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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파란편지 모음 2

‘왜 교장으로 살아가는가’ 물으시면

by 답설재 2007. 8. 29.

성복 학부모님께 드리는 파란편지 66

 

 

 

'왜 교장으로 살아가는가' 물으시면

 

 

 

방학을 한지 열흘쯤 지났으므로 아이들이 가정에서 지내는 것에 익숙해졌겠습니다. 계획대로 생활하는지, 혹 부모님을 짜증스럽게 하지는 않는지 궁금합니다. 계획대로 생활한다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으므로 부모님이나 아이들이나 어차피 좀 느긋해질 필요가 있고, '이번 방학에는 이것은 꼭 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을 제대로 실천하면 좋을 것입니다.


선생님들도 여유로운 나날을 보내면서 2007학년도 학교교육을 구상하고 있을 것입니다. 저도 올해는 어떤 학교를 만들어나갈 것인지 생각에 잠기기도 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교사로 살아오면서 보아온 교장 중에는 ‘이건 이렇게 하고, 저건 저렇게 하라’는 지시․명령 일변도 교장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학교라는 곳은 세상의 어느 곳보다도 조용한 편이어서 어쩌면 변화를 싫어할 듯한 사람들이 모여 있고, 그러므로 예전부터 하던 대로 답습해나가면 위험부담은 없는 곳이니 저절로 그런 독선적 교장이 많이 나왔던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그러한 학교문화에 익숙해진 교사들 중에는 무엇을 좀 바꾸어보려고 하면 당장 "그렇게 하면 학부모들이 반대한다." 혹은 "그렇게 하면 교권이 무너진다." 하고 별별 구실을 들어 은연중에 반대하는 세력이 형성되기도 합니다. 변화와 혁신의 걸림돌을 찾아보면, 기술적(technical)으로는 관행과 타성, 새로운 것을 익히는 데 따르는 어려움, 비용 등이 그 원인이고, 정치적(political)으로는 저항세력의 위협, 좋지 않은 관계, 권력의 불균형 또는 자기보존성 등이며, 문화적(cultural)으로는 선택적 인식, 구시대적 사고에 대한 집착, 혁신으로부터 소외․방치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등이랍니다(LG인화원,1999,학교경영자과정연수자료). 요즘은 분위기가 어려운 점이 있어 "나는 자율적으로 돌아가는 것을 좋아한다."는 교장도 있지만, 실제로는 그러한 명분으로 방치해놓는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 '자율'이란 참으로 좋은 것이지만 제대로 된 '자율'은 참으로 어려우며 그것은 고도의 훈련을 거쳐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교장은 일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봐, 내가 자율적으로 하라고 했잖아." 하고 핑계를 대기는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변하고 또 변하므로 우리라고 그냥 있을 수는 없습니다. 현재와 같은 학교라면 앞으로 50년 안에 5%의 학교만 남을 것이라는 학자도 있습니다. 웃기는 소리 하지 마라는 교사가 있다면, 그는 자기 자신은 50년 안에 퇴임하게 되므로 아무 염려가 없다는 것을 염두에 둔 교사일 것입니다. 저는 이제 몇 년 남지 않았지만 그런 교사가 되기는 싫습니다. 다음번에 쓸 편지에는 몇 가지 사례를 들어 '2007년에는 이렇게 하고 싶다'는 것을 밝히기로 하고 오늘은 스스로 다짐하고 점검하는 의미에서 흔히 이야기할 수 있는 교장의 자질에 관해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겸손(humility)해야 할 것입니다. 귀 기울여 듣고 밖으로부터 아이디어를 구할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눈앞에 주어진 일만 잘해서는 훌륭한 교장이라 할 수 없고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일을 만들고 실행하도록 도와야 할 것입니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으나, 함께 할 수 있는 일은 매우 많습니다.


에너지(energy)가 넘쳐야 할 것입니다. 교장이 힘이 빠지면 전체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직관적(intuitional)으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을 때, 사람들은 그에 따른 위험과 부정적 결과에 대해서만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판단은 교장의 몫입니다.


통찰(perspective)의 힘을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열정(passion)도 필요합니다. 혁신은 열정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확신(conviction)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어려운 결정을 내릴 줄 알아야 하고, 그 결정에 대해서는 외부의 압력에도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이 외에도 더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더구나 「학교경영학」에서는 교장의 자질을 이렇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위의 것들은, 거대 기업 경영자들의 자질을 다룬 「하버드비지니스리뷰」 2007년 1월호에 관한 신문기사를 인용하면서(조선일보, 2007.1.6, Weekly BIZ), '이런 교장이 되었으면' 하고 욕심을 내어본 것입니다.


저에게 "왜 교장을 하는가?" 물으시면 "성복초등학교를 바꾸고 싶어서"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가만히 앉아서 봉급만 받으면 너무 따분하므로 이 학교를 바꾸고 또 바꾸는 교장이 되고 싶습니다. 제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우리 학교 선생님들이 달라질 것이고, 학부모님들도 달라질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 우리 아이들이 달라질 것입니다. 이러한 제 생각이 헛된 것이 아니기를 기원합니다.

 

 

2007년 1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