이 대학교나 대학원에서 들은 강의 내용, 혹은 교수법을 설명한 수많은 교육학 도서 중의 한 권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대충 옮겨보면, '왜 가르치고 배우는가' '무엇을 가르치고 배우는가' '어떻게 가르치고 배우는가' '주의를 집중시키는 기술' '발문을 잘 하는 기술' '자료를 활용하는 기술' '평가를 잘 하는 기술' 그리고 '잘 가르치는 선생과 잘 배우는 학생이란?' 등입니다. 혹 거기에 비법이 있는가 싶은 분을 위해 '잘 배우는 학생'의 내용을 보면 '개념은 다른 것과 구별할 수 있는 그림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배워라' '사실·현상·원리·법칙은 나의 생각을 예상으로 세워 두고, 그것이 맞는지 틀리는지 실험, 관찰, 조사 등으로 증거를 찾아서 발견해라' '문제를 풀려거든 푸는 방법과 푸는 데 쓰이는 개념, 원리를 생각해 내어라' '운동, 노래, 악기 다루기 등은 연습을 많이 할수록 좋다' '무엇을 만든다면 먼저 목적을 생각하고 남과 다른 독창적인 작품을 만든다는 자존심을 키워라' '내가 옳다고 생각하지 말고 항상 남이 나의 잘못을 말해주면 "고맙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강조한 것이 자기 주도적 학습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떻습니까. 비법이 될 만합니까? 우리 학교 선생님들이라면 아마 "그래, 맞아. 그렇지만 그건 비법이라기보다는 너무도 당연한 거잖아."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내용들은 '왕도'가 아니므로 저자는 자신의 책을 많이 팔고 싶어서 제목으로 우리를 속인 걸까요? 저는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공부에는 별도의 왕도가 없고 정석대로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바로 그 왕도임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다만, 자율적인 아이는 학교와 학원에서 하루 종일 강의를 듣는 것보다 혼자서 공부하는 시간이 많을수록 더 효과적일 것이 분명한 것처럼 모든 아이들은 각각 개별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을 뿐이며, 우리가 그 특성을 파악하여 잘 도와주는 것이 바로 그 왕도를 인정하는 것이겠지요. 오늘도 우리 선생님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왕도에서 우리의 아이들을 만나고 있을 것입니다.

 

 

2007년 3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