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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파란편지 모음 2

일본의 역사왜곡 - '요코 이야기'의 경우

by 답설재 2007. 8. 29.

성복 학부모님께 드리는 파란편지 67

 

 

 

일본의 역사왜곡

- '요코 이야기(So Far From The Bamboo Grove)'의 경우 -

 

 

 

한 일본인 여성이 쓴 글이 미국의 여러 중학교에서 교재로 사용되고 있는데, 그 글은 1945년 일제 패망 이후, 한국인들이 귀국하는 일본인 여성들을 성폭행하는 등 온갖 폭력을 자행한 것으로 그리고 있으며 주로 우리나라와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크게 왜곡하면서 일제의 만행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어서 뉴욕과 보스턴, 로스앤젤레스의 한국계 학부모, 학생들이 분노하고 있답니다(조선일보 2007. 1. 18 및 1. 13 관련 기사 종합).

 

그 작품 '대나무 숲에서 너무나 멀리 멀리 떨어진'(So Far From The Bamboo Grove)은 일제 말기인 1945년 7월말, 함경북도 나남(청진)에 살던 일제 고관의 딸 요코 가와시마 왓킨스가 어머니, 언니와 함께 한국을 빠져나가 일본에 도착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렸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요코 이야기'로 출간되었답니다. 당시 11세였던 요코는 나남에서 기차를 타고 원산 이남까지 내려오고 미군의 폭격으로 기차가 부서진 뒤 걸어서 서울에 도착하여 부산을 거쳐 일본으로 귀국했는데, 한국인들의 무자비한 추적을 피하면서 일본인들이 살해되고 강간되는 것을 목격했다고 적었답니다. 이 책은 대부분의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여 일본이 열강의 각축 대상이던 한국을 가쓰라-태프트 조약(1905) 등을 통해 정당하게 점령한 것으로 기술했고, 1945년 7월말에는 미군이 북한 지역을 폭격한 적도 없으며 우리나라의 광복 이후인 9월 초 미군이 진주하기 전까지 일본이 무장해제하지 않아서 대낮에 일본인 여성들이 강간당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랍니다.

 

요코에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도대체 왜 우리나라에 와 살았으며, 당신의 아버지는 어떻게 하여 남의 나라에서 고관으로 지냈는가?" 그러나 이러한 물음은 논리적이지 않을 수 있으며, 흥분된 상태에서의 보복적인 질문이 될 수도 있어서 둘이 붙어 설전을 벌이게 될 것이고, 물론 그 설전 과정에서 저는 일본인들의 저 무자비한 폭력(예를 들면 수많은 고문, 살인, 생체실험, 위안부 동원, 약탈, 강제노동 등)과 심지어 세상에서 가장 악랄한 형태의 식민지 정책으로 불리는 창씨개명, 언어정책까지도 일일이 열거하며 고함을 지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다가 저는 결국 요코로부터 이런 대답을 들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누가 약한 나라에 태어나라고 했나!"

 

결론은 이것입니다. 우리는 일본의 만행을 잊지 말아야 하며, 그러나 기억만 하는 것이 최선이 아니므로 우리 아이들에게 잘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또 그 소리냐 할 분도 계시겠지만 일본인들은 사실대로도 가르치지 않고 참 교묘한 방법으로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오 마쓰무라라는 일본인 소학교 5학년 학생이 쓴 글을 한번 보십시오(힐데가르트 하브리크 편, 정승일·김만곤 역, 『지구촌 어린이들이 본 세상』, 대한교과서주식회사, 1992).

 

…(전략…) 우리는 원자폭탄이 떨어진 히로시마시 중심지의 평화공원과 평화기념관으로 갔습니다. 공원의 작은 돔 모양의 건물 안에는 평화의 불이 타오르고 있었고, 광장에는 비둘기(평화의 사자)가 떼지어 몰려들고 있었습니다. 기념비에는 "편안히 잠드소서! 잘못은 다시 되풀이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조금 걸어서 강변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안내원의 설명을 들으니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던 내 마음은 곧 슬픔으로 흐려지고 말았습니다. 원자폭탄이 떨어지자 그 열로 불이 붙은 사람들이 강으로 뛰어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강물도 뜨거워져서 수만 명의 사람들은 그대로 죽었다고 합니다. 그곳이 바로 우리가 서서 바라보던 바로 그 강이었습니다.

우리는 원자폭탄의 무서움을 평화기념관을 둘러보고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불에 타서 갈갈이 찢어진 옷, 불탄 벽돌, 뒤틀린 맥주병, 추한 모양으로 죽은 사람들, 깨어지고 무너진 콘크리트 건물 사진이 있었습니다. 단 하나의 폭탄으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고, 화상을 입고, 백혈병으로 고통 받았다는 것을 알고 나는 너무도 놀랐습니다. 화상을 입은 사람들의 그러한 모습을 전에는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 모습은 우리들의 보통 부상이나 화상에 비해 훨씬 끔찍하였습니다.

나는 그 사진 속의 사람들처럼 내가 그러한 비참한 재난에 빠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쳤습니다.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는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그 당시에 태어나셨습니다. 나는 원자폭탄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는 전쟁이 싫습니다. …(후략)…

 

일본인들은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들의 조상들이 어떠한 잘못을 저질렀는지는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히로시마 평화공원이라는 곳의 기념비를 이렇게 고쳐 쓰도록 권하고 싶습니다. "그러기에 남의 나라를 침략하지 말자. 이것을 잊어버리면 남을 괴롭히게 될 뿐만 아니라 우리도 괴롭게 된다. 원자폭탄이 공연히 떨어진 것이 아님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들이 제 권유를 받아들이겠습니까. 다만, 우리가 교육을 통해 우리나라를 강한 나라로 만들어야 그것이 가능하게 될 것입니다.

 

 

2007년 1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