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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파란편지 모음 2

교장이 할 수 있는 일, 할 수 없는 일 ⑴ - 이 초겨울의 단상斷想들

by 답설재 2007. 8. 29.

성복 학부모님께 드리는 파란편지 61

 

 

 

교장이 할 수 있는 일, 할 수 없는 일 ⑴
- 이 초겨울의 단상斷想들 -

 

 

 

♥ '성복축제, 누구를 위한 축제입니까' 그 편지를 드리고 난 뒤 그렇게 쓰던 시간의 참담한 정서가 이어져 한 이십일 침잠沈潛을 거듭했습니다. 분명한 것은, 내년에는 다시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모아서 그야말로 새로운 면모를 보여드리고 싶다는 것이지만, 기묘하게도 아이들은 철이 없어 그런지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것들인지 그래도 그날 혹은 들떠서 지내던 그간의 일들을 그리움으로 되새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참담한 느낌과 달리 아이들만은 그 기억을 고운 꿈으로 엮어가기를 기원할 뿐입니다. 역시 교육은 어렵다는 사실을 덧붙여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가령, 몇 날 며칠을 연습하여 일사불란하게 진행하는 전통적인 형식의 그 대운동회는 마을축제로서의 문화적 가치가 있어서 이어가고 싶지만, 그 운동회와 영 달라서 아이들이 다른 시각 다른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학년별 체육대회 또한 얼마나 좋은 프로그램입니까. 또한 아이들끼리 오순도순 진행하는 프로그램도 좋지만, 난데없이 저 운동장으로 들어서던 경찰대학교 의장대의 멋진 모습은 또 어떠했습니까. '토끼와 거북' 이야기는 시대와 세대가 바뀌어도 꼭 읽게 하고 싶은 우화지만, 새롭고 신기한 다른 이야기들도 많이 들려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 저는 학교 건물 앞으로 차를 몰고 들어오는 분이 밉습니다. 지각 있는 분은 누구나 유치원 옆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들어옵니다. 승용차가 사치품이던 옛날에야 가능한 한 남들이 잘 보이는 곳으로 차를 몰고 다니는 것이 하나의 서비스가 될 수 있었는지 모르지만 오늘날에야 어디 그렇습니까. 지천이니 오히려 짜증스럽기만 하지요. 지난 늦가을에는 한동안 그 길 입구를 차단해버렸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길, 좀 급한 일도 있고 마침 건물 뒷길에 주차한 차들이 복잡해 보여서 순간 '한번만' 하고 그 길로 차를 몰고 나간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교문으로 향하다가 하마터면 주차장에서 나오던 어느 어머님의 차와 충돌할 뻔하였습니다. 그분이 주춤해주신 것이 다행이었습니다. 직감적으로, 저를 원망하는 표정이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지금까지도 그 일을 뉘우치고 있는 저처럼 그분도 아직 그 때의 저를 기억하고 계신지, 어쨌든 한번만 용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스스로 정한 규칙을 스스로 깨어버린 잘못을 두고두고 후회하고 있습니다.

 

♥ 벌써부터 아침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기도 합니다. 그런 날은 히터를 털어야 합니다. 우리 학교 난방시설은 냉난방 겸용으로, 히터를 틀어도 별로 따뜻한 줄 모르고, 에어컨을 털어도 별로 시원한 줄 모르는 그런 시설입니다. 그냥 참을 만할 뿐입니다. 그런데도 이 기계는 한번 가동하면 단 10분만에 당장 몇 십 만원이 달아나는 '무거운'(무서운) 기계입니다. 그러므로 좀 쌀쌀하다싶어도 기온이 영상이면 그냥 지내야 하는데, 이런 날에는 교장실에 들어앉아 혼자서 기름난로를 피우는 것이 아이들에게 미안하여 일찌감치 꺼버리고 맙니다. 일을 하는 데는 큰 지장이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를 찾아 들어오는 선생님들이나 손님들은 썰렁한 느낌이 들어서 대충 이야기하고 얼른 나가고 싶어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도저도 못할 일입니다.

 

♥ 우리 학교 아이들은 영리하고 가슴이 포근한 아이들입니다. 하나하나 살펴보면 귀엽고 아름답고 사랑스럽지 않은 아이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 아이가 하나라도 있다면 저에게 한번 이야기해보십시오. 특별히 선발해오는 것도 아닌데 선생님들도 우리 학교에만 오시면 아이들에게 친절하고, 최선을 다하여 잘 가르치고, 맡은 일마다 아이들의 활동을 중심으로 계획하여 실천하고 평가하는 일을 전문가답게 해내고 있습니다. 학교 건물도 요즘 새로 짓는 학교만큼은 아니지만 몇 가지만 고친다면 그런대로 지낼 만합니다. 저는 우리나라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그걸 자랑합니다. 제 이야기를 듣는 그 교원들은 '설마' 하는 표정으로 저를 바라봅니다. 그런데도 유독 해결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니 점점 더 복잡해지기만 하는 것은, 아이들 등하교길이 비정상이라는 점입니다. 여기가 우리의 어린 시절 그 시골이라면, 배가 고파도, 머리가 아파도, 눈보라가 날려도, 소나기가 퍼부어도, 뙤약볕은 어찌 그리 따갑던지 '풍덩' 냇물에 뛰어들어 멱을 감기도 하며 하염없이 걷고 또 걸으며 산비탈, 돌다리, 논밭, 오솔길, 개구리, 피라미, 개미떼, 참새, 쑥부쟁이, 뜸부기, 뭉게구름, 소나기와 무지개, … 구경할 것도 많지만, 이곳은 어정쩡하여 시골도 도시도 아니므로 그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요즘은 교감 선생님부터 여러 선생님, 녹색어머니회 어머님들이 나서서 얼어붙은 비탈길, 나무계단에서 혹 나뒹구는 아이가 없는지 살펴보아야 하고, 낭떠러지를 기어 내려오는 아이들을 하나하나 받아내려야 하니,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알 길이 없습니다. 한번 질문해보겠습니다. 아이들 재잘거리는 소리가 듣기 좋은 동네도 있고, 그렇지 않은 동네도 있습니까? 그렇게 여쭈어보듯이 또 여쭈어본다면, 그 소리가 듣기 좋은 사람도 있고 싫은 사람도 있습니까? 듣기 싫은 사람이 정말로 있습니까?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는 아이들 때문에, 그저 다른 욕심은 접어두고 다만 저것들을 바라보며 삽니다.

 

 

2006년 12월 11일