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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파란편지 모음 2

졸업생들의 부모님께 - 제대로 공부할 수 있게 도와줍시다 -

by 답설재 2007. 8. 29.

성복 학부모님께 드리는 파란편지 71

 

 

 

졸업생들의 부모님께

- 제대로 공부할 수 있게 도와줍시다 -

 

 

 

 

졸업식을 마친 아이들이 다 돌아간 조용한 이 교정에 늦겨울 햇빛이 찬란합니다. 그 아이들의 앞날이 이 햇빛처럼 찬란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지금쯤 초등학교 시절의 갖가지 추억이 담긴 앨범을 넘겨보기도 하겠지요. 우리 학교 졸업생들의 앨범은 다른 학교와 달리 한 페이지 가득한 교장 사진이 없는 대신 아이들 사진은 풍부한, 선생님들이 디카로 찍어 직접 편집한 앨범입니다. 오늘의 졸업식 촌평을 들어보았더니 '색다르고 뜻깊어 지켜볼 만' 했답니다.

지난 초겨울, 우리 선생님들께 2006학년도 10대 뉴스가 될만한 일을 열거해보라고 했더니 입학식, 성복샛별축제, 특기적성발표회, 교육과정운영보고, 현장체험학습, 학부모도우미활동, 직원회의 개선, 학년별 체육대회, 이 '파란편지', 교육과정 편성을 위한 워크숍, 한국교육과정학회와 공동 세미나 개최, 행사 때마다 아이들이 만드는 포스터나 보고서, 영어말하기대회, 등하교길 문제 등을 들었는데, 저는 이 목록에 오늘의 졸업식도 넣고 싶습니다.

 

우리는 그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이 시간 저는 여러 가지 미흡했던 점이 떠올라 안타깝기도 합니다. 가령, 「나의 사랑 나의 부모님」이라는 이름의 문집만 해도 그렇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게 되었으므로 부모님의 진심과 사랑을 이때 깊이 있게 인식해두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글을 쓰게 했지만, 그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서 아이들이 더 멋진 글을 쓸 수 있는데도 혹 살아오신 길에 있었던 구차한 이야기의 공개에 대해 - 그것이 오히려 값진 이야기일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 의구심을 나타낸 분도 계셨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기회에 무수한 활동들을 전개하면서 우리 아이들이 제대로 학습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를 경험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이것은 창의력을 요구하는 활동이다", "이 활동에는 깊은 사고와 협력이 필요하다" 하고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하나하나의 일들이 그들의 머릿속에, 가슴속에 하나의 분명한 형상을 남기기를 기대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졸업을 하루 앞둔 어제는 다음과 같은 신문기사를 보았습니다(조선일보, 2007. 2. 14. '헉! 이게 13살 소년의 말이라고?').

 

도무지 열세 살 소년의 말로 들리지 않았다. "빅뱅이 일어나기 바로 직전의 인피니테시멀(infinitesimal : 無限小) 세계와 20세기 히틀러 독재 시절 이야기를 '크로스 커팅(교차 편집)' 작법을 이용해서 써봤어요. '인피니테시멀'은 10㎝만큼 작고, 10초만큼 짧은 세계예요." 경기도 시흥시 은행초등학교 6학년 김활(13)군. 김군은 지난해 12월, '빅뱅의 비밀'이라는 장편 판타지 소설을 출간했다. 그냥 판타지가 아니라 과학·수학·역사가 골고루 버무려진 '퓨전 판타지'다. "스티븐 호킹 박사가 집대성한 '빅뱅(우주를 탄생시킨 대폭발) 이론' 중에서 우주가 팽창과 수축을 반복한다는 연속설이 있어요. 우주가 무한히 작은 점으로 수축됐다가 갑자기 '뻥' 하고 터져서 우주가 만들어졌다는 건데 '왜 머물러 있지 않고 폭발했는지'가 궁금했어요."(중략) 이 어린 학생의 해박함과 상상력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아버지 김광식(43)씨는 "활이에게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시간을 준 게 전부"라고 말한다. 김군은 특별한 과외 수업을 받은 적이 없다. 자유시간을 '독서'와 '놀이'로 보냈다.(후략)

 

저는 이 기사를 읽고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아이들 중에는 이와 같은 소질과 적성을 지닌 아이가 수없이 많다. 그럼에도 우리 아이들은 허구한 날 무엇이 그리 분주한지 학교를 마치기가 무섭게 어디론지 사라지고 없으니 도대체 여유라는 걸 누릴 수 없는 세월을 보낸다.'

 

졸업을 시켰지만 마지막으로 호소합니다. "제대로 공부하는 아이는 밤낮 없이 학교와 학원에 얽매이지 않고 많은 시간을 스스로 혼자 공부하는 아이입니다. 성공적인 교육은 학교와 학원에서 남과 같은 공부를 하여 남과 같은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만의 적성과 소질, 그 아이만의 개성을 충분히 발휘하게 하는 것입니다."

 

학교 홈페이지의 '교장 인사말'인 <이런 사람>을 한번 더 소개합니다.

 

사랑하는, 내가 사랑하는 성복 어린이는, 무턱대고 읽거나 무턱대고 외우기보다는 왜 그런지, 왜 그 답이 나오는지를 생각하는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 남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이 잘못 생각했던 것을 인정하는 사람, 그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생각보다 나으면 그 사람의 생각이 훌륭하다는 것을 인정해주는 사람, 넘어진 친구를 보고 혼자 달려나가기보다는 돌아서서 그 친구를 일으켜 세워 함께 달려가는 사람, 혼자 하는 일보다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일을 더 잘하고 즐거워하는 사람, 실패해도 우울해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툴툴 털고 일어나는 사람, 덤벙대지 않고 자세히 살펴보고 생각하는 사람, 막무가내로 돌진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되는지 생각하는 사람, 책을 읽고 잘 감동하는 사람, 그것을 남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어하는 사람,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생각나는 사람, 아무리 어려운 일도 폭넓고 깊이 있게 검토하여 해결하는 길을 찾아내는 사람, 그래서 지금은 무얼 하는지 남들이 늘 궁금해하는 사람, 어려운 이야기도 척척 이해하는 사람, 어려운 책도 줄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런 운동선수, 그런 음악가, 그런 사업가, 그런 의사, 그런 변호사, 그런 무엇이 되십시오. 하는 일이 무엇이든 남에게 인정받는 사람, 그 일을, 집요한 노력으로 남달리 해내어 그 분야에서는 드디어 최고인 사람, 그 일로써 남에게 감동을 주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래서 훌륭한 사람이라며 텔레비전과 신문에 자꾸 나오고 "와, 성복동에서 큰 인물이 나왔네." 하고 온 동네 사람들과 선생님들, 아이들이 모두 자랑스러워하게 하십시오.

그날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그날 밤 우리 강당이나 운동장에 불을 밝히고 큰 잔치를 열어봅시다.

 

 

2007년 2월 15일

 

                                                                                                            교장 ○○○(mahngon@hanmail.net)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