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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파란편지 모음 2

어떻게 해야 논술을 잘 하게 할 수 있을까요 ⑶ - 논술을 잘 가르치는 비법

by 답설재 2007. 8. 29.

성복 학부모님께 드리는 파란편지 59

 

 


어떻게 해야 논술을 잘 하게 할 수 있을까요 ⑶
- 논술을 잘 가르치는 비법 -

 

 

 

요즘 태권도 학원에서도 논술을 가르친답니다. 그래야 학원이 유지되겠지요. 논술학원이 번창하게 된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한때 한글, 영어 쓰기를 가르치지 않는 유치원은 견디기 어려웠는데 지금쯤 어느 유치원에서는 새로 논술을 가르치기 시작했을 것 같고, 가령 속셈학원도 옹알옹알 속셈만 가르치면 당장 문을 닫아야 할 운명에 처하는 때도 있었으므로 그런 곳에서도 논술을 가르치기 시작했을지도 모릅니다. 논술 관련 서적이 봇물 터진 듯 쏟아져 나오고 있으며, 서둘러 준비중인 출판사도 수두룩하답니다.


학원과 출판사들의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구체적으로는 할말이 많지만, 한마디로 말하면 그러한 경향은 당연한 일이고 학생들로 보아도 크게 해로울 것은 없을 것 같습니다. 문제집을 펴놓고 선다형이나 단답형 문제를 풀기보다는 그래도 논술학습이 더 낫고, '죽어라' 하고 문제집을 풀기보다는 논술 관련 도서를 읽는 것이 조금은 더 낫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하여 이른바 '콩나물교실' 시대의 선다형·단답형 시대가 끝난다면 그 또한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이겠습니까. 어쨌든, 이제 시작이며, 이 움직임이 한때의 '바람'으로 끝날 것 같지는 않다는 느낌을 갖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논술을 잘 가르칠 수밖에 없습니다. 논술을 '잘 가르친다'는 것은 체계적으로 가르친다는 말이 될 것입니다. 그럼 '체계적으로 가르친다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국어'나 '수학' '영어'처럼 저학년 때부터 일정한 계획아래 차근차근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 계획을 우리는 '교육과정'이라고 부릅니다. 말하자면 논술도 교육과정에 따라 가르쳐야 체계적으로 가르칠 수 있다는 뜻입니다. 프랑스에서는 유치원 때부터 논술을 가르치는데, 가령 자신이 아끼는 물건을 가지고 와서 그 이유를 설명하고 다른 어린이들과 대담을 가지는 식입니다. 무턱대고 당장 무엇을 쓰기 시작하는 것은 아니지요.


논술을 잘 할 수 있는 비법을 찾기 위하여 현재 거론되고 있는 것들을 살펴보면 한심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선, 논술을 제대로 가르치지는 않고 이미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버린 학생들이 당장 논술을 잘 하게 하는 방법을 찾는 경향입니다. 그러한 사고방식으로 대책을 수립하고자 하니 부작용이 드러나고 여러 가지 주장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다음으로, 논술을 이른바 '글짓기' 정도로 생각하여 국어학습으로 치부하는 경향입니다. 논술은 국어 시간에, 또는 국어 교사가 잘 가르칠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생각입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통합교과 논술'이라는 이상한 말이 나오고 그런 것은 못 가르치겠다는 불평도 나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논술은 종합적인 사고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모든 교과에서 그 기초가 마련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또, "어느 대학 논술 문제는 대학 교수인 나도 못 풀겠다"는 말도 나옵니다. 그렇다면 대학 교수는 초등학교 교과서의 문제는 다 풀어야 하고, 초등학교 교사는 아무나 할 수 있다는 뜻입니까? 그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으므로 우리나라는 유치원이나 초등 교사의 전문성은 인정하지 않고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서 일어나는 일도 무턱대고 대학교수에게 물어보는 일이 흔하게 벌어집니다. 이제 논술을 잘 할 수 있게 하는 비법에 대한 결론을 말하면, 저학년 때부터 차근차근 가르치고 배우는 것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아이의 글 한 편 보시겠습니까? '논술'이라는 말도 거창한 것 같고, 국어학습으로 오인할까봐 '글짓기'라는 말도 싫어서 '긴글쓰기'라는 이름으로 쓴 글입니다. 최우수작은 홈페이지에 실려 있으니까 우수작 중 한 편을 골랐습니다.

 

 

되돌아올 수 없는 시간 (6학년 이성민)

 

이 세상에서 나는 시간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시간은 한번 흘러가면 강물처럼 다시 흘러올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2006년 10월 27일 금요일 1시 24분 37초의 시간은 다시 올 수 없다. 시계의 분침, 초침, 시침은 같은 자리를 맴돌기는 하지만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시간이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제껏 살아오면서 시간 약속을 모두 지키지는 않았다. 물론 모든 사람은 시간을 한번도 안 지킨 적은 없을 것이다.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난 순간부터 나는 시간과 동반자가 되는 것이다. 시간 약속 한번쯤이야 늦어도 되겠지 해서 매일 10분씩 늦는다면 그 10분이 1년이면 3650분이 되는 것이다. 그 3650분을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보내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후회라는 것을 하게 된다. 후회는 시간을 유용히 쓰지 않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것이다. 나는 살아오면서 후회를 한 적이 많다. '10분이라도 더 공부할 걸' 이라는 생각을,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해서는 시간을 유용히 쓸 줄 알아야 한다. 시간을 유용히 쓸 줄 아는 사람은 이미 성공한 것이다. 나에게 주어진 무엇을 유용하게, 효과 있게 사용한다면 이미 그것은 내 것이 되는 것이다. 먼저 유용히 시간을 쓰기 위해서는 계획을 세워서 일을 실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이다.
앞으로 시간을 유용히 쓰고 후회할 일을 만들지 않으려면 계획을 세워 일을 실천하자. 시간은 이미 가버리면 다시 돌아올 수 없다. 그 시간이 정녕 0.1초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이 작품을 소개하면서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다닐 알렉산드로비치 그라닌, 이상원·조금선 옮김, 황소자리, 2004)란 책이 생각났습니다. '시간을 이해하고, 시간을 사랑했으며 그 시간 속에서 인생 최고의 가치를 구현했던 한 과학자의 이야기'.

 

 

2006년 11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