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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파란편지 모음 2

어머니 예찬禮讚 - 부끄러움도 모르는 아름다움

by 답설재 2007. 8. 29.

성복 학부모님께 드리는 파란편지 63

 

 

 

어머니 예찬禮讚
- 부끄러움도 모르는 아름다움 -

 

 

 

호미도 날히언마라난  
낟가티 들리도 업스니이다
아바님도 어이어신마라난  
위 덩더듕성
어마님가티 괴시리 업세라
아소님하
어마님 가티 괴시리 업세라

 

                    (아래아를 표시할 줄 몰라서 읽히는 대로 표시함)

 

 

고등학교 시절에 배운 고려가요입니다. 『시용향악보時用鄕樂譜』『악장가사樂章歌詞』에 실려 전해지며, 어머니의 사랑을 낫에 비유하여 예찬합니다. 목주木州 지방의 한 착한 처녀가 부모님 눈 밖에 나서 산골 노파에게 의탁하고 지극히 봉양하며 그 아들과 결혼하여 잘 살게 되었는데, 바로 그 처녀가 부른 사모곡思母曲이라고 합니다(삼성문화재단, 『문화와 나』 2006 겨울호, 7쪽).

 

지난 13일 오후, 수원중소기업센터 국제회의장을 빌려 우리 학교 특기·적성 발표회를 개최했습니다. 그 회의장은 관람석이 극장식으로 되어 있어서 '우리 학교에도 이런 시설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부러워했습니다. 분위기가 좋아서인지 아이들이나 학부모님들이나 질서를 잘 지키며 관람하였습니다. 모처럼 멋진 장소에서 행사를 개최하게 되었고, 부모님은 물론 조부모님들도 오셔서 아이들은 더 신이 났습니다. 서투른 아이도 멋있게 보였고, 서툴러도 중도에 그만두고 퇴장하는 아이가 없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잘 되겠나' 싶어도 이처럼 중요한 시간이 되면 의젓해지는 것이 우리 성복 아이들의 특징입니다.


평소와 똑같은 모습도 있었습니다. 바로 어머니들이 연출하는 그 모습들입니다. 우선, 내 아이 남의 아이 가릴 것 없이 귀엽고 신통한 모습이 보이면 열렬한 박수와 환호를 보냅니다. 또 '디카'를 들고 무대 앞으로 나오는 모습입니다. 별로 부끄러워하지도 않습니다. 한 종목이 끝나 몇몇 어머니가 무대 앞을 떠나면, 자신의 자녀가 무대에 오를 차례가 된 어머니들이 다시 그 장소를 차지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못마땅하지도 않습니다. 규칙은 어겼지만 눈물겹고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걸 막으려면, 어느 어머니의 말씀처럼 대안을 마련해야 하겠지요. 가령 '2006 특기·적성발표회' 비디오테이프나 시디를 만들어 배부하는 방법입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그걸 어떻게 말립니까? '어머니'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은 그보다 더한 일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구설수를 듣는 사람은 부지기수여서 헤아릴 수가 없지만, '어머니'라는 위대한 이름을 부여할 대상은 단 한 명뿐이라는 것을 다음의 인용에서 보십시오.

 

* 인간이 고양이나 말에게 지배받을 수 없는 것처럼, 단지 신장이 더 크고 체중이 더 무겁다는 이유로 남성이 여성을 지배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남성이 자기 아내보다 체중이 무거우면 얼마나 무겁겠는가? 동물 중에는 인간의 남성보다 30배나 더 무거운 동물도 있지 않은가? ……. 육아권이 있기 때문에 여성들은 자신들을 위협하는 어떤 생활양식도 바꾸어버릴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마빈 해리스·박종렬 옮김, 『문화의 수수께끼』, 한길사, 1995, 86).

 

* 아무리 이름 없이 살아가는 여인일지라도, 아이를 낳아 이 세상의 일원이 되게 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여자는 이미 인간의 중심이며, 세상의 빛이며, 빛의 한가운데라는 사실을 나는 죽음의 문턱을 넘어선 후에야 깨달았다(애니타 다이아먼트·이은선 옮김, 『빛의 한가운데』, 홍익출판사, 1998, 360).


* 어머니와 갓난아기는 '파트너'가 아니다. 갓난아기는 어머니에게 먹을 것을 제공받고 보호받고 있기 때문에 어머니를 신뢰하는 것은 아니다. 갓난아기가 어머니를 사랑하는 것은 그녀가 뭔가를 해주기 때문이 아니라, 그녀가 어머니이기 때문이다(데스몬드 모리스·박성규 옮김, 『접촉』, 지성사, 1994, 96).


* 어머님을 떠나서 두 번이나 남도에서 설을 쇠니 간절한 회포를 이길 길이 없다(이순신·이응렬 역, 『국역 난중일기』, 세창서관, 1974). …….

 

자녀에 대한 사랑의 힘으로 연출하시는 모습과 그 당위성을 그려보았습니다. 그럼, 우리들 교사들은 어떻겠습니까? 어머니들은 주로 사랑이 깊어서, 우리는 주로 책무성으로 이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라고 하겠지만, 이들이 귀하고 아름다우므로 우리도 이들에게 사랑을 느끼는 것은 똑같다는 것을 인정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2006년 12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