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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파란편지 모음 2

우리 학교 신입생 학부모님께 - 우리가 그 마음 가까이 가지 않거든 -

by 답설재 2007. 8. 29.

성복 학부모님께 드리는 파란편지 72

 

 

 

우리 학교 신입생 학부모님께

- 우리가 그 마음 가까이 가지 않거든 -

 

 

 

귀엽고 예쁘기만 한 자녀가 이만큼 자라서 드디어 우리 성복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된 것을 축하합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 결혼하고 아이를 둔 보람을 새삼스레 느끼고 계실지도 모르겠군요. 또한 즐겁고 기쁜 한편 '이 아이가 선생님 말씀에 잘 따르고 제대로 적응해 나갈지' 불안하고 초조하여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하겠지요. 지난 2월 9일, 학교에서 '신입생 학부모 오리엔테이션'을 했지만 그 초조함이나 의구심이 일소된 것은 아니겠지요.

 

요즘은 집집이 자녀를 거의 한둘만 두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학교에 들어와 '나 같은 아이들이 많구나!' 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어울려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도 깨달아가고, 그 즐거움도 발견할 것입니다. 어울려 살아가는 것은 즐겁기만 한 것이 아니므로 어려움도 느끼고 이해와 설득의 필요성도 배울 것입니다. 무엇보다 친구들이 지닌 가치를 발견해가면서 나만 중요한 것이 아니고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중요하여 세상에는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것도 알게 되고 남에 대한 배려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갈 것입니다.

 

아이들은 내가 하는 일, 내가 하는 행동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으며 심지어 나에게 무관심한 사람도 있다는 것도 배우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서 남이 싫어하는 행동을 하지 않으려 하고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은 좋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아이들은 '나에게도 잘하는 일이 있구나' '내가 잘 못하는 것도 있구나' '모두들 그렇구나' '그래서 학교에 와서 공부를 하는구나' 하고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서 때로는 자신감을 나타내기도 하고 때로는 주저하면서 당면한 과제들을 해결하려면 깊이 있는 사고력과 남다른 창의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을 체득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다양한 교육활동을 제공하여 아이들이 생생한 경험을 통하여 그러한 깨달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아이들은 '공부는 이렇게 하는구나' '함께하는 공부는 더 재미있구나' 하고 학교에 다니는 의미를 찾아갈 것입니다. 학교에서 하는 공부는 집에서 '학습지'를 푸는 단순한 일보다는 더 폭넓고 깊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며, 선생님과 함께하는 공부는 교과서에만 얽매이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학교와 가정은 물론, 우리 동네, 우리나라,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우리가 배워야 하는 대상이 되며, 그리하여 이 세상은 그야말로 '정보의 바다, 지식의 바다'라는 것을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아이들의 단 하루의 학습결과에 일희일비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바른 길을 가고 있는지, 제대로 살펴보는 일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1학년 학부모님 여러분.

우리가 사랑하는 이 아이들은 이렇게 생활하면서 때로는 울기도 하고 짜증을 내기고 하고 당황하기도 하고 심지어 더러는 다치기도 하고 때로는 우리가 기대한 방향이 아니라 다른 길을 헤매기도 할 것입니다. 그들은 인큐베이터 안에서 생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무조건 따라오라거나 감싸주기만 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는 것이 그들을 제대로 도와주는 것인지 잘 판단해야 합니다. 자칫하면 사랑하는 그 자녀가 가는 길을 방해하기가 쉽습니다. 무조건 감싸주는 것이 사랑인 줄 착각하기가 쉽습니다. 우리는 그저 그들에게 필요한 환경을 제공해주는 일에 힘써야 하며, 그들이 할 일, 공부할 일, 놀아야 할 일이 있는데도 무조건 교과서나 문제집 속으로 밀어 넣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에만 드는 아이는 여러분만큼만 훌륭해지고 여러분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는 내 자녀만 소중한 것이 아니고 이 아이들 하나하나가 다 소중하고 귀엽고 예쁘다는 것부터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짐승도 제 새끼는 다 소중하게 취급하고 귀여워하고 예뻐하기 때문이며, 우리보다 형편없이 생활하는 사람들에게도 그 자녀는 다 소중하고 귀엽고 예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전업주부이신 분들을 중심으로 하는 여러 가지 도우미 활동을 잘 이해하셔야 합니다. 직장을 가지신 분들은 학교에 단 한번도 오시기가 어려우므로 이러한 활동에 의구심을 나타내며 심지어 학부모들의 도우미 활동을 지양해 달라는 부탁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불안해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오히려 학교에 와서 도우미 활동을 하시는 그분들에게 고마워하고 미안해하면 그만입니다. 그분들이 제 자식만 챙기고 직장을 가지신 분들의 자녀를 차별하도록 그냥 둘만큼 우리 선생님들이 유치하거나 치사하지는 않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아니, 그 도우미들도 그 활동을 할 때만큼은 어엿한 명예교사로서의 자부심을 가진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우리의 자녀들이 갈 길은 너무나 멀어서 아득한 길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은 우리가 낳았지만 우리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더구나 인격과 인품은 성형수술 같은 것으로 단번에 형성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지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야 하며, 초조해하거나 불안해하지 말고 여유롭게 바라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한 마음으로 오는 3월 2일 입학식날 아이들과 함께 희망과 기대의 풍선을 저 하늘 높이 날려봅시다. 학부모 여러분과 교직원들의 한결같은 그 마음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므로, 때로 우리가 학부모님의 그 마음 곁으로 다가가지 않거든 언제든 여러분이 우리의 곁으로 다가와서 그 마음을 일깨워주십시오.

 

 

2007년 2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